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성막 하나님 말씀] “번제 단”(출 27:1-8)

체데크 2020. 11. 1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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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막 하나님 말씀 중에서 번제 단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성막의 기구를 보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오늘은 성막의 성경 말씀 중에서 특별히 번제 단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번제 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막에 제일 먼저 들어오면 만나는 것이 번제 단입니다. 교회에 제일 먼저 들어오면 만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시간 번제 단을 통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번제 단”(출 27:1-8)

 

명제: 번제 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고 있다.

목적: 교회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십자가이다.

 

오늘은 성막의 번제 단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울타리와 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습니다. 성막의 문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 문을 통하여 성막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께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성막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성막의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성막의 뜰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바로 번제 단입니다. 번제 단을 통하여 죄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가까이 갈 수 있는 통로입니다. 오늘 이 시간 번제 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나와도 번제 단의 은혜가 없으면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의 은혜를 말합니다. 교회에서 십자가의 보혈을 느끼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게 됩니다. 구원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흔들리는 믿음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번제 단에서 확실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7:1)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하나님께서 번제 단을 만들 때에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조각 목을 놋으로 씌워서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번제’ עלה(올라 5930) 번제물, 올라가다, 솟아오르다, 치료받다, 떠나가다, 라는 뜻입니다. 번제는 죄인이 성막에 들어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데 이 제물은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죄인들을 치료해 주셔서 영원히 죽을 영혼을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을 영혼이 살아나서 모든 죄들이 영원히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번제입니다.

 

‘단’ מזבח(미즈베아흐 4196) 살육하다, 희생을 드리다, 제사하다, 잡아드리다, 라는 뜻입니다. 제물을 잡아드리는 단은 죄인이 가지고 온 동물을 죽이는 장소입니다. 이 동물의 피가 흘려져서 죄인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동물을 가지고 제사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죄인인 자신은 동물 때문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바로 번제 단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내가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받으시고 대신 내가 죽을 것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번제 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조각 목’ שטה(쉿타 7848) 채찍, 매질하다, 때리다, 라는 뜻입니다. 번제 단을 만드는 조각 목은 내구성이 뛰어나며 광야에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가시가 많고 울퉁불퉁하여 성막의 재료로는 절대 사용하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나무를 지명하여 번제 단을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가시가 많이 돋아 있어서 한 번 찔리면 큰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하나하나 잘라서 조각을 내어 붙여서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조각목이 볼품이 없지만 하나씩 잘려서 붙여져 성막에서 귀한 번제 단으로 탄생되어 죄인들이 제물을 태워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변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채찍을 맞으시고 매질당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내가 구원을 얻은 것처럼 번제 단도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번제 단을 만들 때에 하나님께서는 길이와 너비와 높이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는데 함부로 하지 않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구원을 이루고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길이’ ארך(오레크 753) 장수하다, 생존하다, 오래 살다, 라는 뜻입니다. ‘너비’ רחב(로하브 7341) 영혼을 넓게 열다, 크게 열리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길이와 넓이의 크기를 5규빗(2.3m)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5의 숫자의 의미는 은혜, 기적, 고통, 이라는 뜻입니다. 번제단의 길이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난 자들은 모든 죄에서 해방되고 영원히 장수하여 생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데 이들은 천국에서 영혼이 넓게 열려 많은 상급을 받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번제 단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절대로 더 이상 나가지 못합니다.

‘높이’ קומה(코마 6967) 일어서다, 확정되다, 함께 있다, 성립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이는 3규빗(1.4m)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3의 숫자적 의미는 삼위일체, 완전, 부활, 이라는 뜻입니다. 번제 단에서 죄인이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이 확정되고 죽음에서 일어서게 되며 신랑과 신부가 만나 결혼이 성립되어 사는 것처럼 예수님과 내가 결혼하여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하게 되어 죽음에서 부활되는 것을 말합니다. 번제 단은 내가 죽고 주님으로 인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번제 단에서 주님이 죽으심으로 화목이 이루어졌고, 속죄가 이루어졌으며 주님과 영원히 사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27:2)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하나님은 번제 단에 뿔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번제 단에는 네 개의 뿔이 세워져 있습니다. ‘뿔’ קרן(케렌 7161) 나팔, 광선, 광채가 나다, 라는 뜻입니다. 뿔은 권세와 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번제 단에 뿔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네 모퉁이에 만들었는데 동서남북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을 나팔로 불듯이 온 세상에 전파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복음을 들은 자들은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돌아서는 것이고 이들은 영혼이 광채가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뿔은 바로 복음의 권세와 능력과 힘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제 단의 뿔을 잡을 때에 절대 죽일 수 없습니다.

