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계시록 4장 헬라어 강해] 보좌에 앉으신 성부 하나님 환상(계 4:1-3)

체데크 2021. 7. 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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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보좌에 앉으신 성부 하나님 환상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상 소아시아 7 교회가 끝나고 이제부터는 천상의 교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사도 요한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사도 요한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상 교회뿐만 아니라 지상 교회도 통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이 시간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성부 하나님 환상(계 4:1-3)

 

1절 메타 타우타 에이돈 카이 이두 뒤라 에네오그메네 엔 토 우라노 카이 헤 포네 헤 프로테 헨 에쿠사 호스 살핑고스 랄루세스 메트 에무 레구사 아나바 호데 카이 데익소 소이 하 데이 게네스다이 메타 타우타

계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 '이 일 후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2,3장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가 종결된 바로 직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Johnson). (2) 혹자는 장면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환상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환상의 전환을 나타내는 묵시 문학의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orris, Beasley-Murray, Robert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한 이 말은 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7:1,9; 15:5; 18:1; 19:1) '내가 보았' 혹은 '내가 들었다'와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는 환상을 통한 계시의 사실성과 현장성을 나타낸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본서에서 '하늘'은 12:12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수로 사용되었다(3:12; 6:13; 12:7; 21:1). 그 의미는 다양하나 본문의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처소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한 곳을 의미한다(Morris). 한편 '열린 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라 에네 오그메네'는 완료 분사형으로 문이 이미 열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으며 환상을 통해 요한이 보게 될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은 본서에서 언급되는 '나님 나라의 문'(3:8) 또는 '마음의 문'(3:2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문'나타낸다(Ladd, Mounce, Swtet). 따라서 본문의 ''은 문 자체보다 천상의 광경을 보여 주기 위한 것과 계시를 전달받는 자가 분명하게 경험했음을 부각시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1:1; 3:16; 1:10; 1:51; 7:56; 10:11).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 본문은 1:10에서 들었던 음성을 요한이 다시 들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 음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포네'에 정관사 ''가 있어 이전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 (1) 혹자는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Charles, Stier). (2) 혹자는 '천사'라고 주장한다(Bousset, Plummer).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이리로 올라오라'는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 산으로 올라오라는 명령과 흡사한 것으로(19:24)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휴거의 상징이 아니라(Johnson, Ford, Walvoord) 환상 중에 더욱 분명한 계시를 전달받기 위해 계시 전달자가 초대되었음을 시사한다(고후 12:2, Hughes). 한편 '마땅히 될 일'은 요한에게 계속 보여줄 환상이 미래에 일어나지만 그 계시의 내용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약속임을 시사한다(1:19, Morris, Lenski, Hughes).

2절 카이 유데오스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 카이 이두 드로노스 에케이토 엔 토 우라노 카이 에피 투 드로누 카데메노스

계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데오스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는 문자적으로 '시 성령 안에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1:10) 천사로 인도되어 새로워진 요한의 상태를 묘사한다(8:1-4; 11:1, Moffatt, Plummer, Ford). 이는 요한이 3장까지는 계시의 음성을 들었으나 이제는 직접 계시에 참여함으로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음을 시사한다(14:26; 고후 12:2,3, Weiss, Swete).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보좌'는 간혹 하나님께서 하늘을 보좌로 삼으신 것을 묘사하기도 하며(66:1; 5:34; 23:22), 한 하나님의 보좌가 천상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나(왕상 8:27), 본문에서는 영광과 심판을 동반한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낸다(왕상 22:19; 6:1; 1:26; 7:9; 외경 I Enoch 18:14,19; Levi5:1; Moses4:2, Ford).

한편 '보좌 위에 앉으신 '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5절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다음 장에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나타나 1장과 유사하게 삼위 하나님에 대한 진술의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1:4-6).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심으로 자신의 무한한 권능과 권세 그리고 통치하심이 완전한 것임을 나타내신다(Greijdanus, Lenski).

3절 카이 호 카데메노스 엔 호모이오스 호라세이 리도 이아스피디 카이 사르디노 카이 이리스 퀴클로덴 투 드로누 호모이오스 호라세이 스마라그디노

계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 '모양'의 헬라어 '호라세이'는 문자적으로 '보이는 것'이란 의미로 개역성경의 '모양'보다는 '보이는 것'이 더 나은 번역이다. 왜냐하면 '모양'의 경우 하나님을 마치 물질적인 측면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9:17; 1:5,26).

한편 본절에 언급되는 3개의 보석 중 '''홍보석'은 현재 어떤 종류의 보석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단지 '홍보석'사데에서 주로 생산되며 진홍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보석은 분명히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일진대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

(1) 혹자는 벽옥과 홍보석이 대제사장의 흉배에 붙이는 보석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28:17-20) 이스라엘과의 관계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Walvoord, Morris). (2) 혹자는 벽옥이 하나님의 위엄, 거룩, 순결을 상징하며, 홍보석은 심판과 진노를 상징한다고 본다(Plummer, Mounce). (3) 혹자는 벽옥이 하나님의 청결을, 홍보석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Barclay). 이 견해 중 마지막 두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Johnson, Mounce).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 '무지개'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녹보석에서 빛나는 일종의 무지개와 같은 후광으로 본(Ladd). (2) 혹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나 영광스러운 권능과 의로움으로 해석한다(Lenski). (3) 혹자는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광채로 본다(1:27, 28, John- son). (4) 혹자는 하나님 자신의 언약에 대한 성취를 약속하시는 것으로 본다(9:12, 13, Morris, Caird). 이 가운데 마지막 두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녹보석'에 대해서 혹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나(Ladd)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21:19, Morris, Mou- nce).

스불론 아셀 납달리 단 지파의 정복 실패(삿 1: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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