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사도행전 16장 좋은 성경 말씀] 빌립보에서 전도함(행 16:1-40)

체데크 2022. 6. 20.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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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에서는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와 합류하여 사역하게 됩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에게 환상을 주셨습니다. 아시아로 발길을 인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가서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였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에서 전도함(행 16:1-40)

 

1-10,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1-3]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었다. 디모데는 믿음이 진실하였고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도 그러했다(딤후 1:3-5). 그는 후에 바울에게 좋은 동역자가 될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것은 디모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거리낌을 주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고린도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19-22). 영혼 구원의 열정과 겸손함을 가진 자만 그렇게 처신할 수 있을 것이다.

[4-5]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사람은 연약하고 우리의 믿음은 조그만 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리고 연약해지기 쉽지만, 하나님의 바른 말씀과 성령의 위로가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굳세어질 것이다. 또 먼저 믿은 신자들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또 의롭고 선한 삶의 본을 보일 때 교회들은 교인수도 늘어날 것이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초대교회는 영적으로, 수적으로 성장하였다.

[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성령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본문에 나오는 지역 이름들은 오늘날 터어키 땅으로 아시아는 그 서쪽 지방을, 무시아는 서북쪽 끝을, 비두니아는 북쪽 지역을 가리킨다. 즉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의 북쪽으로 나아가 전도하려 했으나 성령께서 그것을 막으셨고 그들의 걸음을 서쪽 마게도냐 지방, 곧 유럽으로 인도하셨다. 이것은 그의 전도 지역의 놀라운 진전이다. 유럽 전도가 시작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인도하시지만(8:14), 특히 전도자들의 길을 인도하신다.

[8-10]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주께서](전통본문)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본문에 우리라는 표현(16:10-17; 20:5-21:18; 27:1-28:16 )은 사도행전의 저자가 바울 전도단의 일행이었음을 보인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떠나려 한 것은 주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그들을 부르신 줄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환상은 사도시대에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이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눅 16:29, 31).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성령의 감동과 깨닫게 하심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오늘날에도 복음 사역에 디모데같이 진실한 믿음이 있고 다른 성도들에게 칭찬 듣는 좋은 일꾼들이 있기를 기도하자. 디모데는 후에 바울과 함께 고난을 같이하였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실 때 그런 좋은 동역자를 얻게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적으로, 수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자. 교회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과 성령님의 위로로 성도들의 믿음이 견고해지며 또 이미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이웃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또 의롭고 선한 생활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하나님께 돌아와 예수님 믿는 자들이 날마다 더할 것이다. 학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말세지말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들이 든든히 세워지고 영적으로, 수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고 힘쓰자.

셋째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받기를 소원하며 또 그런 인도하심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중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 하나님께서 성경 교훈에 합한 어떤 간절한 소원을 우리 마음에 주신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인 줄 깨닫고 그 일을 계획하고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해야 한다.

11-18, 빌립보에서의 전도

[11-13]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첫 성이라는 말은 중요한 도시라는 뜻일 것이다. 당시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는 데살로니가이었지만, 빌립보도 매우 중요한 도시이었다. 로마의 식민지라는 말은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와 같은 통치제도와 법들과 상당한 특권을 가진 도시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그 성에 며칠 머물면서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아 나갔다.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라는 전통본문은 기도처가 있곤 했던이라는 뜻이다. 문밖이라는 전통본문은 ‘성밖’이다. 바울은 성밖 강가의 기도처로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전도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해야 할 일이다. 주께서는 너희는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14-15]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바울이 가서 전도할 때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시켜 두신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두아디라 성의 자주빛 옷감을 파는 장사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곧 경건한 여인이었다. 주께서는 그 여인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귀를 기울여 듣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귀와 마음에 할례를 주셔서 깨닫게 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말하였다(고후 4:6).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그는 택하시고 구속(救贖)하신 자들의 마음 속에 친히 참된 회개와 믿음을 주셔서 그들을 구원하신다.

루디아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었다. 또 그와 그의 집 즉 그의 가족들은 그 밤에 세례를 받았다. 만일 그에게 어린아이가 있었다면 그도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가족 세례는 당시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바울 일행에게 청하여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말하며 강권하여 있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적 구원을 주신다. 구원은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바른 관계에서 얻는 것이지만, 가정에서 한 사람이 구원을 얻으면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가깝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도 생각할 만하고 경험적으로도 그렇다. 먼저 믿은 이가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며 선한 본을 보이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벧전 3:1-2).

