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장에서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우상 숭배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숭배하고 있다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함으로 우상 숭배하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상숭배치 말 것(고전 10:1-33)
1-13절, 실패의 본보기들
[1-4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의 역사를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았다. 구약성경에 증거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실제적 예로서 모든 인류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이 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였던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 광야를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때 다 구름 즉 구름기둥 아래 있었다(출 13:21-22). 또 그들은 바다 즉 홍해 가운데로 지나갔다(출 14:21-22). 그들은 모세와 함께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죽음의 바다에서 죄씻음의 구원을 얻은 것과 같았다. 또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를 먹었고(시 78:25; 105:40),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다(출 17:5-6). 사도 바울은 그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참 양식이시요 참 음료이시다(요 6:48, 51, 55; 7:37-39). 예수께서는 만나같이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시며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같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되신다.
[5-6절]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남자들 약 60만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광야에서 죽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의 역사는 우리의 거울과 본보기가 된다. ‘거울’이라는 원어(튀포이)는 ‘예들, 본보기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본보기들을 성경에 기록하여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과 같이 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 것이며 다시는 죄 가운데 살지 않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7-8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의 역사에서 가장 큰 죄는 우상숭배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며 하나님 대신 하나님 아닌 것, 곧 우상들을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 지혜와 참 지식의 시작이다(잠 1:7). 우리는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섬기지 말아야 한다. 돈도 육신적 쾌락도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없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오직 창조주와 섭리자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사랑하고 섬기며 그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인간 관계의 죄들 중 첫째로 중요한 죄는 간음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부 관계를 벗어난 음란 행위들을 매우 미워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음행하다가 하루에 23,000명이 큰 재앙으로 죽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과 부부 관계의 순결을 중시하신다. 우리 각 사람은 가정과 부부 관계의 순결과 사랑을 잘 지켜야 한다.
[9-10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그리스도](전통본문)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 중에 어떤 이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의심하고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며 원망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늘 함께하시며 도우시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그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자는 병에 걸렸을 때나 물질적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현실이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그에게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지 못하였다.
[11절]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말세를 만난 우리’라는 말은 신약시대가 말세임을 증거한다. 저는 성경이 지구의 역사가 현재까지 약 6천년임을 증거한다고 믿는다. 성경은 정확한 역사책이다. 지질학에 의한 수십억년의 연대는 주로 방사성 우라늄 동위원소의 반감기에 의해 측정한 것인데, 지금부터 수천년 전의 지구의 상태를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추론일 뿐이지 결코 확증된 연대가 아니다. 아담은 창조된 후 거의 천년 가량 살았고 그가 죽은 지 얼마 후 노아가 태어났다. 아담 창조 후 2천년경에 아브라함이, 3천년경에는 다윗이, 그리고 4천년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마지막 때에 자기 아들을 보내주셨다. 주께서 승천하신 후 2천년이 지나고 있으니 확실히 지금은 말세지말(末世之末) 즉 말세 중의 마지막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고 또 말세를 당한 우리에게 경계가 된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에 빠져 실패자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12-13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섰다’는 말은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정상적 상태를 가리킨다. ‘넘어진다’는 말은 불신앙과 불순종의 삶 즉 범죄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이 믿음에 섰고 순종하며 산다고 자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늘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지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만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그것도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을 의심하는 불신앙에 떨어지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힘쓰면서 늘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상숭배하지 말고 음행하지 말고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도우실 것을 기억하고 범사에 믿음으로 행하며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만 한다.
14-22절, 우상숭배를 피하라
[14절]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우상숭배는 유일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오늘날 돈이나 육신의 쾌락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우상숭배이다. 사도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불렀다(골 3:5).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제1, 2계명을 범하는 큰 죄이다. 우리는 우상숭배를 피해야 한다.
[15-18절]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축복의 잔과 떼는 떡은 성찬을 가리킨다. 성찬의 떡과 포도즙은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성도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의 십자가 사역으로 이루신 속죄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성찬의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며 그 떡을 조금씩 떼어 나누는 것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신비적으로 한 몸이 됨을 나타낸다. 또 제물을 먹는 자들, 즉 화목제물을 드린 후 그 일부분을 먹는(레 7:15-17)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단에 참여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주시는 은택을 누리는 것이다.
