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잠언 22장 좋은 성경 말씀] 자녀 교육, 징계, 게으름, 빚 보증(잠 22:1-29)

체데크 2022. 6. 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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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서 22장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맞게 될 종말의 운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이 세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서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자녀 교육, 징계, 게으름, 빚 보증(잠 22:1-29)

 

1-4, 명예, 빈부, 슬기, 겸손과 경외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니브카르 쉠)[좋은 이름](KJV, NASB, NIV)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사람은 많은 재물보다 좋은 이름과 명예를 택해야 한다. 이름은 그 인격을 나타내며 좋은 이름은 좋은 인격을 나타낸다. 선한 삶을 사는 좋은 인격자는 좋은 이름을 가진다. 많은 재물보다 사람의 인격성, 곧 그의 경건과 도덕성이 더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재물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1:2-3; 12:8). 전도서 12:13은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해 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6:27). 사람이 자기 육신을 위해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둘 뿐이다(6:8).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아야 한다. 세상의 것들은 다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2:15-17).

또 은이나 금보다 은총이 더욱 택할 만하다. ‘은혜’()는 하나님의 덕성 즉 하나님의 은혜, 사랑, 긍휼, 선하심, 아름다우심을 가리키는 말이든지, 아니면 사람의 덕성 즉 이웃을 향한 선한 마음, 사랑, 긍휼, 자비를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과 구원을 받았고(3:24; 2:8) 또 성화의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필요하다(고후 13:13). 또 우리는 사랑, 화평, 자비, 양선, 온유의 덕으로 단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이며(5:22-23) 또 위로부터 난 지혜이다(3:17). 은혜는 은이나 금보다 더 낫다.

[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섞여 산다는 원어(니푸가슈)서로 만난다는 의미이다. 세상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다. 사람은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자신의 교육 정도에 따라, 직업이나 직장에 따라, 자신의 노력과 근면에 따라, 자신의 건강 상태와 질병 여부에 따라, 사회 환경이나 시대 상황에 따라 부자도 되고 가난한 자도 된다. 또 이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섭리와 복 주심에 따라 이루어진다.

세상에는 빈번히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갈등이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주인과 하인,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 부자는 가난한 자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가난한 자들 중에는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을 가진 자들도 있다. 그런 것들이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그러나 부자나 가난한 자는 다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욥기 31: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자가 하나가 아니시냐?” 온 인류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가족이며 한 식구이다. 온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다. 사도행전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잠언 17: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다윗은 여러 번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하였었다. 엘리야도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 호렙산으로 도피하였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핍박을 피하라고 교훈하시며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씀하셨다(10:23). 사도 바울도 때때로 핍박을 피하였다. 사도행전 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도행전 14:5-6,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그러나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하고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때이다. 그때는 순교의 정신과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그때 나서서 싸우지 않으면 비겁하고 비굴한 자임이 드러날 것이다.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10:28). 그는 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셨다(16:25). 사도 바울은 그 정신으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사도행전 20:23-24에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은 사람의 매우 중요한 덕이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흠과 실수가 많은 죄인임을 인정할 때 겸손할 수 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덕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경건이요 믿음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께서는 무한자, 전지전능자이시고 우리는 유한자요 연약한 존재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자이시며 우리는 죄가 많았고 또 죄성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엎드려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죄를 미워하고 떠나게 된다.

본문은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에 순종하며 살면 이 세상에서도 복된 삶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신명기 28장은 그런 자는 물질의 복, 건강의 복, 가정의 복, 사회적 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하였다(딤전 4:8). 또 그것이 영생의 길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면 그것이 의이며 그것이 생명의 길이다(5:33; 8:1; 6:23). 영생에 이르는 자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고,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택하는 것이 낫다. 우리는 많은 재물과 은금을 크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경건과 선한 인격성과 도덕성을 귀히 여기고 사모하며 가지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섞여 살지만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과 정조와 재산과 명예를 해하지 말고 남에게 자비와 선을 베풀어야 한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아가다가 해를 받는다. 재앙을 피해야 할 때 피하는 것은 지혜이다. 그러나 진리와 의를 위한 싸움에는 비겁하게 물러나지 말고 힘써 싸워야 한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는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복되려면,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형태의 악을 버리며 그의 명령만 순종하자.

5-8, 패역, 자녀 교육, 부자, 악행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하느니라.

