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복음 6장 설교말씀] “살리는 것은 신령한 몸이고 육체의 몸은 무익하니라”(요6:60-65)

체데크 2020. 10. 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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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6장 설교말씀 중에서 살리는 것은 신령한 몸이고 육체의 몸은 무익하니라는 말씀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살리는 것은 신령한 몸이고 육체의 몸은 무익하니라”(요 6:60-65)

 

명제 : 주님은 바라의 신령한 몸을 살리려 오신 분이다.

목적 : 주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나의 신령한 몸을 살려 주셨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시고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음식이 남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육체의 임금 삼으려고 붙잡았습니다. 주님은 육체의 임금으로 오신 분이 아니라 영혼의 신령한 몸을 살리려고 오신 분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떠났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육적인 일에 있습니다. 육적인 배고픔이 해결되니 예수님을 자신의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싫어하시고 혼자 떠나셨습니다. 지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세상에서 육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주님은 나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임금으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영혼을 살려주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떠난 후에 사람들은 다시 육적인 배고픔이 왔기 때문에 주님을 찾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다시 베풀어 달라고 찾았습니다. 주님은 육적인 배고픔을 채워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배고픔을 채워주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영적인 생명의 떡은 아무나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붙여준 자만 먹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이 양식이고 주님의 피가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먹음으로 나의 속 사람이 살고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요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어렵기 때문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말씀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중에도 영생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렵도다’ σκληρος(스클레로스 4642) 굳은, 거치른, 딱딱한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거칠고 딱딱하여 맛이 없는 말씀으로 듣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딱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는 육체의 귀를 즐겁게 해 주고 달콤하게 해주는 기복적인 설교를 들어야 하는데 영적인 순수한 무교병의 복음을 전해주니 맛이 없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을 먹으면 안 됩니다. 무교병은 누룩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딱딱하고 거칠고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육체의 즐거움을 말하지 않고 영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준 자들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십자가 복음만 전하는 말씀을 싫어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영적으로 깨어 오직 복음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6: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자들끼리 서로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수근거리는’ γογγυζω(공귀조 1111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3인칭) 불만하다, 불평하다, 투덜거리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다는 말씀을 들은 제자 중에 몇 사람이 불평을 하면서 말씀에 대하여 투덜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설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직설법은 제자들이 실제로 주님의 말씀을 놓고 불평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혹시 영적인 복음의 말씀을 듣고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육적인 유교병의 말씀을 해야 하는데 설교가 너무 맛이 없고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고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신앙을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는지 확신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걸림이 되느냐’ σκανδαλιζω(스칸달리조 4624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 성내다, 실족하게 하다, 범죄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함정과 덫과 걸림돌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주님의 말씀이 제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게 되고 덫과 같이 빠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는 영적인 주님의 말씀의 덫에 걸려 실족하여 빠지게 됩니다. 노아 때에도 실족하여 걸려 넘어진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으로 다시는 홍수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지개 언약을 믿지 못하고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무지개라는 단어에도 올무와 덫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이 쳐 놓은 올무와 덫에 걸려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직설법은 주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 중에 실제로 덫과 올무에 걸려 넘어진 자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복음에 걸려 넘어지면 안 됩니다. 오직 순수한 복음만이 나의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유교병을 먹는 순간 타락하게 되고 육체의 쾌락에 빠지게 됩니다. 육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설교는 나의 영혼을 죽이고 멸망의 길로 빠지게 만듭니다.

 

요6: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의 불평과 불만을 들으시고 답답해하셨습니다. 자신이 생명의 떡이고 자신의 피가 음료라고 하는 말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셨던 곳으로 부활되어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믿겠냐는 말씀입니다. 실제 육적인 눈으로 주님을 보고 있어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주님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승천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은 믿어지겠냐는 것입니다.

 

‘이전에’ προτερον(프로테론 4386) 이전에, 옛날에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해결하시려고 육체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다시 원래의 상태로 영광을 받으시려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제자 중에 이런 모습을 볼 때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은 자는 유교병을 먹지 않습니다. 딱딱하지만 나의 영혼에 약이 되는 오직 무교병 만을 먹습니다. 무교병은 맛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어떠한 것을 첨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복음은 세상의 육적인 지식과 문화를 첨가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복음은 육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주님의 사역의 목적은 영을 살리는 것입니다. 육은 무익하여 이 세상에서 썩어 사라지면 끝입니다. 하지만 영혼인 신령한 몸은 다릅니다. 영원히 살기 때문에 지옥의 불 못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주님이 나에게 전해주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은 나의 영혼이 이 땅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구원받을 기회는 육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뿐입니다.

 

롬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구원받은 자는 영혼이 살아난 사람입니다. 바울도 자신의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준 자는 속 사람이 살아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 복음의 무교병을 먹고 기뻐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을 끊어버립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의 속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쾌락보다 지식보다 영적인 복음의 지식을 더 알기를 원하고 복음의 설교를 더 기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속 사람은 살아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것은 겉 사람은 계속해서 낡아지지만 나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주님은 겉 사람을 살리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나의 속 사람을 살리려고 오신 분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합니다. 나의 속 사람은 무교병인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기를 원하고 있고 기뻐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익한 겉 사람이 좋아하는 세상의 지식과 즐거움의 설교를 듣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딱딱하지만 다소 맛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복음의 설교를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주님은 복음을 제자들에게 전해주었지만 믿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복음은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실 때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 자신을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자신을 믿을 자와 믿지 않을 자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 시점이 언제일까요?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나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때부터 자신을 믿을 자와 믿지 않을 자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창세 전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자는 이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팔 자까지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 것을 알고 있었고 가룟 유다는 이미 창세 전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나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은 영원 전부터 알고 계심을 말합니다.

 

‘처음부터’ αρχη(아르케 746) 태초,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이 태초는 영원 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태초에’라는 단어가 αρχη(아르케)입니다. 영원 전부터 이미 주님은 내가 주님을 믿을 것을 알고 계셨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영원히 믿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믿고 안 믿고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6: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시지 않으면 누구든지 예수님께 올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게 하여 주지’ διδωμι(디도미 1325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중성, 단수) 주다, 허락되다, 타고나다, 맡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오게 하셨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허락한 사람이며 이런 자는 이 땅에 구원받을 자로 타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께 양무리로 맡겨주었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분사는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에 이미 주님께 맡기셨다는 의미입니다. 완료 시제는 내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절대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거절하지도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수동태는 내가 주님께 갈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는 전혀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께 붙여주셨기 때문에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의지로 행위로 구원을 얻었고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내가 잠시 원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나는 원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자인데 아담의 후손으로 오다 보니 원죄를 짓고 나의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주님을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의 원죄를 대속해 주시고 나의 신령한 몸인 속 사람을 살려주셨습니다. 이렇게 살아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따라가게 됩니다.

 

주님은 육은 무익하고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무익한 육체의 삶을 따라가면 영원히 죽습니다. 무익한 육체의 삶을 위해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속 사람의 신령한 몸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신령한 몸을 살려주셨으니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일을 위해서 달려 나가시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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