구약성경 원어 설교

[레위기 14장 하나님 말씀] 집을 위한 정결예식(레 14:48-53)

체데크 2020. 5. 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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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레위기 14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레위기에 나오는 집을 위한 정결 예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집에 핀 곰팡이가 있을 때 악성인지에 알아보고 그것을 허물 것인지 놔둘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구속사 관점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집을 위한 정결예식”(레 14:48-53)

 

명제: 집이 부정하여 정결케 하는 것은 교회의 모형을 나타내고 있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이 있는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해져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에 집에 나병이 발생하게 되면 부정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해지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집에 악성 나병이 생겼을 때에는 집을 허물어 버리고 그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모형이면서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이 집이 악성 나병으로 곰팡이가 나면 허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부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곰팡이가 집안에 퍼지지 않았다면 악성 나병이 아니기 때문에 허물지 말라고 하시고 그에 따른 정결 예식을 반드시 하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이 정결 예식이 없으면 그 집이 악성 나병이 퍼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결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죄로 인하여 썩어져 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와 타락한 율법의 설교가 난무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한 개인의 교회들이 세상의 타락한 문화에 빠지지 말고 성령의 전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임할 수 있도록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싫어하시기 때문에 정결하게 살 수 있도록 방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며 성도들은 주님의 은혜의 언약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집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예식을 치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준비해야 합니다.

 

레14:49 그는 그 집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다가

 

제사장은 나병의 곰팡이로 부정하게 되었던 집을 속죄하기 위하여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부정한 집을 정결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현재의 교회도 반드시 이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정결 예식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하는지를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새’ צפור(치포르 6833) 새,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צפר(차파르 6852) 돌아가다, 되돌아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두 마리를 준비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부정하게 되었던 것을 속죄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이 집은 정결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악성 곰팡이가 생겨 부정해졌기 때문에 속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새 두 마리를 통하여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리의 새는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예표하고 있고 한 마리는 살려주기 때문에 부활을 상징하고 있는 새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도 새 두 마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언하지 않고 있다면 새 두 마리가 없는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입술로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지 않고 고백하지 않고 있다면 나에게는 정결한 새 두 마리가 없는 것입니다. 부정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져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백향목’ ארז(에레즈 730) 백향목,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רז(아라즈 729) 단단하다, 견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백향목은 단단하고 견고하여 벌레가 잘 먹지 않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최고의 나무로 생각했습니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많은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백향목을 나무 중의 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백향목은 바로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분 안에 있으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서 굳게 붙잡아 주셔서 견고하게 되며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고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홍색 실’ תולע(톨라 8438) 홍색, 지렁이, 구더기,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לע(얄라 3216) 서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색 실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은 가장 천한 모습으로 오셨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인간이 죄악 가운데 휩싸여 살므로 구더기 같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주님이 오셔서 대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지렁이와 구더기 같은 인생들을 위해 죽으시고 구원받은 교회와 개인은 귀족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귀족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아직도 지렁이와 구더기 같은 인생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홍색 실은 지렁이와 구더기 같은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서원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위해 내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택함 받은 백성들을 살려달라는 주님의 절규가 십자가에서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구원을 싸구려 취급하지 마십시오. 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구원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엄청난 고통과 절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슬초’ אזוב(에조브 231) 우슬초,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זב(아자브) 난장이,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슬초 식물은 1년생으로서 향신료로도 사용하던 식물입니다. 이 풀은 담장 밑이나 밭의 한 귀퉁이에서 자라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고 서민들이 접하기에 쉬운 식물이기 때문에 겸손을 상징하던 식물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예식에서 문설주에 피를 바른 것이 우슬초이며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고 난 후에 회개할 때에 우슬초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시51:7) 우슬초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겸손하게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주셔서 자신이 희생하시고 선택받은 백성들을 살려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슬초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강단에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하며 성도들은 주님의 제물이 항상 심령에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큰 교회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교회로 인정하지 않으며 성도라고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새 한 마리를 반드시 질그릇에서 잡아야 합니다.

 

레14:50 그 새 하나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고

 

하나님께서는 새 한 마리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흐르는 물에서 잡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은 흐르는 물은 정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살아있는 물은 생명의 물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잡고’ שחט(샤하트 7819) 결박하다, 죽이다, 잡다, 라는 뜻입니다. 한 마리의 새를 잡아 흐르는 물에서 죽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유대인들에게 결박당하신 주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붙잡혀 심문당하시고 채찍에 맞아 고통당하며 골고다 언덕에 자신이 올라가서 죽을 십자가를 메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새 한 마리로 속죄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새를 계속해서 죽이지 않아도 집을 속죄하여 정결하게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한 번의 대속을 통하여 영원한 속죄가 되어주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교회와 성도들은 단 번의 속죄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이루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건을 선포해야 합니다. 죄인들을 위해 속죄해 주신 십자가 보혈을 선포할 때에 교회가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없다면 교회로서의 의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학과 지식과 기술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선포할 것이 아니라 천하게 이 땅에 오셨지만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최고의 왕으로 선언하신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선언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이제부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을 선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과 살아있는 새를 가지고 죽인 새의 피를 찍어 집에 일곱 번 뿌려야 합니다.