 

(왕상 1:50-51)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제단의 뿔을 잡았습니다. 이 뿔은 능력의 뿔이기 때문에 이 뿔을 잡고 맹세를 하면 죽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잡고 하나님께 맹세하는 자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사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잡은 자들은 절대 죽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뿔을 잡아야 합니다. 이 뿔을 잡지 않으면 절대 죽음에서 살아날 수 없습니다. 번제 단의 뿔을 잡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해야 만이 구원의 확신이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놋’ נחשת(네호셰트 5178) 놋, 쇠사슬, 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נחש(나하쉬 5172) 예언하다, 깨닫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는 놋 뱀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도 놋 뱀이 들린 것처럼 자신도 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으며 죄악의 사슬을 끊어주셨고 깨닫게 하셔서 나를 구원해 주신 분입니다. 번제 단을 바로 놋으로 싸매라고 하셨습니다.

 

‘싸고’ צפה(차파 6823) 싸다, 두르다, 꾸미다, 라는 뜻입니다. 조각 목을 놋으로 싸는데 완전하게 싸서 불에 견디게 한 것입니다. 금은 1061도에서 녹고 구리는 1085도에서 녹습니다. 만약에 조각 목을 구리로 싸지 않으면 불에 견디지 못하고 태워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각 목을 구리고 감싸는데 완벽하게 싸고 불이 절대 조각 목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싸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조각 목은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냅니다. 바로 채찍으로 맞고 고난당하신 것을 말하는데 놋은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활하시고 강림하시는 예수님은 더 이상 고난당하시지 않고 영광을 받으시러 오시는 것입니다. 번제 단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초림으로 오신 고난당하신 예수님으로 구원을 받고 난 후에 강림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강림하시는 예수님을 완전하게 기다리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나의 신앙생활에서 주님을 기다리면서 예언하신 대로 오시는 주님을 깨닫고 영적으로 깨어 믿음 생활해야 합니다.

 

(27: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하나님께서 번제 단을 만들 때에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함께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번제 단에 필요한 기구들입니다.

‘재를 담는’ דשן(다셴 1878) 살찌다, 윤택하다, 풍족하다, 라는 뜻입니다. 번제 단에서 불에 태워지고 난 제물의 재를 통하여 살찌고 윤택해지고 풍족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나에게 구원의 은혜로 인해 영혼이 살찌고 풍족하게 되어 천국에서 윤택하게 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영혼이 윤택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의 말씀도 먹지 못하고 가난하고 곤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재를 담기 위해 통과 부삽과 대야를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기구들입니다.

‘통’ סיר(시르 5518) 가시나무, 가시덤불, 가시,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십자가에서 제물로 드려진 제물들의 재를 이통에 담는데 절대 흘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고통과 고난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을 기억하면서 나의 영혼이 살찌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가시에 찔리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죽을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예수님께서 가시에 고통당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내 영혼이 평안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삽’ יע(야 3257) 나르다, 옮기다, 제거하다, 없애다, 라는 뜻입니다. 번제 단에서 태워진 모든 재들을 담는 삽을 만들었는데 이 삽을 가지고 재를 담았습니다. 이것은 모든 죄를 옮기는 기구가 되었으며 죄악들을 제거하고 없애버려 죄인이 동물을 죽여 번제 단에 불태우고 자신은 대신 의인이 되어 모든 죄가 제거되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자신이 직접 죽으셔서 나의 모든 죄를 옮겨주셨기 때문에 영원히 살게 된 것입니다. 바로 부삽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대야’ מזרק(미즈라크 4219) 흩어 버리다, 뿌리다, 라는 뜻입니다. 재를 담는 대야는 바로 모든 죄들을 흩어 버리고 뿌려버리기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번제 단에 쓰이는 대야를 통해 불태워지고 남은 재를 버림으로 나의 모든 죄악들을 직접 예수님께서 흩어버리고 뿌려주셔서 나를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나의 모든 죄들은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모두 흩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갈고리’ מזלג(마즐레그 4207) 끌어올리다, 라는 뜻입니다. 번제 단에 죄인이 동물을 가지고 오면 이 제물을 번제 단에 끌어올릴 기구가 있어야 되는데 바로 갈고리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이 갈고리는 고기를 번제 단에 올려놓는 역할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죄인들과 하나님을 갈고리로 연결시켜 주신 분이며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죽음에서 끌어올려주신 것입니다. 바로 번제 단의 갈고리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릇’ מחתה(마흐타 4289) 멸망, 궁핍, 패망, 두려움, 이라는 뜻입니다. 번제 단에는 항상 불이 있어야 합니다. 불이 있어야 제물을 태울 수 있고 분향 단에 불을 붙이고 금 촛대에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 불은 하나님께서 주신 불입니다. 이 불을 간직하며 성막이 옮겨질 때마다 불을 옮기는 데 사용한 그릇입니다. 이 그릇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을 옮기는 그릇이 되어 주시지 않으면 나는 이 세상에서 멸망될 수밖에 없고 영혼은 궁핍하여 죽음으로 가며 항상 두려움에 살게 될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성막에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갔다가 죽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하심이 없이 자신 뜻대로 하나님께 나가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그릇은 불을 간직하는 것처럼 나의 영혼을 지켜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에 성령의 불이 소멸되지 않는 것입니다.

