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인물 12 제자 설교말씀 중에서 나다나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주제 1 : 나다나엘
제목 : 친구의 전도
1. 참된 친구의 우정
1)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삼상 18:1-3)
참된 우정은 서로에게 부정직한 것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친구를 악으로 유혹하거나 악에 빠뜨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우정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그리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권하고 충고하며 선한 것만 주려고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님의 우정과 사단의 미혹은 대조가 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는 척 미혹합니다. 그의 본심은 우리를 자기의 종말과 같은 파멸로 끌고 가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온전하고 선합니다.
2) 무조건적인 사랑(잠 18:24, 삼상 20:17)
참된 친구는 서로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믿음을 기초로 하여 상대방의 어려움을 기꺼이 도와주는 우정을 가집니다.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실한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된 우정은 곤경에 처하게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우정은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모나 조건을 전제하지 않는 법입니다. 누구든지 친구를 사귈 때 이해 타산에 얽매이거나 외모나 조건을 전제로 한다면, 그 우정은 참된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욥은 진실하지 못한 친구들, 참된 우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친구들의 비정함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3) 모든 것을 초월함(삼상 20:17, 잠 17:17)
참된 친구의 우정은 모든 환경을 초월합니다. 오로지 서로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진실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친구 관계에서는 모든 것을 초월한 순수한 우정은커녕 필요에 의해서 만나고 필요에 의해서 헤어지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2. 우리의 진정한 친구 주님
1) 우리를 친구로 여기심(잠 17:17, 요 15:13-14)
우리가 먼저 주님을 친구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친구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잘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권력 있는 사람도 있었고 돈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친구로 선택하지 않으시고, 가난하고 병들고 멸시받는 죄인들과 세리와 같은 사람들을 친구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친구로 선택해 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에 죽도록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2) 비밀을 알려 주심(시 78:2, 창 18:17)
주님은 그의 친구들에게 비밀이 없으셨습니다. 천국에 관한 모든 비밀을 모두 다 털어놓았습니다. 진정한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듯이 주님께서도 비밀이 없었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친구로 삼으시고 천국에 관한 비밀을 모두 말씀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3)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림(요 15:13, 계 3:20, 욥 2:11)
주님은 자기 자신의 귀한 목숨을 친구를 위하여 아낌없이 버리셨습니다. 세상에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살인자, 강도, 사기꾼 같은 친구를 위하여 대신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그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먼저 선택한 죄인 된 친구들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품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은 그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의인이 되었으되 단순히 아담의 범죄 이전 상태로 환원된 것이 아닙니다. 그 지위가 피조물의 지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친구의 지위로 격상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알고 친구 되시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3. 친구의 전도
1) 나다나엘의 불신(요 21:2, 요 1:46)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이나 얄팍한 지식에 의해서 모든 사물은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친구인 빌립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라고 말할 때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다나엘이 가지고 있는 이론이었고 존중할 수 없는 무지의 소산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입관을 뛰어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2) 와 보라고 친구를 전도한 빌립(요 1:46, 요 1:49)
나다나엘의 무지한 물음에 친구인 빌립은 곧 와 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이론으로 맞서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주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다소 출신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3) 먼저 믿은 자의 사명(고전 9:16-17)
먼저 믿는 자는, 자신이 먼저 체험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함으로써 이웃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을 양육하신 것처럼 다른 이들도 주의 성품과 훈계로써 양육하여 성숙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로 하여금 계속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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