 

레14:51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과 살아 있는 새를 가져다가 잡은 새의 피와 흐르는 물을 찍어 그 집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과 살아있는 새를 가지고 피를 찍어 집에 일곱 번을 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고난당하시고 고통당하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집에 피가 일곱 번 뿌려질 때에 그 집은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를 찍어’ טבל(타발 2881) 가라앉다, 빠지다, 잠그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피를 찍는 수준이 아니라 그 피에 완전하게 담가져 피가 흔건하게 젖어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피에 완전하게 잠가지는 것입니다. 그 속에 빠져 있을 때에 이것이 세례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는 단어가 이 단어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완전하게 잠겨 져 나는 보이지 않고 빨간 예수그리스도의 피만 보이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피만 보시고 심판이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다른 피가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으로 영원한 속죄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피는 필요가 없습니다.

 

‘뿌릴 것이요’ נזה(나자 5137) 뿌리다, 기뻐서 날뛰다, 기쁨을 주다, 라는 뜻입니다. 새의 피를 집에 완전하게 일곱 번을 뿌리면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뿌렸더니 택함 받은 백성들이 너무나 기뻐서 날뛰며 춤을 추고 기쁨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부정한 죄악들을 사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곱 번 예수그리스도의 피에 뿌림을 받은 자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완전하게 속죄가 되었기 때문에 심판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며 다시는 흔들리지 않고 기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와 성도들은 백향목 되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단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우슬초 같은 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홍색 실과 같은 고난의 주를 선언하여 살아있는 새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단에서 선포할 때에 이것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라고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내가 이루는 것이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이루어놓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일곱 번 뿌려져 있습니까? 주님의 피에 흠뻑 젖어 있습니까? 그럼 나는 확실히 구원받은 백성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넷째, 반드시 집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레14:52 그는 새의 피와 흐르는 물과 살아 있는 새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로 집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께서는 부정하게 된 집을 반드시 정결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한 교회와 성도들이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피를 통하여 정결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결하게’ חטא(하타 2398) 벗어나다, 죄를 범하다, 깨끗하다, 정결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부정해진 집을 정결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결 예식을 통하여 정결하게 되지 않으면 헐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거짓 행하면서 주님의 길을 벗어나 죄를 범했던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완전하게 속죄 받고 깨끗하게 정결함을 받은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정결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직접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의 죄가 없도록 완벽하게 씻어주셨습니다. 이 말은 내가 죄인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원죄의 해결함을 이렇게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지 앞으로도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 나는 절대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의 죄를 완전하게 씻겨주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넘쳐날 때에 이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서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섯째, 나머지 한 마리의 새를 반드시 놓아주어야 합니다.

 

레14:53 그 살아 있는 새는 성 밖 들에 놓아 주고 그 집을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러면 정결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살아 있는 한 마리의 새를 성 밖 들에 놓아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집을 위하여 속죄하게 되며 그러면 정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 밖에서 죽으시고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실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놓아주고’ שלח(샬라흐 7971) 보내다, 석방하다, 이혼하다, 보냄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살아있는 새를 놓아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새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고 있는 새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았던 인생들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완성을 위하여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시켜주셨습니다. 성도들도 이 모습으로 부활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되는 것이 아니라 죄악으로부터 이혼한 자들이 영화의 몸으로 부활되는 것입니다. 썩어질 죄악의 몸으로부터 이혼한 자들이 영화의 몸으로 부활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 새는 반드시 놓아주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놓아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성취시켜주셨는데 주님을 무덤에서 부활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 영화로운 부활의 몸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정하게 되었던 집의 정결 예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숨어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심령에는 백향목과 같은 만왕의 예수님이 임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슬초와 같은 서민들의 곁에서 함께 자라는 식물처럼 주님은 항상 가까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홍색 실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뿌림이 나를 덮어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마리의 새 중에 한 마리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한 마리는 나를 위해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섬기면서 나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십자가 은혜의 피가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그것도 샘물처럼 쫄쫄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꽐꽐 폭포수처럼 흘러나와야 합니다. 강단에서 매일같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나올 때에 영혼들은 기뻐서 춤을 추고 힘을 얻고 육체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풍성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우리의 심령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과 세상의 물질을 바라보면서 살 때는 고달프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말씀 안에서 살 때에 소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의 피에 흠뻑 젖어 피에 담겨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아의 포도주 사건”(창9:20-21)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노아의 포도주 사건을 구속사 관점에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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