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창세기 21장 성경 좋은 말씀] 이삭과 이스마엘(창 21:1-34)

체데크 2022. 1. 2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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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1장에서는 이삭의 출생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이 잉태 예언을 하시고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자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할 것을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이것은 구속사 관점에서 약속의 아들과 선택받지 못한 아들이 함께 살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삭을 복음의 아들이라면 이스마엘은 율법의 아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은 천국의 복음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복음의 아들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창 21:1-34)

 

1-21, 이스마엘을 내보냄

본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신 일과 여종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내게 된 일을 기록한다.

[1-2]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25년 전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가 살던 하란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해 복을 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12:2-3). 또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는 오는 봄 정한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7:21; 18:10, 14).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택하신 자, 곧 그를 경외하는 아브라함에게 복된 약속을 주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그가 약속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권고(眷顧)한다’(파카드)는 원어는 돌아본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돌아보셨고 약속을 지키셨다. 사라는 임신하였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셨고 그 약속의 말씀도 신실하였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성경을 주신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는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에 기록된 그의 모든 약속과 말씀은 신실한 말씀이다.

[3-5]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8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100세라.

아브라함은 사라가 그에게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라고 하신 이름이었다(17:19). 이삭(이츠카크)그가 웃는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난 지 8일째 되는 날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17:10, 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는 자이었다.

이삭이 출생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이었다. 2절은 아브라함을 늙은 아브라함으로 말하고, 7절은 이삭을 아브라함 노경에얻은 아들로 말한다. 원문은 같다. 100세 된 노인이 아들을 얻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보였다. 창세기 17:17은 사라의 나이가 90세라고 말하며 또 창세기 18:11은 사라의 경수(經水)가 끊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능력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었다(18:14).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다.

[6-7]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이삭을 출산한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고 말했다. 그의 웃음은 기쁨과 행복이 넘친 웃음이었다. 늙은 자신들을 통해 아들이 출산된 것은 참으로 자신들뿐만 아니라 그 소식을 듣는 모든 친지와 이웃도 함께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아브라함에게 감히 말할 자가 없었으나 그는 아브라함 노경에 아들을 낳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었다.

[8-9]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大宴)을 배설하였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아이는 잘 자랐고 젖을 떼는 때가 되었다. 그것은 보통 3살쯤이라고 추측된다. 어린아이가 병약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것은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려는 잔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사라가 보았다. 그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17살이며 조심할 만한 나이이었다. 더욱이 한 집에 배 다른 두 형제가 사니 이런 일은 예상할 만한 일이었고, 하갈이 좀더 생각이 있었다면 아들 이스마엘을 엄히 교훈하고 단속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것 같고, 사라는 그 일로 마음이 몹시 상했다.

[10-11]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사라의 감정은 일반 여인들의 감정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사라의 요청을 들은 아브라함은 아들 이스마엘로 인해 심히 근심하였다. 아들까지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큰 근심의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하갈을 첩으로 얻었을 때부터 예상된 문제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부족에서 왔고 한 집에 같이 살면서 해결하기는 불가능한 문제이었다. 서로 헤어지는 것이 불가피해보였다. 이스마엘도, 하갈도, 사라도 완전한 인격은 못되었다.

[12-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의 문제로 고민하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입을 것이지만, 사라에게서 난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참된 계보를 잇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삭을 위해, 이삭을 위주로 섭리하실 것이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예표이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자들이다(1:12). 또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한다(8:28).

[14-16]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였다.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해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와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보냈다. 인간적으로는 마음이 안 된 일이었지만, 가정의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그들을 내보내는 길뿐이었다. 여기에 인간의 연약함이 있다. 이것은 어느 누구의 부족 때문만이 아니었다. 하갈도, 이스마엘도, 사라도 다 부족하였다.

하갈은 아들과 함께 나가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였다. 브엘세바는 유다 땅의 맨 남쪽에 있고 남방(네게브) 지역에 속하였다. 가죽부대의 물이 다하자, 하갈은 그 아들을 한 떨기나무 아래 두고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살 한 바탕쯤 떨어져 아들 이스마엘을 마주 앉아 바라보며 크게 울었다. ‘살 한 바탕거리는 2, 3백m쯤 된다고 한다. 하갈의 눈물은 자신과 아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아들 이스마엘도 울었다.

[17-21]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말라. 하나님이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그때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셨다. ‘아이라는 원어(나아르)청년이라는 뜻도 가진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늘로부터 하갈을 불러 말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말라. 하나님이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또 그의 눈을 밝히시므로, 하갈은 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아들에게 마시웠다.

