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성경산 바산 설교말씀] 바산 산 הר בשן(하르 바샨)

체데크 2021. 2. 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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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산 바산 설교말씀 중에서 바산 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산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을 구속사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발견해 보려고 합니다. 바산 산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산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 때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벗어나려고 하면 인생이 고생스럽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산 산 הר בשן(하르 바샨)

 

명제: 바산의 산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산을 상징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바산의 산'은 요단 동편에 있으며 현무암이나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이 지역 주위에는 가파르고 탑과 같이 생긴 여러 봉우리들이 중간중간에 우뚝 우뚝 서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요단 서편의 산들은 대개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낮은 산들입니다. 이곳은 남쪽으로는 얍복강을 경계로 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갈릴리 바다를, 북쪽은 헤르몬 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길을, 그리고 동쪽은 하우란 산맥을 경계로 한 비옥한 지방으로서 모세의 통솔 하에 이스라엘이 장악하기 이전에는 옥의 나라였습니다. 이곳은 므낫세나 마길의 반 지파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시편 68편은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구원의 체험을 이룬 후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송하는 시입니다. 하나님이 원수들을 모두 소탕하시고 선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도와주신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모세가 있었던 시내 산부터 바산 산까지 연결하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산 산은 하나님의 산으로 어떠한 산들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3:13-14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였던 아르곱 온 지방 곧 온 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바산을 옛적에는 르바임의 땅이라 부르더니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경계까지의 아르곱 온 지방을 점령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이 바산을 오늘날까지 하봇야일이라 불러오느니라)

바산은 원래 옥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습니다. 이 바산을 옛날에는 르바임의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므낫세의 자손들이 차지하고 난 후에는 바산을 하봇야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עוג(오그 5747) , 이라는 뜻입니다. 목이 긴 거인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산의 왕은 옥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거인으로서 바산을 통치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신3: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아직도 암논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아홉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니라)

르바임 족속에서 남은 자가 바산 왕 옥이었는데 이 사람의 침상은 철 침상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키가 훨씬 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산을 통치하던 옥을 사로잡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인 족속들을 승리로 이끌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세는 광야 2세대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감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도 없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세가 설교로서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르바임רפא(라파 7497) 르바임, 키 큰 자, 장대한 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רפא(라파 7495) 고치다, 고쳐주다, 완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르바임은 걸림돌이었습니다. 이 족속들은 거인 족속들로서 키가 크고 장대한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이길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여 주시고 직접 싸워주셔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르바임의 세상의 권세 자들에게 통치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괴로워하신 것을 하나님이 직접 고치시고 치료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고통당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르바임과 같은 기골이 장대한 자들로부터 압박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서열에 밀려나서 억울하게 쫓겨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르바임과 같은 자들로부터 승리하게 하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완전하게 심령을 치료하여 주시고 인생의 역전을 이루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역전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르바임을 야곱의 자손인 므낫세 반 지파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역전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르바임과 같은 족속들을 이길 수가 없는데 바산의 왕을 꺾고 승리하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볼 때에 우리들도 세상의 르바임과 같은 족속들이 괴롭히고 자신의 힘을 믿고 까불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하여 굴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르바임과 같은 세상의 권력자들과 악의 권세 자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봇야일חוות יעיר(하보트 야이르 2334) 하봇야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וה(하바 2331) 호흡하다, 휴식하다, 진술하다, 라는 뜻과 יער(야아르 3293) 수풀, 꿀 송이,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르바임 땅을 점령하고 나서 하봇야일이라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을 통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의 권세 자들에 의하여 바산이 있는 르바임 땅이 통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 땅을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셨습니다. 이 땅을 차지한 자들은 이제부터 바산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호흡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삼림이 풍성하며 수풀이 우거진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벌집에서 달콤한 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맛있는 꿀을 먹으면서 안식을 취하게 된 것을 자손들에게 자세하게 진술하여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안식하고 맛있는 꿀 송이를 먹게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역사였다는 것을 후대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자손들에게 가르쳐 주고 꿀 송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먹게 된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우리가 죄악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모든 죄가 사라진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였다는 것을 말씀을 통하여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산입니다. 세상의 권세 자들을 물리쳐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땅을 주셔서 함께 거하시는 땅입니다. 이 땅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은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면서 즐거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수20: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성경에서 하나님은 도피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섯 개의 도피성을 각 지역마다 피난하기 좋고 가장 빠르게 도피할 수 있는 장소로 도피성을 정해주셨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산에 있는 골란입니다. 바산은 하나님의 산이며 하나님이 거주하고 있는 곳입니다.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피난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골란גולן(골란 1474) 골란,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לה(갈라 1540) 발가벗기다, 드러내다, 알게 하다, 소멸되다, 옮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산에 있는 골란의 도피성은 모든 죄가 밝히 드러나고 발가벗기듯이 하나도 속일 수가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실오라기 하나 없이 완전하게 발가벗겨지셨습니다. 완전한 수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수치가 바로 나의 수치이며 나의 모든 죄가 드러났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인들이 골란의 도피성으로 들어가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모든 죄를 주님께서 가져가셨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은 죄가 완전하게 소멸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어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도피성에 있다 할지라도 밖으로 뛰쳐나가게 되어있습니다. 도피성의 생활이 너무나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도피성을 자신 마음대로 나갔다가 고엘에게 죽임을 당하면 책임이 당사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고엘은 피의 복수를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도피성에 있다고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입으로 시인하지 못한 것입니다. 바산의 골란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영원히 도피성에서 거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나는 어디에 거주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습니까? 잘못하면 사탄의 무리들에게 죽을 수가 있습니다. 도피성에 있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럼 언젠가 도피성이 답답하다고 자신 스스로 빠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피성에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도피성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산에 계신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바산 산은 하나님의 산이라는 것입니다. 바산 산은 높은 산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68:15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다윗은 바산 산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산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산은 헤르몬 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높은 산입니다. 이 산에 하나님이 거주하고 계시며 어느 누구도 이 산을 비웃거나 넘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산בשן(바샨 1316) 바산,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매끄러운, 부드러운,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바산은 하나님의 산입니다. 하나님의 산에 도전하는 자들은 모두가 부서질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거친 돌이 갈려져서 매끄럽게 되고 강퍅한 마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부드럽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 자들이 자신의 힘을 믿고 하나님께 도전하면 마지막은 심판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 자들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무시하고 공격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모두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바산에는 많은 높고 낮은 산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산들이 바산 산을 바라보면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능멸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현재 나의 마음이 이와 같이 주님을 거부하고 율법주의에 빠져있다면 바산의 산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내 힘을 의지하고 나가려는 마음을 십자가 보혈의 복음을 통하여 마음이 정결하게 되고 부드럽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나의 성격이 모난 부분이 있다면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매끄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옛말에도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쓰임 받기 위해서는 나의 모난 성격을 말씀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인간적은 생각이 계속해서 튀어나올 것입니다.

