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아가서 주일예배 설교] 술람미 여인과 친구들의 고백(아 1:1-4)

체데크 2021. 1. 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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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가서 주일예배 하나님 말씀 중에서 술람미 여인과 친구들의 고백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아가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성도의 그림자가 됩니다. 술람미 여인은 수넴의 시골 처녀로서 잘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왕이 이 처녀를 직접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볼품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직접 나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가서를 읽으면서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과 친구들의 고백”(아 1:1-4)

 

아 1:1 솔로몬의 아가라 

아 1:2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 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 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 1: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명제: 술람미 여인의 고백은 그리스도를 향한 구원받은 신부의 고백이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해야 한다.

성경에서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가서의 내용들이 에로스적인 사랑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랍비들은 30세 이전의 사람들은 아가서를 읽지 못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가서가 정경에 올라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 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뛰어넘어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우리의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아가서를 읽을 때에 세상의 인간적인 에로스의 사랑의 관점으로 읽지 말고 구속사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사랑으로 초점을 맞추어 읽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으로만 읽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가서를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야 하고 신부로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신랑을 대하여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1:1 솔로몬의 아가라

아가 서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지만 아가서는 솔로몬이 직접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왕상4:32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 다섯 편이며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잠언 3000가지와 아가서와 같은 노래를 1005편이나 지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도 그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로몬’ שלמה(쉘로모 8010) 솔로몬,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לם(샬람 7999) 평안하다, 화평하다, 화친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은 아가서를 시작하면서 솔로몬의 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로몬은 왕입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솔로몬을 통하여 술람미 여인이 지금까지 평안의 삶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이 신부를 화평하게 해 주고 하나님과의 사이에서도 화친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영원한 죄악에서 건져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입니다. 내가 원죄에 빠져 죽은 인생이었고 하나님과 화친하지 못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의 화목 제물이 되어주셔서 구원의 은총을 주시고 영혼이 평안해지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하여 하나님과 내가 화평해진 것입니다. 앞으로 아가서는 이와 같이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영적으로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하나님과 화목해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가라’ שיר(쉬르 7892) 노래, 찬송,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יר(쉬르 7981) 노래하다, 화답하다, 찬송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아가라고 말씀하면서 ‘쉬르’라는 단어를 두 번 썼습니다. 이것은 노래 중의 노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노래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지었던 어떤 노래보다 뛰어난 노래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아가서를 통하여 하나님께 최고의 노래와 찬송으로 보답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만나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아름답습니까? 사랑하는 청춘남녀들을 보면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사랑을 만들어 갑니다. 이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을 만난 신부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리는 찬송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노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래가 무엇입니까? 구원받고 부르는 성도들의 노래입니다.

