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91장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우리는 장례식 발인 예배에 참석할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왔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얼마나 살다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땅의 것을 바라보면서 살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바라보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계 21:22-27)
서론 : 장례 찬송으로 널리 알려진 이 찬송은 불신자들의 입에서도 많이 오르내리는 찬송이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특히 이 후렴 가사는 매력적이며 뜻이 깊은 내용인데, 신자는 물론 불신자들도 잘 부른다(물론 조롱하는 뜻이나 비평하는 입장에서라도 불신자들이 잘 아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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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찬송이 지어진 데 대한 재미나는 일화가 있다. 작사자는 미국 출신 베네트(S.F.Bennett 1836-1898)와 작곡가 웬스터(J.P.Webster 1819-1895)는 친구지간이다. 베네트는 직업이 의사로서 일하며 젊어서부터 시를 쓰고 찬송 가사를 지었다.
한번은 평소 의기소침하고 우울증이 있는 웬스터가 베네트의 병원에 찾아와서 바이올린과 외투를 벗어 걸고 말없이 창가에서 낙엽 지는 풍경을 처량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베네트가 물었다.
"아니 왜 그리 울적하오?"하고 물으니 "아니오. 곧 좋아지겠지요"이 대답을 들은 베네트는 "얼마 후 곧 좋아지리라"하는 영감이 떠올랐다. 그는 처방 전 뒤쪽에다 순식간에 "대낮보다 더 밝은 그곳 우리가 마음으로 보겠네…"하며 찬송 4절을 적어 나갔다.
이 찬송 시를 건네받은 웬스터는 환희에 넘쳐서 즉시 바이올린을 끌어올리더니 30분도 못되어 "SWEET BY AND BY"의 곡조를 작곡하였다. 너무나 가사와 곡조가 잘 어울려 베네트와 웬스터 그리고 간호원과 진료받던 환자 이렇게 네 사람이 이곡에 맞추어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최초의 연주였다.
마침 그때 병실 밖을 지나가던 크리스바 목사가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그렇게 아름다운 찬송 저도 같이 부릅시다"하여 같이 부르고 그날 저녁 자기 교회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곧이어 전 미국에 퍼졌다. "변챦는 주님의 사랑"(214장)의 작곡도 이 웬스터가 지은 같은 곡조의 찬송이다.
1. 주님이 예비해 두신 천국
예수님은 십자가 수난을 앞두시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마음 자세가 너무나 부족한 상태에 있었으니 아직도 저마다 높고자 하는 망상과 예수님과 이별하게 되면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염려하고 있었다. 이에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세족의 교훈을 실물 교수하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고 동서고금에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교훈을 하셨다. 그리고 근심에 사로 잡힌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4)고 하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신 때가 있다(요 2:16). 또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딤전 3:15). 요한복음 14:1-4에서는 영원한 천국을 가리켜 준다.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뜻은 그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늘의 문을 여시고, 그 택하신 자를 위해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천국)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히 11:16).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므로(롬 8:34) 성도들의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다.
요한 계시록 21-22장에는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다고 하였다. 그 규모는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열 두 진주요, 문마다 한 진주인데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역시 유리 같고 각 성의 기초적은 각색 보석(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청옥, 비취옥, 청옥, 자정)으로 꾸며졌으니 어떻다고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수정같이 맑은 생명의 강이 보좌로부터 나서 흐르는데 강 좌우편에 생명나무가 있고 열두 가지 실과를 날마다 맺는 곳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취니 해와 등이 소용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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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믿는 맘 가지고 가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 두셨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1절>
2. 광명한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나리.
찬란한 주의 빛 있으니 거기는 어두움 없도다.
우리들 거기서 만날 때 기쁜 낯 서로가 대하리
며칠 후 며칠 후…<2절>
우리가 가서 사 천국은 찬란한 빛이 발해지는 광명한 곳이다. 요한계시록 21:23-25에서 언급된 대로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추임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은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또 계속하여 요한 계시록 22:5-6에도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라고 하였다. 쉽게 말해서 광명한 곳은 천국이요, 어두운 곳은 지옥이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몇 가지를 들어 생각해 보자.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신앙을 칭찬하시면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1-12)고 하셨고, 또 왕자 혼인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자에게 왕이 선언하기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고 하셨다. 또 베드로후서 2:4에는 "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으니 어두운 곳은 결국 지옥이요, 광명한 곳은 천국이다.
이 광명한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때 얼마나 기쁠 것이며, 앞서간 성도들과 가족들을 만날 때 그 기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죽음은 슬픔이나 절망이 아니요, 즐거운 재상봉이다.
3. 천국에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뿐이다.
새 찬송가에서는 같은 가사 같으나 3절에 "이미 세상을 떠난 자 중 천국 간 친구들 많더라…"라고 분명히 '천국'이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 부르는 찬송가 3절에는 "이 세상 작별한 성도들 하늘에 올라가 만날 때…"라고 하여 분명히 '하늘'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천국'은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주님이 이미 예비해 놓은 처소 즉, 성도가 죽은 후에 가서 영원힌 살 곳이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천국'이다. 그런데 반하여 '하늘'하면 공기나 대기권과 지상으로부터 위로 있는 공간 세계 즉 '창공'을 뜻한다고 하겠다.
물론 원어를 풀이 해석할 때 여러 가지로 해명을 할 수 있겠고, 찬송가 위원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었다고 전해 듣고 의견 대립도 있은 듯하나 일반적으로 해석할 때 '천국'이라는 용어와 '하늘'이라는 이름의 차이는 심각하다고 보겠다. '천국'이 무엇이 부족하여 '하늘'로 둔갑을 시켰는가? 그들은 천국에 가는 것보다 하늘에 올라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인가? 이상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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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는 성도들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뿐이다.
광명한 천국에 계신 주 우리도 모시고 살겠네. 성도들 즐거운 노래로 영광을 주 앞에 돌리며… 며칠 후 며칠 후…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가서 할 일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영원토록 그를 찬송하는 일이다.
결론 : 요단강은 이스라엘 나라 동부와 서부를 분할하는 역할을 하는 강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그치고 가나안 본토에 들어올 때 요단강을 건너온 것을 상징하며, 요단강 건너가 천국에 가서 며칠 후에 만나리라고 찬송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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