바산의 이름 속에 있는 것처럼 모난 것을 빨리 주님의 말씀으로 갈고 부드럽게 만들어 쓰시기에 좋은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주님이 왜 쓰시지 않느냐고 불평만 하고 있다면 이것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준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훈련을 시킬 때에는 부족한 것과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시험하시고 훈련시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68:16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바산 산의 주변에 있는 높은 산들이 하나님이 계시려고 하는 바산 산을 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산에 무슨 하나님이 계시냐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초라한 산이 무슨 하나님의 산이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확실하게 바산 산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신다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다른 의미로는 무엇입니까? 초라하게 이 땅에 죄인의 모습으로 오신 이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따져 묻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내가 너를 메시아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너도 구원을 못하면서 무슨 남을 구원하느냐고 능욕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구원자라는 것을 마음에 확고부동하게 믿는 것입니다.

시기하여 보느냐רצד(라차드 7520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2인칭, 복수) 지켜보다, 몰래 지켜보다, 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변에 있는 높은 산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바산 산에 하나님이 영원히 계시려고 하는 것을 왜 시기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절대 무시하거나 몰래 지켜보면서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더 확실하게 쇄기를 박고 있는 것입니다. 바산 산은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계시는 곳이며 자신을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빠진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시기하는 것입니다. 몰래 숨어 있다가 꼬투리가 잡히면 그것으로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바로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닌 자들도 율법주의자들이고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쫓아다닌 자들도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들고 인정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자들입니다.

이때에 다윗은 강력하게 선포하면서 절대 시기하지 못하도록 말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바산에 계신 하나님을 능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계속하여 하나님을 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바산 산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그림자입니다. 여기에 영원히 주님이 함께 거하겠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시기하면서 욕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초라하게 오신 분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으며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도 볼품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성을 치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실 일을 찬양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담당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리로다’ שכן(샤칸 7931 동사, ,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거하다, 계시다, 머물다, 라는 뜻입니다. 바산 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주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산이기 때문에 항상 머물러 계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성막과 연관이 있는 단어입니다. 성막에 거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심령의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여 항상 함께 거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산 산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속해서 임재하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속해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절대 주님이 떠나지 않습니다. 내 속에 영원히 계속해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산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세상의 주관자들을 심판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의 복음이 나의 죄를 깨끗하게 소멸시켜 주시고 나의 모난 성격들을 말씀으로 갈아서 매끄럽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부드럽게 터치하셔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융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곡식도 까칠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맷돌에 집어넣어 갈 때에 가루가 되어 곱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곱게 갈려진 것이 곡식이 되어 먹을 수가 있습니다. 바산 산은 죄악이 있는 모습으로는 주님이 사용할 수 없으니 복음의 십자가 맷돌에 나를 갈아서 먹을 수 있는 곡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바울도 율법주의에 빠져있을 때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맷돌에 갈리니 자기의 의를 죽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내는 자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바산 산에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시고 내 심령이 완악하다면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부드럽게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완악하면 하나님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바산의 산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거듭남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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