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욥기 19장 설교문 중에서 욥기를 통해서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욥은 이미 부활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부활의 고백(욥 19:25-26)
♣명제: 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 시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면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마지막 날에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부활절 말씀으로 욥기에 나오는 본문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욥은 우스 땅에 살고 있습니다.
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은 우스 땅에 살면서 온전하고 정직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은 족장시대의 인물로서 아람 지역에 살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이때는 하나님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던 때입니다. 그런데도 욥은 자신의 고향인 우스 땅에서 신앙과 윤리와 도덕을 겸비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욥에게도 어려운 시련이 닥치게 됩니다. 사탄의 시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큰 부자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의 신앙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욥은 어려운 시련이 닥치자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욥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시련을 이겼더니 두 배의 복을 받았다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욥기의 주제는 율법적인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복음의 신앙으로 돌아서는 것이 욥입니다. 우리들도 욥처럼 율법에 빠져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 신앙생활을 했지만 결국 욥처럼 모든 것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하고 나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을 포기하려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다가 이제는 눈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의 신앙은 철저한 율법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자신이 최고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련이 닥치자 그 입에서 원망 불평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욥 자신이 잘났다고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을 때에 너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우주만물을 먹이고 입힐 때에 너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너는 무엇이 하나님 앞에 의롭냐고 하나님은 물으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욥은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에 욥이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백하는 것이 전에는 주님을 대할 때에 귀로 듣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나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의 율법적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신앙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냈던 신앙은 사라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신앙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어떤 신앙입니까? 매일 주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만 듣고 있습니까? 귀로만 듣는다는 것은 정확하게 주님이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은 주님을 귀로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회개하고 나면 그때서 주님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욥이 회개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적인 신앙에 있었던 것은 모두 사라지고 불타서 없어지지만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고 나면 갑절의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이런 욥이 빌닷의 말에 대답하고 있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욥이 시련을 겪고 보니 자신이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욥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 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알기에는 나의 대속 자가 살아 계시니 결국에는 대속 자가 땅 위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의 대속 자가’ (גאל가알 1350) 속량하다, 무르다, 구원하다, 라는 뜻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나의 대속 자가 되어 주셔서 나의 죄를 속량해 주시고 잃어버렸던 기업을 회복시켜 주시고 현재의 상태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알’ 이라는 단어는 구약의 ‘고엘’로서 친족의 대를 이어주고 잃었던 땅을 다시 되찾아주며 원수를 복수해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원죄에서 회복시켜 주신 분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아니면 절대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잃었던 에덴동산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첫 아담이 잃었던 기쁨이 넘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살았던 에덴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또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짓밟아 승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나의 ‘고엘’ 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땅’ (עפר아파르 6083) 흙, 티끌, 땅, 이라는 뜻입니다. 욥이 고백하고 있는데 대속 자가 살아계시고 이 분은 끝내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은 흙과 티끌을 말씀하는 땅입니다. 욥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난 후에 부활할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흙이라는 단어가 (עפר아파르)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무덤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흙을 가지고 사람을 빚은 것처럼 영화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땅에 선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ארץ에레츠 776) 땅, 지구, 육지의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시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서실 것이라’ (קום쿰 6965) 일어나다, 확정되다, 성취하다, 라는 뜻입니다. 대속 자가 마침내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일으켜 세워서 영화의 몸으로 부활시켜 주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마음에 확고부동하게 확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말씀대로 성취가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지만 무덤에서 삼일 동안 계시다가 하나님에 의하여 영화의 몸으로 부활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되신 예수님은 더 이상 죄악 된 몸인 썩어질 몸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부활할 수 있었던 근원은 바로 성부 하나님에 의해서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영화의 몸으로 부활한 사건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영화로운 몸의 부활을 우리가 믿고 주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욥19: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처럼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했다면 이제는 나 자신이 영화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벗김을 당한’ (נקף나카프 5362) 벗김을 당하다, 파괴하다, 끝내다, 라는 뜻입니다. 욥은 자신의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죽이 벗김을 당한다는 것은 죄악의 몸이 죽어 썩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가죽이 벗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죄악 된 몸은 완전하게 파괴되어 끝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영화의 몸으로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썩을 육체가 벗김을 당하는데 죄악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 벗김은 육체의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벗겨버리는 것을 말씀합니다. 육체의 죽음을 피하려고 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번으로 육체의 죽음은 끝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여러 번 죽을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죽는 순간 벗김을 당한 것입니다.
‘내가 보리라’ (חזה하자 2372) 주시하다, 응시하다, 깨닫다, 라는 뜻입니다. 욥이 자신도 영화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면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시하여 보면서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환상을 볼 때에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부활하고 난 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주님의 영화의 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욥이 자신도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면 반드시 영화로운 주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한 번 부활하고 나면 계속해서 주님을 볼 수가 있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들도 마지막 날에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면 이전의 몸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영화의 몸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죄악 된 몸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가죽이 벗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육체 밖에서 영화의 몸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 자신도 마지막 날에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열심히 신앙생활하시고 끝 날에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소망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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