 

(27:4-5)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네 개를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물’ רשת(레셰트 7568) 그물, 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ירש(야라쉬 3423) 차지하다, 상속하다, 유업으로 받다, 상속자,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번제 단에 그물을 만든 것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를 가르는 것입니다. 아무나 천국을 상속받지 못하고 반드시 성막에 들어오는 자인데 성막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두 천국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번제 단에서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자들만이 천국이 확실해지며 영원히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제 단의 동물이 불태워진 것이 확실히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할 때에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확신을 얻은 자만이 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고리’ טבעת(탑바아트 2885) 가라앉다, 침몰하다, 잠기다, 라는 뜻입니다. 번제 단에는 반드시 고리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고리는 번제 단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하게 하는 고리입니다. 이 고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고리에서 떨어져 나가면 반드시 죄에 감기게 되고 세상에서 탐욕에 눈이 멀어 죽는지도 모르면서 가라앉아 인생이 침몰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결고리가 되어 함께 있으면 나는 어디를 가든지 안전합니다. 암벽을 오르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줄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입니다. 이고리가 바위에서 떨어지는 순간 아찔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리를 바위에 박아 놓아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인생의 험난한 순간에도 나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항상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7:6-8)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채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 채는 번제 단을 들고 이동하는데 편리하기 위해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 채를 고리에 끼워 성막이 이동할 때 옮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채를’ בד(바드 905) 나누다, 분리하다, 떨어지다, 라는 뜻입니다. 이 채는 조각 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라고 했습니다. 조각 목은 많은 고통과 고난을 당한 나무로써 놋으로 싸서 번제 단과 분리되어 홀로 떨어져 있게 됩니다. 번제 단에서 분리되는 것입니다. 도구를 옮길 때만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외로이 쓸쓸하게 고난당하시고 하나님께 외면당하여 버림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제자들은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고통스럽게 하나님의 외면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고독이 나에게는 죄에서 분리되고 고통에서 떨어지는 결과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를 향한 사랑입니다.

번제 단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왔을 때 처음 만나는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번제 단은 성막의 7개의 기구 중에 첫 번째 기구입니다. 성막에 들어오면 처음에 만나는 곳이 바로 번제 단입니다. 이 번제 단을 통과하지 않으면 다른 기구들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체험은 바로 십자가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번제 단은 성막에 들어가는 길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 단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의 장벽입니다. 번제 단에서 십자가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면 속죄소까지 나아갈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지성소의 속죄소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의로만이 나갈 수 있습니다. 번제 단을 체험하지 않고는 절대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면 절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번제 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했습니다. 모든 성막의 기구들이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절대 나와 상관없는 예수님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나와도 번제 단에서 성막의 뜰만 밟다가 성소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인생을 끝나게 됩니다. 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번제 단을 통과하고 물두멍을 통과한 사람만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제 번제 단의 은혜를 체험한 저와 여러분들이 물두멍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주님을 기다리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막 하나님 말씀] “물두멍”(출 30:17-21)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막 하나님 말씀 중에서 성막 뜰에 있는 물두멍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사역을 하기 위해서 손과 발을 씻는 기구입니다. 물두멍에는 물을 담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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