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창세기 26장 성경 좋은 말씀] 이삭이 그랄에 우거함(창 26:1-35)

체데크 2022. 3. 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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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장에서는 흉년이 들어서 이삭이 그랄 땅에 가서 우거 하는 내용이 말씀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삭이 그랄 땅에서 백 배의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우거함(창 26:1-35)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었는데, 이삭 때에 또 흉년이 들었다. 땅의 흉년은 주로 하나님의 징벌로 온다. 그것은 사람들의 도덕성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짓기를 두려워하고 양심의 각성을 가진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땅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 이사야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듯이(12:7; 15:1; 17: 1; 18:1) 이삭에게도 나타나셨다. 그는 아마 꿈이나 환상 중에 나타나셨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 계시들의 기록이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이삭이 가나안 땅에 머무는 것이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부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이다. 창세기 12:7,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세기 13:14-15,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세기 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땅에 머물러야 하고 애굽 같은 곳으로 내려가지 말아야 했다.

[3-4]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3-4절을 다시 번역하면, “이 땅에 유하라.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 이는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며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며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이 땅에 유하라고 다시 반복해 말씀하신 후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신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항상 복되다. 후에,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었다(39:2-3, 23).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하는 복이 무엇인지 다시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이 모든 가나안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 부친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번성케 되어 이 모든 땅을 얻으며 그 자손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 약속이었다.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복을 약속하신 것은 그가 그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의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불순종 곧 죄는 징벌과 재앙의 원인이지만, 순종은 하나님의 복을 얻는 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는 평안과 형통을 얻는다.

[6]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거하였다. 그랄은 가나안 땅의 남서쪽의 해안 지역이다. 이삭은 믿음이 있는 자요 순종하는 자이었다.

[7]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은 그곳에 거할 때에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해 묻자 그가 나의 누이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그의 아내 리브가가 보기에 아름다우므로 그곳 사람들이 리브가로 인해 그를 죽일까봐 그의 아내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삭은 부친 아브라함처럼 인간적으로 연약하였다.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공통적 감정인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람이 이런 연약함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삭이 그랄 땅에 오래 거하였는데, 어느 날 그가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보았다. ‘껴안다는 원어(메차케크)놀다, 장난치다, 껴안다는 뜻을 가진다. 이삭은 그 아내 리브가를 간격 없이 친하게 대하며 사랑하였다. 그의 친근한 사랑은 바깥에서도 드러날 정도이었다. 부부는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부부는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다.

[9-11]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아비멜렉이 가로되 네가 . . . .

아비멜렉은 이삭을 불러 그가 참으로 네 아내인데 어떻게 네 누이라고 말했느냐?”고 추궁했다. 이삭은 내 생각에 그를 인해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고 솔직히 대답했다. 아비멜렉은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 뻔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고 말하며 모든 백성에게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고 명하였다. 이방 세계에도 부모 공경이나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의 금지 등 약간의 도덕성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킨다. 불완전하지만, 세속 정부의 역할은 바로 그런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위험한 중에서도 이삭을 지켜주셨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되게 해주셨다.

[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의 수확을 얻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복주셔서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물질적 복도 하나님의 복이다. 물론 하나님의 복은 물질적 복 이상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구원의 복, 즉 죄사함과 영생과 천국의 복이다. 그러나 물질적 복도 그의 복이다.

[14-15]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고 종들도 심히 많았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였다. 그들은 그의 부친 아브라함 때에 그 종들이 판 모든 우물들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 옛 시대에 우물은 생활의 기본적 요소인데 그것을 방해하였던 것이다.

사람 속에는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부패된 인간 본성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때때로 신자들 속에도 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어떤 이들이 투기와 분쟁의 마음으로 전도한다고 증거하였다(빌 1:15). 또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2:2-3).

[16-18]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와서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고 말했다. 이삭은 거기를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부친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다. 그것들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메웠던 것들이었다. 또 이삭은 그 우물들을 그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으로 불렀다.

[19-22]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또 이삭의 종들은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어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떠나 다른 우물을 팠다. 그런데 그들이 또 다투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우물을 팠다. 이제는 그들과 사이의 다툼이 없었다. 옛 시대에 우물 하나를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이웃 사람들이 다툼을 걸어올 때 그것을 피하였고 다시 다른 우물을 파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삭의 온유함과 인내심을 본다. 참된 경건은 선하고 온유한 성품을 동반한다.

[23-25]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은 거기서 브엘세바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전과 같이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런 행위는 이삭의 경건함을 증거한다. 이삭은 그의 부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단을 쌓는 자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며 기도하는 자이었다.

[26-29]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어느 날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로 계약을 맺자”고 제안하였다. 또 그는 이삭에게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이방인 아비멜렉이 이삭에 대해 증거한 놀라운 증거이다. 하나님의 사람 이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에게도 선한 증거를 받은 자이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본이 된다.

[30-33]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그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이삭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고 그들은 먹고 마시며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평안히 돌아갔다. 그날에 이삭의 종들은 이삭에게 와서 자기들이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질적, 환경적 평안을 주셨다.

[34-35]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에서는 40세에 헷 족속의 두 여자들을 아내로 취했다. 그러나 그 자부들은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다. ‘마음의 근심이라는 원어(모라스 루아크)영의 고통이라는 뜻이다. 잠언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때때로 어려운 일들이 있으나 우리는 그런 때에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가 복음 진리를 깨닫고 믿는다면 끝까지 그것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경적 믿음과 바른 삶 안에, 참된 교회 안에 거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평강과 형통이 따른다. 실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었고 천국과 영생의 약속을 받았다.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이런 내세의 복뿐 아니라, 현세의 복도 포함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6:33). 믿고 순종하면 복을 얻을 것이다. 또 사도 바울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했다(딤전 4:8).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육의 복, 현세적 내세적 복을 받자.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삭에게도 어려운 문제들이 없지 않았다. 그랄 사람들은 그의 종들이 판 우물들을 메우며 훼방하였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온유함으로 양보하며 참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누릴 때 어려운 문제가 전혀 없지 않겠으나, 온유함과 양보심을 가지고 참으며 그 어려움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이삭은 그 이웃에 사는 아비멜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에게서 선한 증거를 얻었다.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와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도다” “너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니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복된 증거이다.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 믿지 않는 이웃 사람들에게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5:14-16). 사도 베드로는 교훈하기를,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고 하였다(벧전 3:1-2). 사도 바울은, 교회의 장로가 될 자격자는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했다(딤전 3:7).

옳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는 믿지 않는 이웃 사람들에게 도덕적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되며 도리어 그들에게 선한 증거를 얻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복주심을 이웃에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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