[16-18]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점치는 일은 귀신의 활동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호기심으로라도 점을 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큰 죄이다(18:9-12). 귀신도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귀신에게는 구원 얻을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 바울이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능력으로만 가능한 기적이었다. 그러나 본문이 증거하는 대로 바울은 처음부터 그런 일을 행하기를 원치 않았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신의 직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적을 행할 능력을 받은 사도이었으나(고후 12:12) 그 능력을 함부로 쓰려 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기적주의가 아니다. 바울은 표적을 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속죄의 복음을 전했다(고전 1:22-24). 오늘날 우리는 성경만으로 충분히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기적을 행하거나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모든 죄악된 말과 행위를 다 버리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실행하는 것이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전도하기 위해 전도할 대상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서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과 그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보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전도자들과 같다. 우리는 세상으로 파송되는 전도자들과 같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전도가 효력 있게 이루어지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구주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세 전에 택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자들을 우리의 전도를 통해 남김 없이 다 구원하신다.

셋째로, 우리는 가정적 구원을 기대하자. 구원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가족들 중 한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다른 이에게도 구원의 빛이 비취기 시작한다. 먼저 믿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진지한 전도와 의롭고 선한 행위들을 통해 가정의 다른 이들에게도 구원이 임하게 된다.

19-40, 빌립보 간수의 구원

[19-22]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귀신 들린 여종이 고침을 받았으나 그 일로 인해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에게 감사하기는커녕 그를 핍박했다. 그들은 여종을 단지 그들의 이익의 도구로 사용했다.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만 위한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 더욱이,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선한 일이 정죄거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의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시장으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갔다. 시장(아고라)은 장사하는 장소로뿐 아니라, 토론이나 재판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상관들’(스트라테고이)은 그 지방의 행정장관들을 가리킨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자 상관들은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하였다.

[23-25]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변명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억울하게 고난을 당해야 했다. 상관들은 바울과 실라를 많이 치게 한 후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고 했다. 간수는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다. 그 감옥은 춥고 어두웠을 것이며 그들의 온몸은 심히 쑤시고 아팠을 것이다. 그들은 그 밤에 갑갑하고 부자유스런 그 감옥 속 어둡고 찬 바닥에 그렇게 던져져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들을 고난의 현실 속에 버려두셨다. 그것은 참 성도들의 현실, 특히 전도자들의 현실이 어떠할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 고난의 현실 속에서 낙심치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정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죄수들이 들었다. 그것은 한밤중에 드린 특이한 기도요 찬송이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믿는 자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고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게 하신다. 찬송은 하나님의 응답과도 같다. 성도에게 고난은 있지만, 믿음은 그 고난을 이긴다(요일 5:4-5).

[26-30]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그런데 그때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 그 밤에 바울과 실라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을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일들이 일어났다. 간수는 자살하려던 자리에서 육신의 생명이 건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 밤의 기적적 사건으로 간수는 그 영혼도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는 바울에게 구원의 방법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는 바울과 실라가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17절)임을 알았다. 그는 평소에 죄책으로 고민하며 구원의 길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는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준 그 착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물으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마음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밤에 지진으로 옥문을 여시고 바울과 실라의 차꼬가 벗어지게 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그 간수에게 육신의 생명과 영혼의 구원을 주시려는 목적이 있었다.

[31-34] 가로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주께서는 한밤 중에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간수와 그 가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사도 바울이 전한 바와 같이, 사람이 구원을 얻는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 없다. 믿는 자는 죄씻음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다. 또 하나님의 구원은 가정적 구원이다. 비록 가족 개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받지만, 가장(家長)의 구원은 가족들에게 구원의 문을 여는 일이 된다.

그 밤의 바울과 실라의 전도와 설교는 열매를 맺었다. 그 간수와 온 가족들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밤 그 시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그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했다. 한밤중의 세례식과 그 한밤중의 식탁과 기쁨의 교제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와 옥에 갇히는 고난을 받았으나 그 간수와 가족들의 귀한 영혼들을 구원했다. 그런 고난으로 귀한 영혼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도 즐거이 그런 고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35-40]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衙前)(랍두코스)[하급관리 lictor]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아마 간수는 그 밤의 일을 보고하며 그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과 처신은 자신들이 위법하지 않고 정당하게 놓여남을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복음의 진리성을 나타내려 함이었을 것이다. 육신적 고생도 있었지만, 영혼들을 구원하는 기쁨과 즐거움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 위로를 받아야 했을 그들이 오히려 형제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그들은 육신적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위로를 이미 받았고 그 위로로써 다른 형제들을 이제 위로하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들에게 특히 전도자들에게는 세상에서 억울한 비난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 같은 핍박과 고난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이 심히 악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둘째로, 사람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은 없다. 또 그 구원은 가정적 구원이다.

셋째로, 믿음의 길에는 선한 결실이 있다. 바울과 실라는 믿음으로 고난을 이겼고 옥중에서도 기도하며 찬송하였다. 그때 옥문이 열렸고 간수의 목숨이 구원받고 또 그와 그의 가족들의 영혼도 구원받았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고난은 있었으나 구원의 선한 결실도 있었다.

[열왕기하 14장 하나님 말씀]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왕하 1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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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4장에서는 남유다 왕국 아마샤와 북왕국 여로보암 2세의 정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샤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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