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성경 문화 풍습] 예수님은 왜 나인 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셨을까?

체데크 2020. 5. 12. 19:04
반응형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성경 풍습 중에 나인 성에 들어가셔서 과부의 외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나인 성에 들어가셔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왜 나인 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셨을까?

 

7:11-12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이다. 귀신들린 자, 각색 병든 자를 고쳐 주는 것과 달리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내는 기적은 온 인류의 근본적인 장애물인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전능자의 능력이 예수님 안에 살아 역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땅에서의 공생애 사역의 마무리도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는 기적으로 종지부를 찍으셨다. 이를 볼 때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들 가운데 최고의 정점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외아들의 장례 행렬을 멈추게 하시고 다시 살려 내신 기적과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기적은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날 최종적인 기적으로 향하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누가복음의 기자인 누가는 예수님이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고쳐 주신 곳의 도시 이름이 나인 성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북쪽의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사역하신 예수님의 행적은 사복음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이 방문하신 도시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두루 나니셨다.’고만 기록하기도 한다.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누가가 나인 성이란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앞으로 그곳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일종의 복선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인’은 히브리어로 (נעים나임)인데, 이것은 ‘즐겁다’를 뜻한다. 나인 성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잇사갈 지파에 속한 곳인데, 아버지 야곱이 잇사갈을 축복할 때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49:14-15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잇사갈을 향한 축복에서 “아름답게 여기고”는 히브리어는 (נעמה나에마)로 되어 있는데 나인 성의 히브리어 이름인 ‘나임’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두 유쾌하다, 즐겁다를 뜻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즐거움의 땅 잇사갈에 그것도 즐거움 자체를 의미하는 나인성에 즐거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과부의 외아들이 죽자 과부의 딱한 처지를 불쌍히 여겨 허다한 마을 사람들이 장례 행렬에 참여한 것이다. 예수님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슬픔, 비탄, 죽음으로 가득한 나인(즐거움)성을 심방 오신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인 성이란 도시의 이름을 기록한 저자 누가의 의도는 즐거움의 도시인 나인 성 전체를 덮어 버린 슬픔과 죽은 청년을 다시 살려 내심으로 즐거움을 다시 회복시키신 예수님의 기적을 드라마틱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남편이 죽고 외아들인 장남의 보호 아래 살아갔을 것이다. 남편의 모든 유산은 외아들에게 돌아갔을 텐데, 문제는 이 외아들이 죽으면서 발생했다. 외아들의 유산이 자연스럽게 남편의 형제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외아들을 의지하며 살아가던 과부는 아들의 죽음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 있던 사회적 보호막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과부의 딱한 처지를 이해했는지, 과부 외아들의 장례 행렬에는 나인 성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주었다.

7: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당시의 장례 절차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확실히 구별되었는데, 무덤까지 시체를 운구하는 것은 남자가, 이후 무덤에서 시체에 향유를 바르는 것은 여자들이 맡았다. 나인 성 장례 행렬에서 마을의 남자들이 시체의 운구를 맡고 장례 행렬의 끝에 죽은 외아들의 어머니와 여인들이 따랐을 것이다.

예수님은 나인 성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장례 행렬 현장에 친히 찾아오셨다. 흔히 본문을 읽으며 죽은 청년을 다시 살리신 것에만 초점을 맞추기 쉽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먼저 외아들의 죽음과 함께 하루아침에 막막한 처지가 된 과부에게 있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먼저 장례 행렬의 맨 뒤에서 하염없이 흐느끼는 과부에게 찾아가 위로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과부를 위로하신 후에 예수님은 죽은 외아들의 시체를 운구하는 장례 행렬의 맨 앞으로 다가가셨다. 그리고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을 살려 내는 기적을 행하셨다.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청년이 살아나자 예수님은 그냥 가시지 않고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다시 장례 행렬의 맨 뒤에 있는 과부에게 가셨다. 이처럼 예수님의 첫 번째 관심은 바로 죽은 청년보다 과부에게 있었던 것이다.

7: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예수님은 죽은 청년을 살리심으로 외아들의 죽음과 함께 사회적 죽음을 당한 과부를 살려 내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는 동안 과부와 문둥병자, 눈먼 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셨다.

중풍병자를 내리기 위해 친구들은 어떻게 지붕을 뚫었을까?