아1:2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자신에게 입 맞추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원하니’ נשך(나샤크 5401) 묶다, 잡다, 입 맞추다, 갖추다,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입을 맞추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향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입을 맞추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부인 성도들을 향하여 함께 하고 싶은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부인 우리들과 함께 묶여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셔서 신부로서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갖추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과 입을 맞추기 위하여 마음속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솔로몬은 다른 여자에게는 시선을 두지 않고 오직 술람미 여인에게만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생각이 술람미 여인에게 기울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어느 곳에 있든지 구원받은 신부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랑인 예수님께서 신부인 우리와 입을 맞추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신부가 얼마나 사랑스러우면 입을 맞추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그 정도로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반면에 입을 맞춤으로 신랑을 팔아넘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눅22:47-48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계실 때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팔기 위하여 오고 있습니다. 이때에 가룟 유다가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입을 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이런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표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부들과 입 맞추기를 원하고 있는데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은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 팔아넘기는 것입니다. 거짓된 신부입니다. 신랑과 같이 살고는 있었지만 돈 때문에 같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세상적 유익을 위해 같이 살면서 사랑하는 척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지옥의 불 못으로 떨어져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주보다’ ייו(야인 3196) 포도주, 라는 뜻입니다. 어근 사전에는 יון(야반) 열과 흥분의 뜻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기쁨과 환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노아도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서 잠을 잤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낫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사랑이 무르익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포도주에 열과 흥분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보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신부인 나를 보고 사랑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뜨거워져 나를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애간장이 탈정도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찾아와 함께 사랑을 나누기를 원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으려면 신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면서 주님만 높이는 신앙이 될 때에 예수님이 나를 보시고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신부인 우리들을 깨우기 위하여 문 밖에서 두드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부가 신랑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신랑이신 예수님이 나에게 들어오셔서 신랑과 사랑을 나누며 먹고 마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가 신랑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면 문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강도의 소리를 신랑의 소리로 잘못 알아듣고 문을 열어주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랑의 소리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양의 탈을 쓴 거짓 신랑들이 거룩한 신부들을 노략질하기 위하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아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 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술람미 여인은 신랑이 솔로몬을 향하여 네 기름이 향기롭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은 쏟은 향 기름 같아서 많은 처녀들이 솔로몬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네 기름이’ שמן(셰멘 8081) 맛 좋음, 살찜, 비옥하고 기름진 곳, 이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향하여 네 기름이 향기롭다는 것은 왕의 즉위를 위해 올리브기름이 부어진 왕의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많은 백성들이 기름지고 살찌며 비옥한 땅을 통하여 축복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분입니다. 십자가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기름 부어 세워주셨습니다. משיח(마쉬아흐 4899) 기름부음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으로부터 기름을 받으신 분으로서 영적으로 메마른 자들에게 비옥하고 기름진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줄 수 있도록 사역을 받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이 맛 좋은 영적 음식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먹은 자들은 영적으로 살이 찌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신부들은 신랑의 이런 장점을 깨닫고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이름이 쏟은 향 기름’ רוק(루크 7324) 황무하다, 쏟아지다, 옮기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이름이 쏟은 향수처럼 냄새가 진동하여 처녀들이 향수의 냄새를 맡고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이름이 퍼져나간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왕상10:1-3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솔로몬의 이름의 명성이 얼마나 멀리까지 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에디오피아에 있는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어려운 문제를 시험하고자 많은 수행원들과 금과 보석들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쏟아진 향수의 냄새를 맡고 처녀들이 솔로몬을 만나러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쏟아진 향수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흠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이 세상에 쏟아지게 하셔서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호팔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이 주님이 오실 때까지 흠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주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두가 주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지명하여 주셨습니다. 이름의 향수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지금도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수를 맡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1: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자신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술람미 여인은 한 번 더 간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인도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너를 따라 달려가며 우리가 솔로몬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솔로몬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의 방으로’ חדר(헤데르 2315) 밀실, 침실,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דר(하다르 2314) 밀실에 들어가다, 봉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밀실로 함께 들어가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방은 복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밀실은 오직 사랑을 나누는 한 여인만을 위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가 모든 문을 닫고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얼마나 황홀한 시간을 보내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을 자신의 밀실로 우리를 초청하여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아무도 모르는 사랑입니다. 주님과의 긴밀한 사랑을 나눌 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과 영적 신앙이 되면 매일같이 신랑과 밀실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이끌어 들이시니’ בוא(보 935) 동침하다, 옮겨가다, 통혼하다,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밀실로 인도하는 것은 서로 동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술람미 여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왕의 여인으로서 혼인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주님의 깊은 밀실로 인도하여 함께 영적으로 동침하여 나를 아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사람은 죄악에서 완전히 옮겨져서 생명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나입니다. 나는 구원을 받고 주님과 동침하여 영원한 주님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주님과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밀실로 나를 인도하신 분은 전적으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너는 나를 인도하라’ משך(마샤크 4900) 이끌다, 인도하다, 끌어내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에게 명령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현재의 삶에서 이끌어내어 솔로몬의 밀실로 인도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의 처지는 힘들고 지친 모습입니다. 한 시골의 처녀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삶에서 회복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왕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볼 때에 우리도 술람미 여인처럼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죄악에서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청하여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 외에는 나를 원죄에서 건져내 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부인 우리들은 다른 신랑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오직 주님만이 나를 죄에서 건져내어 생명의 자리로 옮겨주신 분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럴 때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떨어져 있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사랑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대화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가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대화를 하고 지칠 줄 모르면서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적 진리입니다. 주님과 매일같이 함께 있는 삶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이제부터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과 매일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밀실로 인도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주님께서 신부와 사랑할 수 있는 아무도 모르는 밀실로 나를 인도하여 들이시는 것입니다.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가르침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 골방에서 주님과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신랑과 은밀한 사랑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연애하는 자들의 사랑을 보면 아무도 모르는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서 사랑을 합니다. 이것처럼 우리들도 이제부터 주님과 나만의 영적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주님과의 은밀한 사랑을 나누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왕기상 3장 주석강해말씀] 솔로몬의 결혼과 신앙(왕상 3:1-4)

 

[열왕기상 3장 주석강해말씀] 솔로몬의 결혼과 신앙(왕상 3:1-4)

열왕기상 3장에서는 솔로몬의 결혼과 신앙에 대해서 말씀한다. 솔로몬이 애굽의 바로 왕과 혼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바로의 딸을 맞아들였다. 솔로몬은 주변 이방 나라들과 결혼 동맹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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