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마태복음 15장 헬라어 강해] 정결에 대한 바리새인과 논쟁 사건(마 15:1-6)

체데크 2021. 6. 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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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5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정결에 대한 바리새인과 논쟁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께 당신이 제자들이 장로의 전통을 범했다고 따져 물었습니다.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고 먹었다는 이유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을까 고민하던 자들입니다. 지금 시대도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티만 보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티를 볼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들보를 보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정결에 대한 바리새인과 논쟁 사건(마 15:1-6)

 

1절 토테 프로셀콘타이 토 이에수 호이 아포 히에로솔뤼몬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레곤테스

마 15: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15:1

그때에(토테) - 마태가 즐겨 쓰던(약 90) 표현으로 다음 문장을 이어주는 연결사의 기능을 하는 말이다(2:7 참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장들은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직접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종교 회의로부터 갈릴리로 파견된 일종의 종교 조사단이었다. 그들은 당시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예수의 병 고침과 가르침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의 목적은 예수의 소문에 대한 실체를 조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를 모해(謀害) 하려고 하는 목적을 띠고 그 모함의 구실을 마련하려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유대 교권 주의자들과 예수 사이에 심각한 갈등은 날로 더해가도 있었으며 예수의 공생애 후반기로 가면서 이러한 갈등은 격렬한 신학 논쟁(神學論爭)을 통해서 더욱더 첨예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파견은 예수에 대한 예루살렘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예수에 대한 박해가 공공연히 모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2절 디아티 호이 마데타이 수 파라바이누신 텐 파라도신 톤 프레스뷔테론 우 가르 니프톤타이 타스 케이라스 아우톤 호탄 에스디오신

마 15: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총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15:2

장로들의 유전 - 여기서 먼저 '장로들'(톤 프레스뷔테론)이란 문자적으로는 연세가 많은 어른들을 일컫지만 구중에서도 특별히 율법에 능통한 자나 랍비 등의 종교 지도자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었다. 이들은 율법 해석의 권위를 공적으로 인정받았는데 일르의 해석은 구전(口傳)으로 이어져 왔으며, 그러한 해석이 기록된 율법보다 더 존중되었다. 여기서 '유전'(파라도시스)이란 '넘겨주다', '전해주다'는 뜻의 원어 '파라디도미'에서 유래한 말로서 조상 적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일종의 행위법(行爲)을 가리킨다. 이러한 행위법은 '장로들의 육전'이란 말 외에 '사람의 유전'(7:8; 2:8), '너희의 유전'(15:3)', '조상들의 유전'(1:14)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한편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오경에 기록된 것 이외에도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로 주신 구전 율법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유대교에서는 성경 율법은 원리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세세하고 복잡한 현실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세한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부터 유명한 유대교 랍비들이 고대의 전승 자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세세한 생활규칙들을 정, 집성(集成)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장로들의 유전이었다(Rabbi Judah the Prince C. A. D. 135-200). B. C. 300-A. D. 800년 사이에 이런 구전 율법을 집대성하여 문서화한 것이 바로 탈무드(Talmud)이다.

탈무드는 내용상 (1) 율법의 세부 규정을 담은 '미쉬나'(반복이라는 뜻)(2) 율법 규정의 교훈적 풀이 곧 미쉬나의 주석서 격인 '게마라'(보완이라는 뜻) 등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고 그 문체면에서는 (1) 법 규정을 다루는 '할라카'(규범이라는 뜻)(2) 각종 이야기를 통한 지혜와 훈계를 주는 '학가다'(이야기) 등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또 본래 탈무드라는 것이 구전, 입으로 전해져 오던 율법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 편집자에 따라 약간씩 내용상 차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현재 유명한 탈무드로는 '바벨론 탈무드''예루살렘 탈무드'가 있다.

특히 매우 미미(微微)한 점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사람의 행위를 규제한 '할라카'는 율법 주위에 둘러쳐진 '울타리'라는 뜻으로서 일부는 모세로부터 개개인에 의해 전래되었고, 일부는 모세의 기록에 기초한 규칙으로서 전부 613개에 달하였다고 한다. 장로들의 유전은 외형상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한 수준으로 생각하였다는 점과, 율법의 목적과 그 정신을 저버리고 외형적인 세부 규칙들을 번거로울 정도로 상세히 규정해 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과 사랑을 버리고 인간의 위선과 교만으로 나아갔다고 하는 점에서 장로들의 유전은 치명적 오류를 범했다. 따라서 비록 탈무드가 여호와 신앙이라는 대전제 하에 쓰인 것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유대교적 한계를 갖고 있으므로 이를 명확히 파악하고 대해야 할 것이다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 이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유전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계기가 된 말이다. 식사 때에 손을 씻는 예법(禮法)은 먼지가 많은 팔레스틴의 풍토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풍속에 의해 위생(衛生)적 필요에서 마련되었다. 또 한편은 이방인들과의 모든 접촉, 예를 들어 길이나 시장에서 이방인들과 스치거나 이방인의 물건에 무의식적으로 닿는 일 따위는 성전이나 회당에서의 예배에 의식적인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장로들의 유전이었다. '야다임'(Yadaim)이라는 소책자로 효과적인 정결 의식을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물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상술하고 있는 ''(hands)에 관한 행위법을 다룬 책자이다. 내용의 일부를 보면 '만일 한 사람이 한 그릇의 물로 한쪽 손에 붓는다면 그의 손은 정결하다. 그런데 만일 한 그릇의 물을 두 손에 붓는다면 그 손이 불결하나 1/4통 이상의 물을 더 붓는다면 그의 손은 정결케 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3절 호 데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아우토이스 디아티 카이 휘메이스 파라바이네테 텐 엔톨렌 투 데우 디아 텐 파라도신 휘몬