패역한 자는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 곧 인생의 정로를 벗어난 자를 가리킨다. ‘은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다 포함한다. 패역한 자의 삶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다. ‘가시는 찌르는 고통스런 일들을 가리킨다. ‘올무는 시험거리들, 위험한 일들, 재난들, 사고들을 가리킨다. 찌르는 가시와 걸리는 올무는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 물질적 고통을 다 포함할 것이다. 사람이 가시에 찔리고 올무에 걸리면, 큰 고생과 낭패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영혼을 지키는 자는 그것들로부터 멀리 있다. ‘영혼을 지킨다는 말은 영혼을 죄악과 불결로부터 지킨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죄와 불결로부터 지킬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두고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힘과 도우심을 구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다. 시편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말하고, 갈라디아서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기 영혼을 지키는 자는 가시와 올무를 피할 것이다. 잠언 12: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고 말하고, 잠언 21: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말한다. 이사야 26:7, “의인의 길은 정직함[평탄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라고 말한다. 의인에게는 평안이 있다.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바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나쁜 것을 배울 수 있고 그것이 버릇이 될 수 있다. 무엇이 바른 길인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그 바른 길을 가르쳐준다. 신구약성경은 아이들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을 가르쳐준다.

성경의 중요한 내용은 첫째로 십계명이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자녀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또 십계명은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탐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성경의 중요한 내용은 둘째로 복음이다. 그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소식이다. 죄의 결과는 지옥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다.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원어(-피 다르코)그의 길을 따라서혹은 그의 길의 분량을 따라서라는 뜻이다(BDB, KJV, NASB). 이 말씀은 아이의 연령의 정도, 이해의 정도에 따라 가르치라는 뜻도 될 것이다. 우리는 자녀가 어릴 때는 성경을 단순하게, 쉽게 가르치지만, 나이가 들수록 좀더 자세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어릴 때 받은 교훈은 오래 간직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의 교육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고 경건 훈련을 시키고 의와 선과 진실의 삶을 가르쳐야 한다.

[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빌리는 자]는 채주(債主)[빌려주는 자]의 종이 되느니라.

이것이 이 세상의 현실이다. 예수께서 하신 비유 중에, 어떤 임금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갚을 것이 없을 때에,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고 명하였다(18:23-25). 또 그 종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가 빚을 갚지 못하자 그가 조금 더 참아 달라고 엎드려 간구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18:28- 30). 이것이 세상이다. 야고보서 2:6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가지 아니하느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성도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하며 구제해야 한다.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욥은, “남종이나 여종이 나로 더불어 쟁변할 때에 내가 언제 그의 사정을 멸시하였던가?”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나만 홀로 식물을 먹고 고아에게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를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다고 말했다(31:13, 16-18). 다윗은 증거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고 하였다(37:25-26). 잠언은, 현숙한 여인은 간곤한[가난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미는 자라고 묘사하였다(31:20). 또 주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들은 굶주리고 헐벗는 가난한 형제를 돌아보았다고 말씀하셨다(25:40).

[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氣勢, 쉐베트)[지팡이](rod)(KJV, NASB, NIV)가 쇠하리라.

악을 심는다 혹은 뿌린다(sow)’는 말은 악을 혼자 행하는 것뿐 아니라, 이곳 저곳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행하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악을 퍼뜨리고 전염시킨다는 뜻도 가지는 것 같다. 악은 누룩과 같이 다른 사람을 부패시키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 말했고(고전 5:6), 또 악한 친구들이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하였다(고전 15:33-34).

악을 심는 자는 재앙을 거둘 것이다. ‘재앙이라는 원어(아웬)환난, 재난이라는 뜻이다(BDB, NIV). 이 말은 어떤 영어성경들에서는 헛된 것(KJV, NASB)이라고 번역되었다. 사람이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환난과 재난으로 징벌하실 것이다. 시편 1:6,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했고,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했다. 또 악인은 헛된 것, 곧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을 거둘 것이다. 악인의 삶은 결국 돈과 시간과 힘을 낭비한 것뿐일 것이다.

또 악인의 분노의 기세는 쇠할 것이다. 악한 자들이 악을 행할 때 나타내는 분노의 기세는 상당히 힘이 있어 보인다. 선을 행하는 자는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는 교만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그 분노의 기세는 꺾이고 쇠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난과 재난을 주셔서 그의 교만을 꺾으실 것이며 그의 악한 행위들을 헛되게 만드시고 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으나 영혼을 지키는 자는 그런 것이 없다. 우리는 패역한 길로 가지 말고 정로(正路)로 가자. 우리의 영혼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살자. 그것이 평강의 길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든 사람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주는 유익한 책이다. 우리는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빌리는 자는 빌려주는 자의 종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고 근면해야 하고, 또 우리 주위의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구제하며 선을 베풀어야 한다.