이스마엘은 비록 이삭과 함께 살 수 없는 처지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불안하고 두려운 광야에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아브라함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도 함께하셨다. 이스마엘은 커서 광야에 거하며 활쏘는 자가 되었고 하갈은 그를 위해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선택된 백성이 아닌 자들을 대표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고 말씀하셨다(4:11). 주께서는 하나님께서 햇볕과 비를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다(5:45).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신다고 말했다(10:35).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도 자비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자연만물에게도 자비하시다. 시편 104편은 땅의 짐승들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며 그가 주신즉 그것들이 취하며 그가 손을 펴신즉 그것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한다(27-28).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다(38:41). 주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풀을 입히신다고 말씀하셨다(6:26, 30).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그는 살아계신 주권자이시다. 그는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꼭 지키신다. 그는 전능하시다. 그는 모든 일을 언약 백성을 위해 섭리하신다. 그러나 그는 만인에게 자비하시다. 그의 긍휼과 선하심은 심히 크시다. 그는 겸손히 그를 찾는 모든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삶의 참된 해답이시다. 그는 인생의 삶에 목적과 방향을 주시고 방법을 알려주신다. 그는 우리에게 소망과 영생을 주시고 이 땅에서의 행복도 주신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과 방향은 무엇이며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여러분의 소망이 하나님이심을 아는가?

22-34,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음

본문은 그랄 왕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이 서로 언약을 맺은 사건의 이야기다. 이것은 평범한 사건처럼 보인다. 이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은 무엇인가?

[22-24]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낸 때 즈음,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계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놀라운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방인 아비멜렉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심이 저 이방인에게도 증거된 것이다.

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고 말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서로 해치지 않기를 맹세하는 언약을 맺자고 제안한 것이다. 환경적으로 불안했을 아브라함에게 이런 언약은 더 나은 안정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요청에 응하였다.

역사상 신앙의 열조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였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증거하였다. 아브라함이 그러하였다. 그의 아들 이삭도 그러하였다. 창세기 26:28에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은 그에게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말했다. 요셉도 그러하였다. 창세기 39:3에 보면, 그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가 생활하고 있었을 때, 그 주인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다. 다니엘도 그러하였다. 다니엘 4:8에 보면,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서도 느부갓네살 왕은 그의 안에 거룩한 신의 영이 있다고 증거하였다.

[25-31]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아브라함은 그때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기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해 말하며 그를 책망하였고 아비멜렉은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고 해명하였다.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취하여 그에게 주었고 서로 언약을 맺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양과 소를 준 것은 그의 호의와 우정에 대한 표시인 동시에 언약을 맺는 데 필요한 제물로 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 아브라함은 암양 새끼 일곱을 따로 구별하여 그에게 주려 하였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자신이 그 우물을 팠다는 것을 증거하는 표라고 그에게 말했다. 아브라함은 그곳을 브엘세바(ע󰔨󰚂 ר󰔞󰔶) 맹세의 우물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그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언약을 맺고 맹세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범사에 의롭고 너그럽게 처신하려고 애썼다. 그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상대에게 지적하고 책망하기도 하였고 선물을 통해 상대방의 호의와 우정에 대해 감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의와 선과 진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필수적 덕목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였다(5:8-9).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벌려 해서는 안 된다. 잠언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16:8). 또 집사의 자격에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딤전 3:8).

성경은 우리에게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에게 선을 베풀라고 교훈한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하셨다(5:44-45).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했다(12:17, 20-21).

[32-34]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웠고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는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 ‘에셀나무는 타마리스크 나무 또는 위성류라고 한다.

또 아브라함은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다.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천지만물은 그가 창조하신 것이다.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셨다. 모세는 시편 90:1-2에서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 천지 창조 이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경건이며, 거기에 영생의 길이 있다.

천지만물은 지금 낡고 쇠하여지고 있다. 시편 102편에는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라고 말했다(102:26-27). 성경은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다(1:2).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벧전 1:24-25). 그러므로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썩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6: 27).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낡고 쇠해지고 썩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며 그의 말씀도 영원하고 불변하다(벧전 1:25).

오늘 평범하게 보이는 이 사건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귀한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신앙의 열조들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삶 속에서 체험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증거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둘째로, 우리는 신앙의 열조들처럼 의롭고 너그러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 셋째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되면, 첫째 것과 둘째 것도 이루어질 것이다.

[로마서 5장 강해 설교말씀] 칭의(稱義)의 결과(롬 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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