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9장 설교말씀 중에서 노아의 아들 중에 선택받지 못한 함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함이 자신의 아버지 노아에게 했던 행동들에서 하나님의 의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택 자와 불택자의 차이점”(창9:22-23)
♣명제: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자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
♣목적: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도 천국의 삶을 살고 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처음으로 한 일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죽고 자신이 살았다는 감사가 나온 것입니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에서 처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주를 먹고 옷을 벗고 잠을 잤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삶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통하여 모든 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신의 죄악의 옷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벌 것 벗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천국의 삶에서는 죄악 된 우리의 옷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의 옷만 입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 됩니다. 노아가 장막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가나안의 아비 함이 목격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고 자신의 형제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의 형제에게 아버지가 옷을 벗고 잠을 잔다고 말했다고 저주를 받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죄는 엄청난 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노아로부터 축복을 선포받았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 우리는 함이 노아에 관하여 행동했던 것과 셈과 야벳이 행동했던 것을 통해 깊은 하나님의 영적 진리를 캐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자와 선택하지 않은 자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함과 같은 신앙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셈과 야벳의 신앙을 하고 있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첫째, 함의 행동을 통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함은 아버지가 잠을 자고 있는 장막을 우연하게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자신의 아버지가 포도주에 취해 옷을 벗고 잠을 자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나와서 자신의 형제들에게 알린 사건 때문에 나중에 노아로부터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이 본 것으로만 끝이 났다면 저주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포도주 사건을 보고 말한 것이 노아에게는 얼마나 중요했기에 함의 자손을 저주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창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은 노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셈과 야벳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하체를’ ערוה(에르바 6172) 벌거벗은 것, 수치, 불결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רה(아라 6168) 헐어버리다, 드러내다, 벌거벗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노아가 하체를 벗고 잠을 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에덴동산의 회복이었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노아는 깨달았기 때문에 하체를 벗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함은 육체의 눈으로만 보니 영적인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가 하체를 드러내 놓고 불결함과 수치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형제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결국 함이 이 말을 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헐어버린 것이며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아버지가 포도주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고 있는 사건만 형제들에게 벌거벗기듯이 수치를 말하게 된 것입니다.
사53: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자기 영혼을 버려’ ערה(아라 6168) 버리다, 벌거벗다, 붓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이실 때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벌거벗기신 채로 십자가에 달리셨고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의 영을 부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하체를 드러내어 죽으신 것은 바로 나의 수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영혼을 버리심으로 인해 우리가 살아난 것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체를 드러내어 죽으신 사건을 육신적인 눈으로만 보고 수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수치를 덮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고귀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 당시 유대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실오라기 하나 없이 하체를 드러내어 죽으신 것은 수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일이라고 했으며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알리매’ נגד(나가드 5046) 고발하다, 비난하다, 선포하다, 라는 뜻입니다. 함은 자신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린다고 생각하여 즉시로 장막을 빠져나와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잘못된 것들만 고발하여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나와 아버지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의 행동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고발 거리만 찾아 쫓아다녔습니다. 바로 율법주의자들입니다. 함은 영적인 하나님의 눈으로 아버지의 하체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형적인 추태로만 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이 유월절에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꾸어주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면서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는데 주님께서는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눈에 보이는 성전을 헐어버려라 그리하면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육적인 눈으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십육 년 동안 지은 성전을 어떻게 삼일 만에 짓겠냐고 조롱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함과 같은 자들입니다. 주님이 하실 일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조롱하고 비난하고 고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함과 같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교회에서도 천국에 대한 확신도 없이 육체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모르고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비난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수치를 당하신 분입니다.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서울시청 광장에 십자가에 달리는 것은 고사하고 발가벗겨 하루 종일 세워 놓았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기분이겠습니까? 말할 수 없는 수치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주님이 하셨는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함과 같은 자들은 왜 주님이 이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주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함은 노아가 왜 포도주에 취해 옷을 벗고 잠을 잤는지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육체적인 눈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영적인 눈이 열릴 때에 주님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셈과 야벳의 행동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함이 아버지의 장막에서 나와 셈과 야벳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비난하자 이들은 즉시로 옷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9: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가져다가’ לקח(라카흐 3947) 취하다, 택하다, 영접하다, 청종하다, 라는 뜻입니다. 셈과 야벳이 함의 말을 듣고 즉시로 자신들의 옷을 취하여 아버지의 장막에 들어가 하체를 덮어주게 됩니다. 이런 행동은 이미 하나님 앞에 선택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셈과 야벳은 이미 영적인 눈이 열린 자들입니다. 노아가 왜 장막에서 하체를 벗고 잠을 자는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청종하여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노아는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옷을 입지 않았던 때 바로 아무런 죄가 없었던 때를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함은 깨닫지 못한 것이고 선택받은 셈과 야벳은 깨닫고 인정하여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셈과 야벳이 옷을 덮어준 것에 대한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수치 거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가지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마27:59-60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난 후에 십자가에서 내려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자신이 들어갈 무덤에 장사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더 이상 세상의 사람들에게 수치 거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알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영원한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의지인데도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알몸으로 죽으신 것은 불명예며 수치 거리와 조롱거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의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님의 고귀한 몸을 가지고 수치스럽게 말하지 못하도록 아리마대 요셉은 세마포로 주님의 몸을 싸고 있는 것입니다.