악을 심으며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둘 것이며 그 분노의 기세는 쇠할 것이다. 우리는 악을 행치 말고 악인과 상종치도 말자. 악은 전염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악의 세력을 두려워 말자. 우리는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 선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성도가 되자.

9-12, 선한 눈, 거만, 마음의 정결, 지식

[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눈은 마음을 드러낸다. 영어성경들은 선한 눈이라는 원어(토브 아인)너그러운 눈혹은 후한 사람이라고 번역했다(KJV, NASB, NIV). 이것은 문맥에 맞는 말이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가난한 자에게 먹을것을 나눠줄 것이다. 구제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다. 신명기 15:10, “너는 반드시 그[가난한 형제]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의인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며 그 선한 마음은 특히 구제로 나타난다. 시편 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시편 37:26, “저는[의인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잠언 21:26,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구제]하느니라.”

본문은 의인이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주기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잠언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마태복음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행을 갚아주신다.

[10]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거만한 자라는 원어(레츠)비웃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뜻이다.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교만하고 거만한 자의 모습이다. 그런 자는 다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잠언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잠언 28:25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고 말하는데, 거기에서 탐한다는 원어(레카브)교만하다는 뜻이다(BDB, KJV, NASB).

인간 관계에서 화평과 일치를 가지려면, 온유와 겸손, 오래 참음과 양보와 사랑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고(4:1-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였다(2:3). 우리는 겸손과 사랑으로 단합해야 한다.

본문은 조롱하는 자를 쫓아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런 자를 교회에서 내어쫓고 그와의 교제를 끊으라는 뜻이다. 그것은 제명 출교의 벌이다. 그리하면 다툼이 쉬며 싸움과 수욕도 그치리라고 말한다. 물론 시시비비도 가려야 할 것이지만, 교만한 자는 끝까지 자기의 잘못을 인정치 않고 분란을 일으키므로 성도의 교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온유와 겸손의 덕을 사모하며 실행하기를 힘쓰지 않는 자는 실상 교회 안에 있을 자격이 없다.

[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본문은 우리에게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 입술에 덕이 있는 자가 되라고 교훈한다. 마음의 정결함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정결함이다. 그것은 중생과 회개의 결과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정결함은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만, 즉 죄를 깨닫고 죄를 미워하고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사도행전 15:9는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하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마음의 정결함을 사모하며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살전 4:3).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자,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마음의 더러움의 씻음을 받고 마음의 정결함을 사모하며 사랑할 것이다.

또 우리는 입술에 덕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라는 원어()은혜, 친절함, 사랑스러움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은 말로 표현된다. 주께서는 사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며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말하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말한다고 말씀하셨다(12:34-35).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교훈하였다(4:29).

마음의 정결함을 사모하고 입에 덕이 있는 자는 훌륭한 인격자이며 모두가 그를 좋아하고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왕이라도 그의 친구가 되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도 그를 친구로 여기실 것이다.

[12] 여호와께서는 지식 있는 자를 그 눈으로 지키시나 궤사한 자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여호와의 눈은 지식을 지키시나 변절자의 말은 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눈은 모든 것을 보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그 눈은 특히 지식을 지키신다. 그 지식은 바른 지식, 참된 지식, 공의의 지식, 진리의 지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을 지키신다. 하나님 앞에서 참 지식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17:17), 하나님의 진리, 성경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잘못된 지식이 없으시며 시대마다 변하는 지식도 없으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을 사모하며 그 지식을 얻어야 한다. 잠언 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고 말하며, 잠언 22:17,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라고 말한다. 또한 잠언 19: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식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변절자의 말은 폐하신다. ‘궤사한 자라는 원어(보게드)변절자, 배신자라는 뜻이다. 변절자는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할 때 말을 바꾸며 참 지식을 저버린다. 그는 한 주인을 섬기지 않고 두 주인 혹은 여러 주인을 섬기는 자이며, 바른 생각과 지식을 버린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생각과 중심을 다 아시고 판단하시고 그를 폐하신다. ‘패하게 한다는 원어(살라프)뒤집어엎다, 파괴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편 34: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주기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선한 눈, 곧 친절하고 너그러운 눈을 가지고, 주위의 가난한 자들에게 우리의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선한 자가 되자.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칠 것이다. 우리는 교만하고 거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남을 비웃거나 조롱하지 말자. 우리는 오직 온유와 겸손, 사랑과 양보의 심령을 가진 자가 되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왕이 그의 친구가 될 것이다. 우리는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고 선하고 덕스럽고 은혜로운 말을 하는 자가 되자. 그런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다.

