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히브리서 7장 은혜로운 설교말씀] 멜기세덱의 더 좋은 소망(히 7:1-28)

체데크 2022. 6. 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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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에서는 멜기세덱의 반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평강의 왕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게세덱과 레위 제사장의 반차를 비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레위 제사장은 일반 제사장이지만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사역을 감당하시고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멜기세덱의 더 좋은 소망(히 7:1-28)

 

1-10, 신비한 인물 멜기세덱

[1-2]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 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멜기세덱은 창세기 14:18-20에 나오는 인물이다. 거기에 보면, 그는 살렘 왕으로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가서 싸워 이기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그의 손에 그 대적을 붙이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전쟁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 멜기세덱은 역사적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과 예표(豫表)이었다. ‘멜기세덱이라는 히브리어는 ()의 왕이라는 뜻이다. 또 살렘이라는 말은 평강이라는 뜻이다. 이사야 9:6-7에 보면, 의의 왕과 평강의 왕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명칭이다.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본문은 멜기세덱의 부모나 족보나 출생이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뜻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을 신비한 베일에 감추신 것은 그를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과 예표로 삼기 위하심이었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비슷한 자로 역사상 잠시 언급된 것이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신 메시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다.

[4-7]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 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점은 두 가지이었다. 첫째는, 그가 아브라함에게서 노략물 중에서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족장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을 보면,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 자인지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자손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고 율법의 규정에 따라 자기 형제들에게 십일조를 받았지만, 레위 족보에 들지도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취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점이다.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후 그를 축복하였다. ‘페일언하고’ 즉 변론할 것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는다. 이런 점들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임이 잘 나타낸다.

[8-10]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 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 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 멜기세덱을 비교해 볼 때,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다 죽을 자들로서 십분의 일을 받았지만, 멜기세덱은 영원히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자로서 십분의 일을 받았다. 이 점에서도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뛰어났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레위는 아직 그 조상 아브라함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점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뛰어난 점일 뿐 아니라, 그가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뛰어난 점이었다.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구약시대 아브라함 때에 나타났던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와 모형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점에서 그러하였는가? 우선 그의 이름이 그러했다.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의 왕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메시아의 명칭이다. 또 그는 살렘 왕인데, 살렘은 평화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평화의 왕이시다. 또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시작한 날이나 죽은 날도 없었다. 그것은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메시아는 그 신적 본질에 있어서 아비도 없으시고 어미도 없으시며 족보도 없으시며 시작한 날이나 죽은 날도 없으시다. 그는 영원히 살아계신 신적 존재이시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레위 지파의 아론의 자손들인 대제사장들보다 더 높음을 보인다. 그것은 메시아의 예표이며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 같은 인물이시다. 그는 의의 왕이시며 평화의 왕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신 신적 존재이시다. 그는 구약의 율법 제도보다 더 높으시다. 우리는 그를 믿고 사랑하고 섬기자.

11-19, 더 나은 제사장 직분의 필요성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율법제도가 폐지되었음을 증거하는 책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은 부족하였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이 부족함이 없었다면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말한 온전함은 완전한 사죄, 완전한 화목, 완전한 교제의 회복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흠과 점이 많았고 종종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부패되었고 육신적으로도 죽을 자들이었다. 그들의 제물도 죄인에게 참으로 사죄(赦罪)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실상 장차 오실 메시아의 속죄사역의 모형과 그림자와 예표(豫表)에 불과하였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 사람이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을 세울 필요성이 있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의 율법제도는 폐지되고 복음의 새 시대가 시작된다. 그는 물론 구약시대의 율법과 무관하지 않으셨다. 구약의 율법은 그와 그의 대속사역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와 예표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으셨다(3:21). 그는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오지 않으셨고 이루러 오셨다(5:17). 그는 구약시대의 율법, 즉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다. 그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죄인들에게 완전한 사죄, 완전한 의, 완전한 화목, 완전한 교제의 회복이 이루어졌다(3:21-22; 10:4).

[12-13]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는]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변역할 것임이니] [이는]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것임이니라].”

히브리서 저자가 제사장 직분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단지 제사장 직분의 변화가 아니고 결국 율법제도의 변화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론 자손의 제사장이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으로 대치되듯이, 구약시대의 율법제도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고 복음의 새 형식으로 대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움에 대해 말한 이유는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제단 일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 즉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 맡겨진 일이고 다른 지파 사람들은 그 일에 관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전혀 다른 족속에 속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110편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한 제사장을 메시아로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다. 여기에 신약시대의 새 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암시되어 있었다.

