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욥기 15장 하나님 말씀] 엘리바스의 말씀 악인은 일평생 고통을 당한다(욥 15:1-35)

체데크 2022. 2. 5. 10:42
반응형

욥기 15장은 욥의 대답에 엘리바스가 비난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의 교만과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정죄하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해야 합니다.

 

엘리바스의 말씀 악인은 일평생 고통을 당한다(욥 15:1-35)

 

[1-6]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지혜로운 자가 . . . .

욥의 친구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대답하며 말했다.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 어찌 유조(有助)치 아니한[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黙禱)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

엘리바스는 욥에 대해 여러 말로 잘못된 비난을 쏟아내었다. 그는 욥의 말이 헛된 지식,’ ‘무익한 말,’ ‘불경건한 말,’ ‘간사한 자의 혀라고 비난하였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의 형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고 욥은 자신의 고난이 어떤 특정한 죄 때문이 아니라고 변호했던 것인데, 엘리바스는 계속 욥을 정당하지 않게, 그릇되이 비난한 것이다.

참된 성도도 친구들에게 이런 오해를 당할 수 있다. 욥의 고통은 경제적, 가정적,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친구들의 비난까지 겹친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어떤 특정한 죄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욥기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요 욥기의 중심적 교훈이다.

우리는 친구에게 바른 조언을 주어야지 잘못된 조언을 주거나 그를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경우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25:11). 또 잘 알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주관적 판단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완전한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전 4:5).

[7-10] 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 . . .

엘리바스는 또 말한다. “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하나님의 모의(謀議)[은밀한 회의](NASB)를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너의 아는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가 알지 못하겠느냐? 너의 깨달은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에게는 없겠느냐? 우리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 하여 네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엘리바스는 욥의 확고한 지식과 신념에 대해 반박하면서 그 친구들 가운데는 나이 많은 자도 있고 심지어 욥의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으며 나이 많은 자들은 젊은 자보다 지혜와 지식이 더 많은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율법은,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말했다(19:32). 욥기 12:12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의 조언하는 바를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조언을 따라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하며 행함으로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을 초래했다(왕상 12:6-20).

그러나 영적 진리는 반드시 연령에 비례하지 않는다. 시편 119:100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지키는 자가 노인보다 더 명철하다고 말했다. 주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11:25).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나이와 세상 경험이 많은 자들이었지만, 그 심령이 무지하고 완고하였고 영광의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였다.

[11-13]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 . . .

엘리바스는 또,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말씀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고 말한다. 그가 말한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말씀하시는 말씀, 친구들이 욥에게 한 충고들, 즉 그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는 자기들의 충고들을 하나님의 위로와 온유한 말씀이라고 말하며 욥이 왜 그것들을 무시하느냐고 꾸짖는다. 그러나 실상 욥의 친구들의 충고들은 하나님의 위로와 온유한 말씀이 아니었다.

엘리바스는 또, “어찌하여 네가 마음에 끌리며 네 눈을 번쩍여 네 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고 네 입으로 말들을 내느냐?”고 말한다. ‘네 눈을 번쩍여라는 표현은 불쾌하고 적대적인 마음을 눈으로 표현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는 욥이 그런 눈빛을 하면서 그의 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의 입으로 말들을 낸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 욥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친구들의 잘못된 조언 때문에 마음이 상하였던 것뿐이다. 욥의 말은 친구들을 반대한 것이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은 아니었다. 엘리바스가 욥의 말들을 하나님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불경건한 말로 이해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바르게 알지 못할 때 이런 실수를 하게 되고 상대방을 잘못 평가하거나 정죄하게 된다. 다윗은 그를 대적하는 악한 자들이 종일 그의 말을 곡해하였다고 말했었다(56:5). 또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고 하셨다(16:2).

[14-16]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 . . .

엘리바스는 또 말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엘리바스는 사람이 깨끗하지 못하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수아 사람 빌닷도 그와 비슷하게 욥기 25:4-6에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고 하였다. 사람의 죄성과 그 결과로 인한 심한 비천함과 불행은 가히 벌레와 구더기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욥은 절대적 의미에서 사람이 깨끗하고 의롭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욥은 자신의 죄악됨에 대해 욥기 14:4에서,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욥이 자신을 의롭다고 말한 것은 단지 자신이 하나님 앞에 큰 벌을 받을 만한 어떤 특정한 죄가 없다는 것을 뜻하였다. 평소에 욥은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엘리바스가 증거한 사람의 전적 부패성은 진리이지만, 그가 그것을 욥에게 적용하려 한 것은 무리하였고 적절치 않았다.