여호와의 눈은 지식을 지키시나 변절자의 말은 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지식 곧 의와 진리의 지식을 사모하고 소유하고 끝까지 붙드는 자가 되고 그 지식을 저버리는 변절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13-16, 게으름, 음녀, 아이, 학대

[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잠언 26: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고 비슷하게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세상일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돈과 사람들이 필요하고, 지혜와 의논이 필요하고, 또 예기치 못한 난관들도 종종 있다. 더욱이, 성도가 하는 일에는 사탄과 악령들과 악한 자들의 방해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겁부터 내지 말고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해야 하고 또 고난을 각오하며 참고 견디면서 해야 한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고 말하며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는 예상되는 가장 어려운 상황을 가정하고 겁을 내며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사자는 보통 깊은 숲 속에 있고 길거리에 있지는 않다. 성도의 앞길에 어려운 난관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설령, 위험이 있다 해도, 우리는 할 일은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많은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성도는 고난과 위험을 각오하며 살고 일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이다. 성도의 신앙생활에는 언제나 마귀와 악령들의 방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담대히 행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내가 능력 주시는 자[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했고(4:13),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다(1:29).

[14]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음녀는 음란한 여자, 단정치 못한 여자를 가리킨다. 그는 성()을 부부관계의 사랑의 수단으로 귀히 여기지 않고 단지 오락물이나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쉽게 자신의 몸을 파는 자이다. 음녀의 입은 남자들을 유혹하는 입이다. 그는 달콤한 말로 그들을 유혹한다. 음란한 남자의 입도 마찬가지이다. 본문은 음녀의 입이 깊은 함정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이 헤어 나오기 어려운 함정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빠진 자는 큰 낭패를 당할 것이며 결국 죽을 것이다.

본문은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노하시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미워하시고 노하시는 것은 그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자를 음녀의 유혹에 빠지게 버려두신다는 뜻이다. 작은 죄를 회개치 않는 자는 더 큰 죄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죄를 회개하고 멀리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는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시편 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잠언 2: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라.” 잠언 6:23-24,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음녀]의 혀로 너를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사람의 마음 속에는 날 때부터 있는 원죄(原罪)의 부패성이 있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없고 도덕적 분별력과 통제력이나 자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깨끗하지 못하다. 아이의 마음이라도 그렇다. 오히려 도덕적 훈련을 받지 못한 아이의 마음은 도덕적 훈련을 받은 어른들의 마음보다 더 혼란스럽기도 하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다. 그 속에는 사상적 혼란이 있다. 아이에게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줄 모르고 안식일을 구별할 줄 모르는 무신론적 생각이 있고, 하나님 아닌 헛된 것들에 의미와 가치를 두는 우상숭배적 생각도 있다. 도덕적 혼란도 있다. 부모를 공경치 않고 순종치 않고 거역하는 마음, 남을 미워하고 욕하고 해치려는 마음, 성적 문란 즉 음란한 마음, 도적질하는 마음, 거짓말하는 마음, 여러 가지 탐심 등이 있다. 이런 죄악된 것들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낸다. 이것은 말씀의 교훈을 전제한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을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지만, 그래도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징계의 채찍이 필요하다. 그것은 미운 감정에서 나온 매가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바른 사람을 만들려고 때리는 사랑의 매이다. 잠언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징계의 매는 효력이 있다. 그것은 자녀의 마음 속에 있는 미련한 것들을 멀리 쫓아내며, 그로 하여금 사상적, 도덕적 잘못을 깨닫고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길을 걷게 할 것이다.

[16] ()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물질적 이익을 가장 큰 가치로 알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는 자는 심지어 가난한 자를 학대하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구하려 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커녕 도리어 학대하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멸시하는 큰 죄악이다.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한다.

본문은 또 부자에게 주는 자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부자에게 주는 것은 많은 경우에 나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주는 뇌물성 선물이다. 그런 사람은 아부하고 아첨하기를 잘 한다. 그것은 상대를 위해 준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준 이기적 행위이다.