[14-15]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는]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분명함이라].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주 예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이 분명하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해 말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이 주께서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제사장으로 오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와 율법제도를 영원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는 메시아를 유다 지파에서 나게 하지 않으시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으로 일어나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메시아가 유다 지파에서 나셨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으로 오신 것을 보면,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와 율법제도가 폐지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16-17]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 . . .

본문은 또 말한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아론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아 구주가 되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구주가 되셨다. ‘무궁한 생명이란 100년에 제한된 육신의 생명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장들과 달리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다. 앞에서 인용한 시편 110편에서 메시아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증거되셨다.

[18-19]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는]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페하였음이라.] ([이는]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못함이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보내신 이유는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가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여지기 때문이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하였다.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3:20).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나 율법제도는 그 자체로는 연약하고 무익하였다. 그것은 단지 앞으로 오실 완전하신 메시아에 대한 그림자와 모형과 예표일 뿐이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셨으므로 그림자와 모형과 예표인 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소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셨다(10:4; 고전 1:30). 우리의 의는 오직 이것뿐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11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의 요지는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과 율법제도가 사람에게 도덕적 완전함 즉 의()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주실 의에 대한 그림자와 모형과 예표이었다. 성경은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다른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에 대해 말하였고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결국 구약시대의 제사제도와 율법제도의 폐지를 보이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의 새 형식의 도입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진리를 배운다. 첫째로, 우리는 구약시대의 제사제도와 율법제도의 예표적, 모형적, 그림자적 성격을 배운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속죄의 복음의 실체적, 완성적 성격을 배운다. 이것은 구약에 비추어 더 좋은 소망의 내용이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늘날 구약제도의 폐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바로 이해할 때, 우리는 오늘날 왜 우리가 더 이상 구약시대의 성전 예배의 의식을 지키지 않고 제사들과 절기들을 지키지 않는가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을 감사히 누리자.

20-28, 더 나은 제사장

[20-21] 또 예수께서 제사장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또 예수께서 제사장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써 제사장이 되셨다는 점에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더 나으시다. 율법 아래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심으로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셨다(110:4).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본문은 말한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이와 같이라는 원어(카타 토수톤)는 ‘이렇게 큰 것에 의해’[이만큼]라는 뜻이다. 여기에 큰 것이란 하나님의 맹세를 가리킨다. 즉 예수께서는 이렇게 큰 것 곧 하나님의 맹세에 의하여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더 좋은 언약이란, 구약이 예표적, 예언적 성격의 언약이었으나 신약은 실체적, 성취적 성격의 언약임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새 언약을 확실히 깨닫게 되고 확신케 되었다.

[23-24] 저희 제사장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저희 제사장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계시다는 점에서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더 나으시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죽는 인생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효가 많았다. 그러나 한 분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며 따라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않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갈리지 않는다는 원어(아파라바토스)는 ‘임시적이지 않다, 변하지 않다, 영속적이다라는 뜻이다.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 . . .

본문은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자기를 힘입어라는 말(디 아우투)그를 통하여라는 뜻이고, ‘온전히라는 말(에이스 토 판텔레스)는 ‘끝까지, 영원히, 완전히라는 뜻이 있다. 예수 께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끝까지, 영원히,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까닭은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간구한다는 원어(엔튕카노)중재한다, 중보의 일을 한다는 뜻이다.

[26-27]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들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시다. 그는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셨고, 단번에 자신을 드려 속죄사역을 이루셨고 의()를 이루셨다. ‘단번에라는 말(에파팍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이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제사가 필요 없음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의()는 완전한 의이다.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 . . .

본문은 말한다. “[이는]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세우셨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완전한 이유는 그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 즉 신적 구주이시기 때문이다. ‘온전케 되었다는 말은 구주로서의 그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뜻이다. 즉 그는 완전한 구주, 완전한 중보자가 되셨다는 말이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속죄사역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20절부터 28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새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나은 점들은 첫째로 그가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다는 점이며, 둘째로 그가 영원히 살아계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을 끝까지, 영원히,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점이며, 셋째로 죄 없으신 하나님 아들께서 단번에 자신을 드려 대속을 이루셨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의 완전함을 깨닫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하고 영원한 대속(代贖)을 받았고 완전한 의를 받았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 밖에 없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의 일을 하심을 깨닫자.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된다. 우리는 만가지로 부족하지만, 구주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고 지금도 그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흠과 점이 없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마침내 영화로운 몸을 입게 하시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께 큰 감사와 헌신과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밝히 계시되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당하다.

[야고보서 1장 주석 성경말씀] 성도가 시험을 참음(약 1:1-27)

 

[야고보서 1장 주석 성경말씀] 성도가 시험을 참음(약 1:1-27)

야고보서 1장에서는 성도가 받을 환난의 시험을 참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믿음이 더 견고해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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