출12:10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유월절 어린양을 잡으면 식구대로 알맞게 맞추어서 잡아먹고 난 후에 유월절 어린양의 고기가 남으면 불사르라고 하나님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고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고기는 선택받은 자들만 먹을 수 있는 고기입니다. 그런데 이 고기가 아침까지 남아서 돌아다니면 애굽의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함부로 예수그리스도를 판단하고 비난하여 말하기 때문에 남은 고기는 모두 불사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 우리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믿지 않는 자들과 율법주의자들로부터 더 이상 주님이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함부로 판단하여 주님을 모욕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행실을 똑바로 해야 합니다. 셈과 야벳이 아버지의 하체를 가렸다는 것은 함의 눈에 비친 수치를 덮어준 것을 말합니다. 원래 노아가 행동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요 뜻입니다. 그런데 함과 같은 자들이 육신의 눈으로만 보고 비난을 하니 이것을 셈과 야벳이 아버지의 하체를 덮음으로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믿은 것이며 함과 같은 자들이 더 이상 비난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보지’ ראה(라아 7200) 택하다, 만나다, 분별하다, 깨닫다, 라는 뜻입니다. 셈과 야벳은 자신의 옷을 가지고 들어가 노아의 하체를 덮어주고 나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체를 보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이미 이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노아를 통해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분별하게 되었고 성령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셔서 복음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항상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았을 때는 와우접속사를 쓰고 셈과 야벳이 보았을 때는 와우접속사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함은 평소에는 아버지의 수치를 발견하지 못하다가 그때 당시에 즉시로 발견하여 비난할 거리를 찾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잘하신 것은 생각하지 않고 발견하지 못하다가 주님이 십자가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달리시자 수치 거리를 찾았다고 비난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셈과 야벳은 평소에도 항상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좋은 것만 생각하고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절대 아버지의 잘못된 것을 보지 않고 또한 항상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선택받아 구원을 얻은 자들의 신앙입니다.
‘아니하였더라’ לא(로 3808) 아니다, ~하지 않았다, 라는 뜻입니다. 셈과 야벳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있는 아버지의 하체를 절대 보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하체를 드러낸 것은 절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영원히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녀들은 셈과 야벳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수치로 보지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또한 영원히 예수님의 수치를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함과 같은 자들은 율법을 주장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무시하고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비웃고 있으며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믿지도 않고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오느냐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행동입니다.
우리는 함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비난하고 폭로하여 육체적인 눈으로만 성경을 보려고 하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십자가의 사건을 부인하게 됨으로 예수님을 조롱하여 마지막은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함과 같은 신앙을 하는 자들은 율법에 빠져 자신만 잘났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교묘하게 부인하고 욕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절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과 같은 자들은 항상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요, 말씀을 깨닫고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믿고 십자가의 의를 나타내며 자신의 추하고 더러운 것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가져갔다고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죽으신 사건은 수치가 아니라 나를 위한 죽으심이며 나의 수치를 덮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수치를 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이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나의 죄악 된 수치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수치를 당하신 것뿐이지 실제적으로는 수치가 아닙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보기에 수치일 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뜻이라는 것을 이 시간 우리가 믿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셈과 야벳의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위기 14장 하나님 말씀] 집을 위한 정결예식(레 14:48-53) (0) | 2020.05.12 |
---|---|
[민수기 19장 하나님 말씀] 붉은 암송아지의 비밀(민19:1-10) (0) | 2020.05.11 |
[레위기 11장 하나님 말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레 11:1-8) (0) | 2020.05.11 |
[창세기 9장 하나님 말씀] “선택받은 자의 축복과 선택받지 못한 자의 저주”(창9:24-27) (0) | 2020.05.11 |
[구약 인물성경 노아 하나님 말씀] 노아의 포도주 사건(창9:20-21) (0) | 2020.05.10 |
[성경 인물 노아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끝(창8:1-5) (0) | 2020.05.09 |
[성경 인물 노아 설교말씀] 홍수심판이 끝난 후의 노아의 준비(창8:6-12) (0) | 2020.05.09 |
[구약성경 인물 설교말씀] 라헬을 생각하신지라(창30:22-24) (0) | 2020.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