본문은, 물질적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에게서 복을 거두시고 도리어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또 부자에게 선물을 주는 자는 돈을 헛되이 쓰는 자이다. 우리의 재능과 건강, 시간과 돈은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이며 헛되이 낭비하지 말고 바르게 써야 한다. 성도의 바른 물질 관리법은, 우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고, 또 자신을 위해서는 검소하게, 절약적이게 쓰는 것이고, 또 먹을것과 입을 것에 어려움을 당하는 주위의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며 구제하고 또 그 외에 이웃을 위한 선한 일들에 쓰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고 한다. 우리는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 고난을 겁내는 자도 되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지혜와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며 하나님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음녀의 입을 조심하며 음란의 죄를 조심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노를 피하고 음란의 죄를 피하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낸다. 우리는 인간의 원죄의 부패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의 바른 교훈과 징계의 매로써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하자.

우리는 더러운 이()를 탐하는 자, 곧 불의한 방식으로 물질적 이익을 얻으려는 자가 되지 말고, 정당하게 벌고 성도답게 쓰는 자가 되자.

17-21, 지혜의 말씀, 진리의 말씀

[17-18]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는]( י󰗑)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아름다움이니라].

지혜 있는 자들(카카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을 이해하고 바르고 선하게 살며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자들이다. 솔로몬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지혜와 지식을 얻었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그의 지식과 지혜가 되었고 그는 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 본문은 우리가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지식에 마음을 두라고 말한다. 우리는 참된 지혜와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두어야 한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이것을 마음 속에 보존하고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혜와 지식을 그 마음 속에 보존하면 그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격이 되며 지혜와 지식이 있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또 사람은 지혜와 지식을 그 입술에 있게 하면, 그는 경건하고 바른 말, 선하고 덕스럽고 진실한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본문은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사람이 외모는 아름다워도 그 인격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그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인가? 성경은 인격적, 도덕적 덕성과 아름다움을 더 크게 여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값진 아름다움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말하였다(벧전 3:3-4).

[19]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본문의 이것은 앞절에 말한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가리킨다. 본문은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교훈한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이사야 3:1-2,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우리는 돈도, 권세도, 사람도, 자기 자신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면 구원과 영생을 얻고 힘을 얻을 것이다. 이사야 45:22,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을 바라고 믿어야 한다(4:18).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믿음을 얻는다. 요한복음 20:31,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았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4-15,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20-21]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아름다운 것이라는 원문은 마소라 학자들이 세 번째 것들,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말(솰리쉼)(KJV, NASB)로 읽으라고 제안하지만(케레), 본래는 ‘3일 전에, 이전에라는 말(쉴숌)로 쓰여 있다(케팁)(BDB).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들을 성경에 기록케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진리의 확실한 말씀이라는 원어는 진리의 말씀의 확실함이라는 뜻이다. ‘확실함이라는 원어(코쉐트)믿을 만함, 정당함이라는 뜻이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쓴 목적을 데오빌로 각하로 하여금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다(1:4).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확실함과 정당함과 믿을 만함을 깨닫고 그 진리를 확신하게 된다.

둘째는 진리를 고백하고 가르치게 하기 위함이다.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너를 보내는 자는 진리를 배우게 하려고 너에게 보내는 자들(KJV), 혹은 진리를 전하라고 너를 보낸 자(NASB, NIV)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전한다.

우리는 참 지혜자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식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우리의 마음 속에 지키고 우리의 입술에 있게 하자. 우리는 인간의 참 아름다움이 단순히 외적인 데 있지 않고 인격적, 도덕적인 데 있는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마음과 입에 두자.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 곧 돈과 권력과 사람들과 심지어 자기 자신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이 세상의 것들은 다 지나가는 헛된 것이지만, 하나님과 그의 말씀은 영원하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말씀임을 알자. 성경은 하나님의 지식의 보고(寶庫)이다. 또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확실한 말씀들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하고, 다른 이들에게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말하고 전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22-29, 탈취, , 빚 보증, 지계석, 근실함

[22-23]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대저[이는]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빼앗으실 것임이니라].

약한이라는 원어()약한, 가난한이라는 뜻이며, ‘곤고한이라는 원어(아니)환난 당하는, 가난한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약하고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거나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 ‘성문에서라는 말은 공적으로라는 뜻이다. 옛날에 성문 앞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 장소이었다. 거기에서 장로들의 재판이 있었다. 그러므로 성문 앞에서 가난한 자의 소유를 빼앗는 것은 매우 뻔뻔스럽고 큰 악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억울함을 다 아시고 갚아주시고 그의 소유물을 빼앗는 악인들을 죽이실 것이다. 신명기 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말하고, 시편 140:12,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고 말한다.

