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열왕기상 3장 성경주석 말씀] 바로 왕의 딸과 결혼한 솔로몬(왕상 3:1-3)

체데크 2024. 8. 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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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장 성경주석 성경말씀은 바로 왕의 딸과 결혼한 솔로몬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애굽과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 바로 왕의 딸을 맞이했습니다. 결국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인하여 솔로몬의 말년에는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상을 숭배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왕의 딸과 결혼한 솔로몬(왕상 3:1-3)

 

=====3:1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 여기서 '인연을 맺어'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하탄''결혼으로 인척 관계를 형성하다'란 뜻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장인과 사위 관계를 강조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솔로몬과 바로의 딸과의 결혼이 국가적인 정략 결혼임을 강조하는 말이다(Patterson). 이처럼 솔로몬은 내부의 적들을 제거한 뒤(2) 외국과의 동맹을 통해 왕국을 강화하려 했다. 그래서 왕국 강화의 일환으로서 솔로몬은 정략(政略) 결혼을 통해 애굽과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바로 왕은 애굽 21대 왕조(Tanitic)의 마지막 왕으로서 35년간 애굽을 통치한 프수센네스 왕으로 추정된다(Ewald, Winter),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22대 왕조(Bubastic)의 초대 왕 쉐숑크(Sheshonk)는 르호보암 5년에 예루살렘을 침략했던(14:25) 시삭(Shishak)이 틀림없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 p. 38; B hr).

그러므로 적대적 관계인 22대 왕조 이전에 상호 동맹이 있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당시 애굽이 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으려 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당시 다윗과 솔로몬 치하의 이스라엘이 매우 강력했던 사실이 그 주요 이유일 수 있다(L.Wood).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대국의 왕인 애굽왕들이 다른 국가에게 딸을 주는 일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Patterson).

그 딸을 취하고 - 솔로몬이 애굽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율법에 위배된다고는 볼 수 없다(B hr, Keil등). 즉 일찍이 요셉과 모세에게서도 그러한 전례(前例)있었을 뿐만 아니라(41:45;12:1), 모세 율법에 명시된 바 가나안족과의 혼인 금지 조항에 저촉되지도 않기 때문이다(34:16;7:3). 오히려 율법은 전쟁시에 취한 이방 여인과 결혼도 허용했다(21:13).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솔로몬의 결혼을 타락행위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는 후일에 솔로몬에게 우상 숭배의 악영향을 끼친 왕비들 중(11:1-7) 바로의 딸이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Edersheim, Keil).

그런고로 본절은 다만 솔로몬의 위세가 바로의 딸을 취할 수 있었으리만치 강력했다는 점과 함께 이후 계속되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이 시작되었음을 소개하는 구절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다윗 성에 두고 - 여기서 바로의 딸이 자신을 위한 궁()이 지어지기까지 임시적으로 거주한 '다윗 성'(이르 다윗)은 일찍이 요새화된 고대 예루살렘성을 가리킨다(Keil, B hr, Patterson). 이는 여호와의 궤가 위치한 영역으로 보이는 '윗 궁'(베트 다윗)과는 구별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대하 8:11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역대하 8:11에 따르면, 바로의 딸은 다윗 궁에 거할 수 없었다. 냐하면 여호와의 궤(법궤)가 안치된 장막이 다윗 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다윗 궁은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선포되었고, 따라서 솔로몬은 이방 여인인 바로의 딸이 그것에 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바로의 딸은 다윗 성으로 불리우딘 예루살렘성에 거주하기는 했지만, 다윗 궁 안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그러던 중 궁전 공사가 필역된 후,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위해 지은 궁으로 그녀를 인도했던 것이다(9:24).

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필역(畢役)되기를 기다리니라 - 솔로몬은 즉위 4년 즉 B.C. 966년 경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B.C. 959년 경에 완공하였다( 6:1, 38). 이처럼 7년에 걸쳐 성전 건축을 필역한 다음 솔로몬은 바로 궁전 건축에 착수하였다. 즉 솔로몬은 즉위 11년 즉 B.C.959년에 궁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즉 B.C. 946년에 궁전 건축을 완공하였다. 따라서 궁전 건축에는 13년이 걸렸다(7:1). 결국 솔로몬의 주요 건축 공사는 도합 20년의 세월에 걸쳐 완공되었다.

=====3:2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 혹자는 본절의 산당(山堂) 제사를 백성들의 종교적 결함으로 해석한다(Rowlinson). 그런데 원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다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이 아직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아직 유일한 제사 성소인 성전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불가피하게 산당 제사를 했던 당시 형편을 알리는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Hammond). 이런 점에서 여기 '산당'(바마)은 우상 숭배 장소인 가나안 족속들의 산당과는 구별되는 곳으로, 단순히 제사와 기도의 장소일 뿐이었다(Keil). 드보(De Vaux)는 당시 산당의 형태는 흙무덤 같은 작은 언덕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하나의 '제단'(미즈베아흐)으로 구성되었지만, 로는 제단 곁에 여러 개의 부속 시설을 갖추는 등 꽤 정교하게 구성된 산당도 있었다고 전한다. 한편, 이처럼 솔로몬 시대에 산당 제사가 보편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리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탈취당한 이후(삼상 4:11), 그 법궤가 실로 놉(삼상 21:1-9) 기브온(대상 16:37-40) 예루살렘(삼하 6:16) 등으로 옮겨 다닌 결과 백성들은 제사의 구심 장소를 상실하고 각자 나름대로 산당을 만들어 제사드렸기 때문일 것이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 율법의 첫째가는 계명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일이다(6:5;30:16;22:37;10:27). 솔로몬의 번영과 업적은 이처럼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2:3).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 다윗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도록 특별히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이다(8:16).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신의 시대를 넘어 이스라엘 역사 내내 그의 가치를 인정받아, 향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의()척도로 등장한다. 그런고로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윗의 하나님으로 알았고, 이후 이스라엘 왕들은 축복을 받으리면 다윗의 행함을 본받지 않으면 안되었다(PEB;9:5;왕하 20 :5;대하 21:12). 결국 본절은 솔로몬 치세의 번영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 대부분이 주석가들이 본질을 부정적 의미로 해석한다(Hammond ).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와께로부터 가나안 족속의 '산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33:52), 이후 열왕기에서 '산당'은 우상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남을 기억할 때 그것은 타당하. 게다가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회상하며 기록했을 열왕기 사가는 여기 본절에서 솔로몬 왕국의 번영 이유와 타락 이유를 나란히 기록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당시 여호와의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고(2), 다음 장면에서 산당은 솔로몬이 여호와께 지혜를 받는 긍정적 장소로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4-15), 아직 지나치게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한다(Keil, B hr). 다만 위험한 가능성을 가질 뿐이다.

그 위험의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이다. 즉 여호와의 유일 중앙 성소 명령(12:5-14,18 ,21,26)을 소홀히 할 위험성과 산당을 중심으로 드려지는(12:2,3)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 행위를 본받을 위험성이다(Patterson). 그런고로 여호와의 성전이 완공된 이후, 이러한 산당은 전혀 불필요했고 또한 결코 합법적이 될 수 없었다. 다만 철저한 파괴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통치자들은 너무나 오래도록 산당 제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왕(善王)들 조차도 산당을 훼파하는 데 소홀히 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 행위에 빠져들고 말았다(Patterson, 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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