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베드로전서 3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택받은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고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영원히 죽어있는 나를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영원한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원(벧전 3:17-22)
<서론>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하여 우리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고난을 당할 때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으로 삼으면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심판의 도구였던 노아의 홍수의 물이 세례에서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구원의 표가 되었습니다.
I. 고난의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17-19)
1. 그리스도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았습니다(17)
벧전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본문 17절에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귀신 들린 자들을 해방시키시고, 눈먼 자를 뜨게 하시며, 각종 병든 자들 고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고, 죄지은 자를 용서하시며, 배고픈 자를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가르치셨으며 가난한 자를 위로하셨습니다. 슬픔을 당한 자와 함께 울고,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이처럼 악을 행한 일이 없는데도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 못한 것이 오히려 죄가 되고, 불의를 규탄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것이 정죄되었습니다.
악인의 고난은 그의 악행에 원인이 있었으나(눅 23:41), 선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뜻에 기인한 것입니다. 마치 의로운 사람인 욥이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한 것처럼 의인의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연단의 섭리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고난은 수욕을 가져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만민을 구원하는 큰 은총과 영광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는 한 번 죽으심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습니다(18).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본문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라고 합니다. 롬 4:25절에는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순전히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주님과 같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성도들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첫째, 불의한 자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둘째, 선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며
셋째, 고난의 결과 영광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땅의 모든 불의함과 고난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믿음으로 감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서 옥의 영들에게 전도하셨습니다(19).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본문 19절은 난해 구절로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만, 가장 건전한 해석은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시기 전에 영으로 노아를 통하여 당시의 불신자들에게 120년 동안 전도하였으나, 끝내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현재는 옥에 있다는 것입니다.
II. 노아 홍수와 세례(20-22)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벧전 3: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성경에서 물은 정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 홍수와 세례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떠한 있으며 또한 세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효력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노아 홍수와 세례의 상징적 의미
1) 육적 자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롬 6:3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노아 홍수가 있기 전의 시대 상황은 사람의 죄악이 땅에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창 6:5). 이에 하나님께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이때에 노아의 가족들을 120년 동안 배를 만들게 한 다음 그 죽음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노아 홍수에서 물은 죽음을 상징하듯이 세례에 있어서 물로서 사용하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이나 육체가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적인 자아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2) 새사람으로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골 2:12절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이렇게 세례는 죽음과 장사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부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로 온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노아와 그 가족을 선택하여 방주에 들이심으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홍수는 죄악 된 세상을 심판했지만 새로운 생명의 시작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례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의 죽으심과 더불어 다시 부활하는 데에도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 2: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 세례의 효력(21-22)
1) 구원의 표징과 약속이 됩니다.
본문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베드로는 세례를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편이라고 하지 않고 구원의 표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됩니다. 세례는 그 믿음의 표식으로 행하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여기는 상징 이상으로 이미 우리의 구원이 보장된다는 듯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2) 양심이 깨끗하게 됩니다.
본문 21절 하반절에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물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못합니다. 그러나 세례는 죄악을 깨끗이 하여 양심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결론>
오직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며 소망을 바라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고보서 1장 헬라어 강해] 시험과 유혹에서 승리하는 성도(약 1:12-18) (0) | 2021.06.22 |
---|---|
[히브리서 6장 헬라어 주석 강해] 한 번 빛을 받고 타락한 자(히 6:4-8) (0) | 2021.06.22 |
[마태복음 15장 헬라어 강해] 정결에 대한 바리새인과 논쟁 사건(마 15:1-6) (0) | 2021.06.20 |
[로마서 10장 헬라어 강해] 믿음에 의한 의의 보편성(롬 10:11-15) (0) | 2021.06.19 |
[요한계시록 설교말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17-21) (0) | 2021.06.15 |
[요한복음 3장 헬라어 강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요 3:31-36) (0) | 2021.06.13 |
[누가복음 12장 헬라어 강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 12:13-21) (0) | 2021.06.13 |
[요한계시록 1장 헬라어 강해]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과 계시 기록(계 1:1-3) (0) | 2021.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