[24-25]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잠언은,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며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고 말한다(14:17; 15:18; 29:22). 또 사람이 노하면 범죄하기 쉽다(37:8; 29:22). 그러므로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해야 한다. 전도서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고 말하였다(7:9).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며(14:29) 용사보다 낫다고 말한다(16:32). 야고보서 1:19-20, “성내기는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교훈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주신 성경의 전체적 가르침, 즉 온유와 겸손과 관용, 사랑과 인내, 항상 기뻐함 등의 가르침에 일치한다. 우리는 노를 억제해야 한다.

또 우리는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도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도 않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분노한 자나 울분한 자의 행위를 본받아 우리의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남의 행동을 잘 따라해서 악한 자와 교제하면 악한 일을 배우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리석은 자나 악한 자와 교제하는 것부터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고 동행치 말아야 한다.

[26-27]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손을 잡는다라는 원문(타카 카프)손을 친다, 손바닥을 친다는 뜻이다. 이것은 옛날에 사람이 무엇을 보증할 때 사용한 방식이었다. 잠언 6:1,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네 손을 치면].” 잠언 17: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남의 손을 치며].”

사람이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않는 것이 지혜이다. 잠언 17: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만일 남의 빚을 보증했으면 그는 속히 가서 그 보증을 해지하는 것이 좋다. 잠언 6:1-3,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라.”

남의 빚을 보증한 자는 손해를 당할 것이다.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다. 잠언 11:15,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고 말하며, 잠언 20:16,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지니라고 말한다.

[28]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지계석이라는 원어(게불)경계 표시라는 뜻이다. 그것은 토지를 측량하고 박아둔 말뚝이다. 신명기 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先人)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 잠언 23: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외로운 자식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지계석을 옮기는 것은 속여서 남의 재산을 취하는 것이며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것이다. 그것은 양심을 더럽히는 악한 행위이다.

성도는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감독과 집사가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자이어야 한다고 교훈하였다. 디모데전서 3:3, “[감독은]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전통본문). 디모데전서 3:8, “[집사도]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디도서 1:7, “[감독은]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이것은 성도의 모범적 삶의 한 부분이다. 성도는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고 도덕질하거나 속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행위를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신명기 27:17,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호세아 5:10,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

[29]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근실한이라는 원어(마히르)신속한, 부지런한(KJV), 능숙한(NASB, NIV)이라는 뜻이다(BDB). 자기 일에 신속하고 부지런해서 최고의 실력가가 되면, 나라의 통치자 앞에 설 것이며 그 앞에서 지위를 가질 것이다. 학자들은 통치자의 보좌관이나 자문위원이 될 것이며, 기업가들은 통치자의 협력자와 후원자가 될 것이다. 디자이너, 요리사, 이발사까지도 그를 위해 발탁되는 명예를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과 교회의 일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성도가 자기 본분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직분자가 될 것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뽑으려 할 때, 열두 사도들은 모든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리라”(6:3).

또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세울 감독들 즉 장로들과 집사들의 자격을 말할 때 신앙 생활과 인격의 성숙함과 온전함을 꼽았다. 디모데전서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디모데전서 3:8,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디모데전서 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단정함존경할 만함이라는 뜻이다. 또 사람이 그 직분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더 사랑하시고 크게 쓰실 것이다. 디모데전서 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우리는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거나 탈취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아보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보응을 두려워하자.

우리는 노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며 죄짓기 쉬운 일임을 알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또 악을 본받지 않도록 노한 자와 사귀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대신 갚을 마음과 능력이 없다면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아야 한다. 남의 빚을 보증한 자는 손해를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성도는 선조들이 세운 옛 지계표, 경계표를 옮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일이든지, 하나님의 교회의 일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근실한 자, 즉 신속하고 부지런한 자, 일에 익숙한 자가 되어야 한다.

[출애굽기 26장 주석 성경말씀] 성막, 띠, 휘장(출 26:1-37)

 

[출애굽기 26장 주석 성경말씀] 성막, 띠, 휘장(출 26:1-37)

출애굽기 26장에서는 성막의 양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덮는 휘장의 규례와 널판과 성막 안에서 사용하는 휘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막의 모든 기구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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