인간의 전적 부패성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의 실패에서, 또 사사시대의 반복된 범죄에서, 또 구약의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에서 밝히 증거된 진리이다. 특히 선지자 예레미야는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였고 선을 행하기에 무능함을 증거하였다(렘 17:9; 13:23).

[17-19]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나를 들으라. 내가 본 것을 . . . .

엘리바스는 또 말한다.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나를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이 그 열조에게서 받아 숨기지 아니하고 전하여 온 것이라. 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었느니라.”

엘리바스는 지혜자들이 그 열조로부터 받아 숨기지 않고 전해준 것, 곧 인간의 전통적 지혜의 말을 욥에게 말하고자 한다. “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었느니라는 말은 그 열조들의 지혜가 외부의 것과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고 전달되어졌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전통은 완전하지 못하다. 그것은 좋은 것도 있으나 좋지 않은 것도 있다. 심지어 교회적 전통도 그러하다. 교회 역사는 교회의 부패를 증거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은 떡 먹을 때에 손을 씻는 장로들의 유전을 지켰으나 부모 공경에 대한 하나님의 계명은 소홀히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주의 제자들이 떡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다고 그들을 비난하였다. 그때 주께서는 책망하시듯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15:3-6).

[20-24]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 . . .

엘리바스는 계속 말한다.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미스콜렐)[고통으로 몸을 뒤틀며]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므로(니츠페누)[혹은 ‘저장되었으므로’] 귀에는 놀라운(페카딤)[두려움의, 두려운 일들의](KJV, NASB, NIV) 소리가 들리고 그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자신이 어두운 데서 나오리라고 믿지 못하고] 칼날의 기다림이 되느니라. 그는 유리하며 식물을 구하여[양식을 위해 방황하며]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환난과 고통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니.”

엘리바스가 전하는 열조들의 지혜의 말은 악인이 일평생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악인은 일평생 고통으로 몸을 뒤틀며 강포자는 그 죽음의 날이 언제 찾아올 지 모르나 다 작정되어 있다. 악인의 귀에는 두려운 일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할 것이다. 잠언 10: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악인은 자신이 그 환난에서 회복될 것이라고 믿지 못하며 칼날을 기다리다가 죽음을 맞을 것이다. 또 그는 양식이 부족하여 그것을 얻으려 방황하며 재앙의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안다. 환난과 고통은 그를 두렵게 하고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이길 것이다. 악인에게 질병, 기근, 전쟁 등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 재앙이 있다는 것은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이며 하나님의 공의의 원리이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48:22; 57:21). 단지, 이 진리가 욥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25-27] 이는 그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 . . .

엘리바스는 또, “이는 그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를 배반함이니라. 그는 목을 굳게 하고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고 달려가나니 그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고라고 말한다. 본문은 악인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향해 그 손을 들며 전능자를 향해 거만하게 행하기 때문이다. ‘교만하여 배반한다는 원문(이스갑바르)거만하게 행한다는 뜻이다(BDB, NASB). 고의적 불경건은 대단히 큰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와 선의 근거이시며 이유이시다. 모든 죄는 불경건에서 나온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난다(16:6). 그러나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대신 자기 자신을 높이고 의지하며 거기에서 모든 죄가 나온다. 인간이 창조주이시며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본문은 또 악인이 목을 굳게 하며 자기 방어물로 무장하며 하나님을 향해 달려들듯이 대적한다고 표현한다. 27절은 악인이 거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까닭을 말한다. “[이는](원문) 그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음이니라.” 악인이 거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그가 몸이 건강하고 물질적 유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몸이 아프고 물질적 어려움이 있으면 겸손히 하나님을 찾지만, 몸이 건강하고 물질적 여유가 있으면 자기 만족에 빠지고 영적으로 둔해지고 죄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창조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28-30] 그는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 . . .