마 15: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15:3

어찌하여...범하느뇨 -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장로들의 유전과의 근본적인 권위의 차이를 분명하게 지적하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를 계기로 삼아 여호와 신앙의 정수(essence)를 선언하셨는데 이는 율법을 인위적으로 해석한 유전보다는 하나님의 계명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형식보다는 내용을, 율법의 의식보다는 그 정신을 더욱더 중요시하시는 것이다. 실로 유전의 형식을 어기는 것이 부차적인 일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의 정신을 어기는 일은 근원적인 죄악의 문제인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범하느뇨'에 해당하는 원어 '파라바이네테'는 '곁에'라는 뜻의 '파라'''이라는 뜻'바시스'의 합성어로서의 정도(政道)를 벗어나 '곁길로 빗나는 것'의미한다. 이는 결국 장로들의 유전은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벗어나 곁길로 가게 하는 오류(誤謬)를 포함하고 있다는 강렬한 질책으로 볼 수 있다.

4절 호 가르 데오스 에네테일라토 레곤 티마 톤 파테라 수 카이 텐 메테라 카이 호 카콜로곤 파테라 에 메테라 다나토 테류타토

마 15: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15: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 본절과 평행 구인 막 7:10에는 '모세가 말하기를'로 기술되었다. 이런 차이는 계명의 원 계시자와 그 계시의 전수자를 상호 교호적(交互的)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 즉 계명은 그것을 전수받고 기록한 기자(記者)의 말인 동시에 그 기자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훼방하는 자는 - 이는 출 20:12에 기록된 율법의 제5 계명과 출 21:17에 기록된 제5계 명의 실천적 법규이다. 예수께서 특별히 부모 공경의 율법을 거론하신 이유는 손을 씻지 않는 일이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모를 거짓으로 공경하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문제임을 지적하심으로써 제자들의 잘못을 힐난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약점을 확연히 드러내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제5 계명은 대인(對人) 계명 중 가장 으뜸이 되는, 약속 있는 첫 계명(엡 6:2)으로서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보다 더 중한 계명이다. 한편 훼방하는 자에 해당하는 '카콜로게오'는 '욕하다', '악의로 말하다', '비난하' 등의 뜻으로 결국 부모를 훼방하는 자란 자신의 부모의 은혜와 권위를 무시하고 나쁘게 말하거나, 저주하는(curses)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패역(悖逆)한 자들은 예외 없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함으로써 그 잘못을 보상해야만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불경한 말을 하는 것(24:16)과 더불어 언어를 잘못 사용함으로 극한 형벌을 당하는 두 가지 죄 가운데 하나이다(20:9).

5절 휘메이스 데 레게테 호스 안 에이페 토 파트리 에 테 메트리 도론 호 에안 엑스 에무 오펠레데스 카이 우 메 티메세 톤 파테라 아우투 에 텐 메테라 아우투

마 15: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15:5

내가 드려...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 - 유대인들의 서약의 한 형식으로 부모를 부양할 물질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하는 뜻이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은 부모보다 더 크시므로 부모에 대한 의무는 면제가 된다. 7:11에는 히브리어 '고르반'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원래 하나님께 바쳐진 선물(제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봉헌의 맹세는 후대로 가면서 차차 이기적 목적으로 이용되거나 왜곡되었다.

즉 사람이 만일 고르반이라는 말을 써서 맹세한 경우 가령 그 가리켜 맹세한 것이 부모의 부양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 취하(取下)할 수 없는 것이었. 따라서 이러한 조건들을 이용하여 '고르반' 맹세 후 그 맹세한 것의 일부만 성전에 헌납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의 탐욕을 채우는 데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부모를 부양할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들까지도 나타났다. 진정 이는 출 20:12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違背)되는 것이다.

6절 카이 에퀴로사테 텐 엔톨렌 투 데우 디아 텐 파라도신 휘몬

마 15: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15:6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도다 - 여기서 먼저 '폐하는도다'(에퀴로사테)는 말은 '권리를 빼앗다'라는 의미의 법률 용어로써 어떤 명령이나 유언을 취소 또는 무효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3절의 '범하느뇨'라는 말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렬한 범죄상을 일컫는 말이다. 즉 조상의 유전을 절대시 하는 것은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원뜻을 말살시키는 악행인 것이다.

믿음에 의한 의의 보편성(롬 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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