[19-20절]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그러나]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바울은 이미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말했다(고전 8:4). ‘대저’라는 원어(알르)는 ‘그러나’라는 뜻이다. 이방인의 제사는 종교적 성격을 띤다. 구정이나 추석 때에 조상들을 위해 드리는 제사나 차례는 단순히 조상을 공경하는 행위가 아니고 종교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우상이나 조상신은 신이 아니고 어떤 신적 존재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의 제사는 귀신들에게 하는 악하고 헛된 일이다. 이방인들의 제사하는 것이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들의 신 즉 그들의 우상을 인정하고 그 우상숭배에 빠져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1-22절]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성도는 이방인들의 제사 행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불신자가 섬기는 신이나 조상신이나 우상을 인정하거나 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상숭배에 빠진다면 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 대하여 노여워하시고 질투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만 섬기며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과 다투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방인들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절 때마다 행해지는 제사나 차례도 우상숭배이다. 조상들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들어가 있다. 그들에게 제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로, 우상제물을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것은 귀신의 상에 참여하는 것, 즉 우상숭배하는 것이다. 셋째로, 그러므로 성도는 우상숭배를 피해야 한다. 우상제물도 조심하고 멀리해야 한다. 우상숭배는 사람의 죄들 가운데 하나님을 노여우시게 하며 질투하시게 만드는 가장 큰 죄악이다.
23-33절, 덕을 세우라
[23-24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사도 바울은 신약성도들이 우상제물에 대한 지식과 자유함이 있음을 말했다. 8장에서도 그는 성도들이 우상제물에 대한 지식이 있고 자유함과 권리가 있음을 말했었다(1, 7, 9, 10, 11절). 그러나 비록 모든 것이 가하며 우상제물에 대해 자유함이 있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8장부터 10장까지에서 우상제물에 대한 교훈의 방향은 분명하다. 우상제물은 다른 이들의 유익과 덕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우상제물을 먹어도 되니 먹으라는 교훈이 아니고 먹을 수 있으나 먹지 말라는 교훈이다. 신약성도가 우상제물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상제물 자체의 불결함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유익과 덕을 위해서이다. 이것이 사랑의 원리이다. 주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희생하셨다. 우리가 주를 아는 자라면, 우리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지 말고 다른 이의 구원과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
[25-26절]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사도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이든지 아니든지 상관치 말고 사서 먹으라고 말한다.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는 말씀은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 혹시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임을 알게 될 때 약한 자들의 양심에 거리낌이 될 수 있으므로 묻지 말고 그냥 먹는 것이 좋다는 뜻이라고 본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이 세상에 우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상은 신이나 신적 존재가 아니다. 이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들에 불과함을 알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청지기의 심령으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27-30절]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전통사본).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불신자가 식사 초청을 할 때 성도는 가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식사 초청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예절 없는 일일 것이다. 그때 그 앞에 차려진 식탁에 우상제물이 있을지 모르지만, 성도는 함께 동참한 자들의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그냥 먹으면 된다. 그러나 어떤 이가 식탁의 음식물 중 어떤 것을 우상제물이라고 말하면 그는 알게 한 자의 양심을 위해 그것을 먹지 말아야 한다. 비록 지식 있는 자는 그것에 대해 자유함이 있을지라도, 함께 식사하는 이들 가운데 연약한 자의 양심에 거리낌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상제물이라고 알게 된 그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옳고 그래야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하는 것, 곧 덕을 세우는 것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감사함으로 먹는 일이 비방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31-33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넘어지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성도의, 아니 모든 인생의, 삶의 제일 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게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사 43:7). 사도 바울은 본 서신의 앞부분에서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였다(6:19-20). 32-33절을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같이, 너희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넘어지게 하지 않는 자가 되라.” 원문에서는 ‘되라’(기네스데)는 명령어가 주동사이다. 본문은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모든 사람의 구원과 유익을 위하여 행하라는 교훈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상에 대한 지식을 가진 성도라도 우상의 생각을 가진 약한 형제들의 양심에 거리낌을 주지 않도록 행해야 한다. 즉 약한 형제가 우상제물을 우상제물로 알고 먹어 우상숭배의 죄에 떨어지게 하지 않도록 덕스럽게 처신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덕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보다 남의 유익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다른 이의 구원과 유익을 위하는 자가 되고 그를 범죄케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
[소요리 문답 원문 성경공부]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目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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