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야고보서 1장 헬라어 강해] 시험과 유혹에서 승리하는 성도(약 1:12-18)

체데크 2021. 6. 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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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야고보서 1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시험과 유혹에서 승리하는 성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많은 시험과 유혹이 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시험을 이겨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믿음으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사탄은 성도가 타락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시험과 유혹은 욕심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세상 욕심을 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시험과 유혹에서 승리하는 성도(약 1:12-18)

 

12절 마카리오스 아네르 호스 휘포메네이 페이라스몬 호티 도키모스 게노메노스 렙세타이 톤 스테파논 테스 조에스 혼 에펭게일라토 호 퀴리오스 토이스 아가포신 아우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시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몬은 2절에서 사용된 '페이라스모이스'('시험')와 동일한 것으로 믿음의 연단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본절이 2-11절과 연결된 것이며 13절 이하의 '시험'(temptation)과는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다(Ropes).

한편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표현은 유대의 지혜서와 묵시 문학적인 표현 방법으로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1:1; 32:1; 8:32,34; 56:2) 예수께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축복을 말하였다(5:3-11). 따라서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법에 익숙하였음을 밝혀 주고 있다(Burdick).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 본절은 '호티'로 시작하며 시험을 참는 자에 대한 결과를 설명하는 목적절이다. '인정하심을 받은'의 헬라어 '도키모스'는 3절에서 사용된 것처럼 '금이나 은을 제련하여 귀금속이나 동전으로서 자격을 얻는 것'과 같은 인정함을 의미한다(5: 4).

이것은 시험의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는 자에게 순수함이 인정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됨을 시사한다. 여기서 '면류관'(스테파논)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면류관으로 (고전 9:25; 딤후 4:8) 시험과 박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 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Ropes, tasker).

13절 메데이스 페이라조메노스 레게토 호티 아포 투 데우 페이라조마이 호 가르 데오스 아페이라스토스 에스틴 카콘 페이라제이 데 아우토스 우데나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13

사람이 시험을 받고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 본절의 ''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조메노스'는 앞서 언급'시험'(2,12)이 의미하는 '시련'(trial,test) 아니라 '유혹'(temptation)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페이라조메노스'를 '하나님께'(아포 데우,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매개(媒介)의 성격이 강한 '휘포'('...의하여')를 사용하지 않고 '근원'을 의미하는 '아포'('...로부터')를 사용하여 '페이라조메노스'가 발생하게 되는 진원지가 하나님이 아님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Robertson). 그 '유혹'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죄악의 기질과 욕심에 미혹되어 발생하는 것으로(14) 죄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이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하나님은 시험을 창조하시거나 사람을 시험하지 아니하실뿐더러 아무에게도 시험을 받지 아니하신다.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이라스토스'는 부정 접두어 '''시험하다'의 '페이라조'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악에서부터 거리가 먼' 상태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Hort, Diodorus, Josephus), 유혹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시사한다(Bu-rdick).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14절 헤카스토스 데 페이라제타이 휘포 테스 이디아스 에피뒤미아스 엑셀코메노스 카이 델레아조메노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본절은 사람이 유혹을 받는 근원을 설명하고 있다. '시험'(temptation)이 사람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 섭리라고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사람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는 것이다. '미혹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메노스'는 원래 사냥이나 고기잡이에서 유래한 말로서 문자적으로 '미끼로 고기를 꿰어 내다', '올가미로 사냥하다'를 의미한다(Mayor).

사람들이 유혹을 받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자기 앞에 놓인 낚시 바늘에 물려 이리 저리로 이끌려 다니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한편 '욕심'의 헬라어 '에피뒤미아스'는 악한 뜻에 대한 열망이다(7:17-23; 5:16-21; 2:3; 살전 4:5).

15절 에이타 헤 에피뒤미아 쉴라부사 티크테이 하마르티안 헤 데 하마르티아 아포텔레스데이사 아포퀴에이 다나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욕심이 행동으로 유발되지 않은 상태 즉 내적 상태로 머물러 있을 때는 죄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야고보는 인간이 욕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죄가 싹이 트고 결국에는 사망에까지 이른다고 강조하고 있다. '잉태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쉴라부사'는 문자적으로 '함께 붙잡다'라는 의미이나 여자의 임신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눅 1:24).

여기서는 죄의 단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욕심' 그 자체가 바로 죄이. 혹자는 욕심을 자연적이고 오염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Mayor). 그러나 인간의 죄란 욕심에게 굴복당하는 시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욕심이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Calvin). 욕심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죄를 유발하고 그 마음의 상태가 습관으로 굳어져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3:19; 5:12).