2: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지붕을 어떻게 뜯어 방안에 있던 예수님과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집주인은 가만히 있었을까? 이런 의문들 때문에 본문의 중심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또한 갈릴리 지방의 주거 문화를 잘 몰라서 생기는 의문인데, 우리나라도 지방마다 주거 문화가 조금씩 차이가 있듯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북쪽 갈릴리 지방은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낮에는 집안에서 생활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지혜롭게 지붕 한가운데를 뚫어 구멍을 낸 뒤 더울 때는 지붕 뚜껑을 열어 공기가 순환되게 하고 추워지거나 비가 오면 다시 닫는다고 한다. 이런 문화를 알고 성경 본문을 대하면 이 친구들의 행위가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무덤에는 왜 여자들만 갔을까?

유대인들은 임종한지 24시간 안에 시체를 매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국과 같이 3일장, 5일장, 7일장 같은 것은 없으며 부자나 가난한 자나 예외 없이 죽은 당일에 매장되었다. 이집트에서 죽은 야곱의 시체를 놓고 40일간 부패 방지를 위해 미이라 처리를 하고 70일 동안 애곡한 것은 이스라엘에서 내려온 야곱 일가와 족장에게 이집트의 바로와 같은 수준의 예우를 해준 것이다.

50: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시체를 당일에 매장하는 원칙은 죽을죄를 지어 처형당한 시체마저도 당일에 매장하라는 신명기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죽은 당일에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살아 있을 동안에 매장지를 미리 확보해 두어야 했다. 성경시대부터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은 지중해 해변을 따라 위치한 해안 평야가 아니라 중앙에 위치한 산악 지역이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중앙 산악 지역은 흙이 별로 없어 조금만 파내려 가면 곧바로 석회암 바위가 나왔다. 이 때문에 죽은 당일에 시체를 매장하려면 땅을 파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부자들은 매장지를 미리미리 준비했다. 매장지는 주로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을 이용했다.

22: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성경시대 대다수의 가난한 평민들은 매장지를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땅을 대충 파서 당일에 시체를 묻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뼈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이런 평민들의 무덤이 성경 속에 ‘평토장한 무덤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런 무덤은 아무런 표시가 없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실수로 밟게 되면 접촉한 자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모세의 율법은 시체와 접촉한 자는 7일간 부정하다고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이런 평토장 한 무덤에 비유하였다.

11: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성경시대 남녀의 역할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죽은 당일에 시체를 무덤까지 운구하는 일은 남자들이 했다. 남자들이 시체를 무덤까지 운구하면 이후부터는 여자들이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나머지 일을 했다. 시체에 향유를 바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체에 향유를 바르는 풍습은 헬라시대(주전 3세기) 이후에 나타났는데 이것은 시체 썩는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 무덤에 갖다 놓아도 건조한 이스라엘 날씨에서는 시체가 잘 썩지 않았다. 1년 정도 흘러야 시체가 다 썩고 뼈만 남게 되므로 향유를 발라 시체 썩는 냄새를 중화시켰던 것이다.

회칠한 무덤은 부자들의 신생무덤이었다. 무덤 입구를 굴린 돌로 막은 후에 석회암 가루를 갈아서 만든 회칠로 표시했는데, 이것은 시체가 한참 썩고 있는 신생 무덤이라는 뜻이었다.

비록 향유를 발라 냄새를 중화시켰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서 무덤 입구에 회칠을 하여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코를 막고 지나갈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에게 일침을 가한 회칠한 무덤도 여기에서 나왔다.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의 장례 현장을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은 유월절이면서 동시에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이었다.

23: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다.

15: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오후 5시쯤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오후 3시는 안식일에 들어가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체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안식일에 죽은 사람은 안식일을 지내고 다음날 장례를 치러야 했다. 예수님의 경우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죽으셨기 때문에 남은 2시간 동안 급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까지 운구하는 일은 남자들이 해야 했지만 여인들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고도 안식일까지 채 두 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과 향유를 바를 수가 없었다.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3:55-56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여인들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했는데, 바로 안식일 때문에 미뤘던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과 향유를 바르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마태복음은 여인들이 단순히 무덤을 보려고 갔다고 기록했지만 마가복음은 여인들이 무덤에 간 목적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막16:1-2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남녀의 일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던 성서시대에 향유를 바르는 현장에는 남자들이 나타나서는 안 되었다.

 

 

“창세기 1장 1절의 비밀”(창1:1)

오늘도 복음 빵집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1장 1절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비밀”(창1:1) ♣명제: 창세기 1장 1절은..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