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시편 42편 설교문] “목마른 사슴의 소원”(시42:1:5)

체데크 2020. 6. 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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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시편 42편 설교문의 목마른 사슴의 소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목마른 사슴의 소원”(시42:1:5)

 

명제: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

목적: 낙심된 영혼들은 간절히 주님을 만나기를 소원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시편은 원수들에게 압제당할 때에 시편 기자가 마음이 너무나 상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만나기를 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들도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문제 때문에 곤욕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괴로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본시를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을 목마른 사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처지가 목마른 사슴과 같이 갈급함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 해결의 갈급함이 있습니다. 이것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고 맡기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마른 사슴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자신의 영혼이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시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목마른 사슴은 현재 시냇물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건기 때에는 물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샘들이 말라버렸기 때문에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급함을 채워주시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 내가 목마른 사슴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얼굴을 뵐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갈급하니이다’는 (ערג아라그 6165) 갈급하다, 헐떡거리다, 열망하다, 라는 뜻입니다. 현재 외부의 문제 때문에 영혼이 목마른 사슴처럼 시냇물을 찾듯이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전혀 물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영혼은 헐떡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말씀을 먹지 못함으로 인하여 영혼은 주님을 더 열망하고 갈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나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주님을 찾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마른 사슴처럼 갈급함이 있는데 해결이 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시냇물을 찾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생수를 먹지 못하면 영혼은 죽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찾고 마셔야 합니다. 나의 영혼이 괴로울 때에 생명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시면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영혼의 갈증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뵈올까’는 (ראה라아 7200) 보다, 바라보다, 주목하다, 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면서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언제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을 주목하여 볼 수가 있습니까? 내가 나간다고 해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목마른 사슴과 같은 나에게 찾아오실 때에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습니다. 닢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나지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찾아오시게 됩니다. 그때까지 나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나의 영혼을 채워주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나의 영혼의 생수가 되시는 주님께 모든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은 주님의 때에 나에게 나타나셔서 얼굴을 뵐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원수들이 거짓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에 대하여 탄식하고 있습니다.

 

시42:3-4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목마른 사슴과 같은 자는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왜 억울함을 풀어주시지 않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뻐하고 감사의 소리는 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더니 이제는 이 일을 기억하고 마음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말을 만들어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하였더니’는 (דדה다다 1718) 동행하다, 겸손히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전에 같이 행동하고 하나님의 집에 있었던 자들이 변심하여 공격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너무나 아픈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전에는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일을 지킨다고 예배에 참석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곳에서 기뻐하면서 감사의 소리로 찬양도 하고 고맙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 사람들이 마음이 변하여 목마른 사슴과 같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을 믿는데 자신에게 유익이 있으면 믿고 유익이 없으면 버리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죄송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처음에 율법주의자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이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면서 최선을 다하는 겉모습만 보고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은 자신의 육체적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했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랬더니 자신에게 육체의 유익이 사라지니 목마른 사슴과 같은 사람의 약점을 잡아서 모욕하고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율법주의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믿으면서도 자신의 육체적 유익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 잘 못된 신앙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여 괴롭히고 마음을 상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결국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목마른 사슴과 같은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됩니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고 자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타나 도우심으로 내가 여전히 주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낙심하며’는 (שחח샤하흐 7817) 낮추다, 가라앉다, 엎드리다, 라는 뜻입니다. 영혼이 낙심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 자신을 하나님께 낮추고 복종하여 엎드리면 능력의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 낙심할 것도 없고 불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이 자꾸 낙심된 생각만 하면 돌파구가 생기지 않습니다. 자꾸 안 좋은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께 소망을 두면 좋은 쪽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결과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반드시 주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을 두라’는 (יחל야할 3176) 기다리다, 앙망하다, 바라보다, 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영혼이 낙심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될 날이 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럼 이제 우리들도 문제가 있을 때에 영혼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시고 주님만을 앙망하면서 바라보시면 문제는 반드시 해결 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스스로 자신에게 명령하면서 말합니다. 절대 낙심하지 말라고 나에게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권능의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에 불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이 나타나 도와주심으로 나는 주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우심으로 말미암아’는 (ישועה예슈아 3444) 구원, 구출, 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예슈아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어렵고 힘든 상황을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상형적 의미로 구원을 풀어보겠습니다. (ישוע예슈아 3442)는 예수님입니다. (ה헤)는 숨구멍이라는 상형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호흡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주님입니다. 주님이 나타나시면 막혔던 숨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답답해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할 때는 풀어지지 않았지만 주님께 맡기니 주님이 한 번에 숨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호소해 봤자 약점이 되어 결국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옵니다. 이제 영혼이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목마른 사슴처럼 시냇물을 찾듯이 오늘 우리는 주님의 생명수를 찾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고통 가운데서 혼자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고 오직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면서 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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