엘리바스는 또 말한다. “그는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무더기가 될 곳에 거하였음이니라[거하는도다]. 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항상 있지 못하며 그 산업(민람)이 땅에서 증식하지 못할 것이며 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하리니 불꽃이 그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에 그가 떠나리라.” ‘흑암한 데는 환난과 재앙을 가리키며, ‘불꽃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꽃을 가리키며, ‘가지는 사람의 자녀들이나 그가 벌여놓은 일들을 가리킬 것이다.

엘리바스는 악인의 보응에 대해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돌무더기가 될 곳에 거할 것이다. 그가 사는 도시와 성읍이 황폐할 것을 말한다. 또 악인은 비록 지금 부요함을 누리고 상당한 재산과 소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의 부요함은 끝나고 그의 재산은 항상 있지 못하며 그의 소득도 땅에서 쇠하여질 것이다. 즉 그의 경제적 유여함이 끝나고 궁핍이 찾아올 것이다.

악인은 환난과 재앙을 떠나지 못하며 그것이 항상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또 하나님의 진노의 불꽃은 그의 자녀들이나 그가 벌여놓은 일들을 쇠잔케 할 것이다. 그리고 악인은 마침내 하나님의 입김, 곧 그의 진노의 입김으로 멸망하고 말 것이다. 악인의 보응은 확실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말씀하신 바이다. 그것은 또한 사람이 양심으로 느끼는 바이며 또 삶 속에서 경험하는 바이다.

[31-35] 그는 스스로 속아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 . . .

엘리바스는 계속 악인의 보응에 대해 말한다. “그는 스스로 속아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 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룰 것인즉 그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포도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 사곡한(카네프)[불경건한] 무리는 결실이 없고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 그들은 악한 생각을 배고 불의(아웬)[헛된 것]를 낳으며 마음에 궤휼[거짓]을 예비한다 하였느니라.”

본문은 악인이 스스로 속아 허망한 것을 믿다가 허망한 결과를 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가 가졌다고 생각한 것은 결국 다 공허해질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다. 만일 그가 처음부터 그것의 헛됨을 깨달았다면 그는 세상 것들에 대한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영원한 천국과 영생을 크게 여기며 사모하였을 것이다.

악인은 그의 날곧 그의 번창하고 성공하는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곧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그의 자녀들이나 그가 벌여놓은 일들은 잘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포도나무에서 익지 않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고 감람나무에서 감람 꽃이 떨어지는 것 같을 것이다. 악인은 잘되는 것 같다가 멸망할 것이다.

악인들은 불경건하고 뇌물을 받는 자들인데 결실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복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또 그들의 장막, 그들의 집과 가정은 불탈 것이다. 그들은 악한 생각을 마음에 품고 헛된 것을 행하며 또 거짓된 것을 마음에 준비할 뿐이다. 의인과 악인의 삶은 판연히 다르고, 악인은 공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엘리바스는 욥에 대해 잘못된 비난을 쏟아내었다. 욥의 친구들 중에는 나이 많은 자도 있었다. 그러나 단지 노인들의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비난처럼 욥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웃에 대해 성경에 입각하여 바른 판단을 하고 바른 조언을 주어야 한다.

사람의 전통, 심지어 교회의 전통도 완전치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너무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완전하다(19:7-8). 우리는 성경의 말씀만 굳게 지켜야 한다(살후 2:15).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은 오직 신구약 성경뿐이다.

욥은 친구들의 말대로 인간이 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인간은 성경의 증거하는 대로 전적으로 부패하였고 무능력해졌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 욥이 변명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신이 특정한 죄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인들이 일평생 재앙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교만과 불경건 때문이다. 우리는 거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악인들의 성읍은 황폐해질 것이다. 그들이 지금 누리는 물질적 부요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환난과 재앙이 임하고 그들이 하는 일들은 쇠잔하고 잘 되는 것 같다가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교만을 버리고 자신이 피조물이며 죄성을 가진 부족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교만과 불경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에 계시되고 증거되고 기록된 하나님의 뜻과 그의 교훈들과 계명들을 힘써 배우며 의와 선만 구하며 행하자.

[에스더 9장 강해 설교말씀] 유대인의 대적들을 멸함(에 9:1-32)

 

[에스더 9장 강해 설교말씀] 유대인의 대적들을 멸함(에 9:1-32)

에스더 9장에서 모르드개는 부림절을 선포합니다. 부림절은 역전의 날입니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역전하셔서 구원받은 날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모든 대적을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