'낳다'에 해당하는 두 단어 '틱테이'와 '아포퀴에이'는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을 의미하나 전자는 문학적인 표현이고 후자는 의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Ropes). 또한 정상적으로나 비정상적으로나 출산하는 것 모두를 뜻하나 본문에서는 비정상적인 출산 즉 유산을 나타내는 말이다(Robertson).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영적 사망을 잉태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6:23).

16절 메 플라나스데 아델포이 무 아가페토이

약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16

내 사랑하는 행제들아 속지 말라 - 본절은 애정이 깃들어있는 부드러운 권면이다. '속지 말라'(메 플라나스데)는 심각한 말로 권면할 때 사용된 어법으로 (고전 15:33; 6:7; 요일 3:7) ''는 금지를 암시하는 완곡어법이다(Robertson).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받을 때에 그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런 착각은 스스로 미혹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므로 속지 말아야 한다.

17절 파사 도시스 아가데 카이 판 도레마 텔레이온 아노덴 에스틴 카타바이논 아포 투 파트로스 톤 포톤 파르 호 우크 에니 파랄라게 에 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 풍족하게 내려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5절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본절에서도 좋은 은사와 선물들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

'은사'(도시스)'선물'(도레마)은 동일하게 '주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도미'라는 동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문체론적 변화이다(Moo). '좋은 은사'는 일반 은총이 아닌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내리는 특별 은총을 의미하며(Manton) '온전한 선물'은 성도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영화로운 상태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이다.

이러한 은사와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며 온전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혹에서 범죄치 않도록 도와준다(Burdick). 한편 '빛들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빛의 왕으로 모든 빛들을 창조하시고 주관하고 계심을 시사한다(Manton, Martin).

'빛들의'는 하늘의 빛나는 별을 가리키는 모든 하나님의 선물을 찬양하는 표현이다(Philo). 한편 본절은 특별히 6 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야고보가 다른 자료에서 인용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나(Mayor, Moo, Dibelius, Davids, Ropes). 본서의 문체나 운율적인 리듬의 형태를 볼 때 야고보의 독창적인 저술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Lenski, Martin, Mussner, Reicke, Schrage).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야고보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할 때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화된 빛으로 보이는 하늘의 별들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강조한다(Ropes).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변함없이 내리시는 분이다. '변함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랄라게'는 천문학 용어로써 별들이 시차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Manton).

한편 '회전하는 그림자'(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변화를 의미하는, 달의 그림자 즉 일식, 월식 등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지구의 회전으로 인한 태양빛의 변화로 생기는 사물의 그림자를 가리킨다(Ropes, RSV). 이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베푸시는 은사와 선물은 변함이 없음을 시사한다.

18절 불레데이스 아페퀴에센 헤마스 로고 알레데이아스 에이스 토 에이나이 헤마스 아파르켄 티나 톤 아우투 크티스마톤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 본절은 하나님이 시험을 주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마지막 이유이다(Burdick). '한 첫 열매'(아파르켄 티나)는 구약성경에서 수확된 첫 곡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나타낸다(34:22; 23:10). 모든 곡식의 첫 소산물이 하나님께 바쳐지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선택되어서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첫 열매가 된다. 혹자는 야고보가 '우리'를 사용한 것이 보편적인 인류 전체를 의미한다고 하나(Hort), 중생한 자들이나 당시 초대 교회의 성도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Moo). 왜냐하면 야고보는 비교의 뜻이 담겨있는 '티나'사용하여 피조물과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Calvin).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에 해당하는 헬라어 '불레데이스'는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한 의지를 나타내는 말로(1:11; 벧전 1:3)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1:4,5).

따라서 야고보가 '불레데이스'를 사용한 의도는 택한 자녀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자기 공로나 외부적 환경의 영향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Manton, Calvin). 한편 '진리의 말씀'이란 진리를 통하여 확증된 복음의 말씀이며(1:13; 1:5; 딤후 2:15). '낳다'에 해당하는 '아페퀴에센'은 자연적인 출생의 의미로 '창조하다'를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17:28).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라는 말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들 즉 첫 열매 된 자들이 옛 성품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한 번 빛을 받고 타락한 자(히 6:4-8)

 

[히브리서 6장 헬라어 주석 강해] 한 번 빛을 받고 타락한 자(히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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