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주석 강해] 세례 요한 순교 사건(마 14:1-12)

체데크 2021. 5. 9. 15:07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세례 요한 순교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 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세례 요한이 열심히 주님을 증거 했으면 복음이 더 빨리 확신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헤롯에 의해서 순교당하게 됨으로 예수님의 복음 사역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해 줄 세례 요한이 죽자 예수님은 직접 자신을 증거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이 시대 교회와 성도도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증거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열심히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는 자들이 많아지게 해야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 순교 사건(마 14:1-12)

 

1절 엔 에케이노 토 카이로 에쿠센 헤로데스 호 테트라르케스 텐 아코엔 이에수

마 14: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14:1

그 때에 - 헤롯이 세례 요한을 처형시킨 A.D. 39년 이후이며, 갈릴리 전도의 후반기가 시작되는 때로 예수와 반대자들과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가는 시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수의 선구자로서, 구속사적으로는 구약의 종말과 신약의 출발을 증언하기 위하여 특별히 부름 받은 세례 요한은 세례 행위와 예수에 따른 메시아의 등의 직접적 방법으로 선구자의 사명을 감당하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삶을 예표 하였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의 삶과 죽음은 그 전체가 예수의 모형(模型)이었다. 즉 그의 투옥(14:3)을 통해서 예수의 수난의 삶이, 그리고 그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예표(豫標)되었다. 한편 이 세례 요한의 죽음을 기점으로 해서 예수의 사역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1) 예수께서 직접 당신의 선구자라고 지칭하였다. 요한의 죽음 이후, 즉 의로운 말을 외치다가 세상 권력자에게 당하는 죽음에서 조차 당신의 예표의 역할을 한 요한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예수는 본격적으로 스스로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수차의 수난 예고를 하시는 등 당신의 메시아직의 절정인 십자가 고난을 준비하시게 된다.

(2) 당시 팔레스틴 북부, 즉 헤롯 안디바스의 관할 지역은 물론 전 유대 땅에서 가장 큰 사회. 종교적 이슈(issue)의 주제이던 세례 요한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예수 한 사람에게 전 사회적 억압에 시달리던 일반 대중들은 예수에게 정치적인 기대를, 주로 정치 기득권층은 예수에게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1), (2)의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예수는 전 구속사적 관점에서 사역을 행하고 미래를 준비하셨다. 러나 세상은 예수의 행위의 참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부단히 자신들만의 편협한 시각으로 예수를 오해하고 있었다. 이런 오해는 예수 부활 이후에야 비로소 해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분봉왕 헤롯 - 여기서 분봉왕(테트라아르케스)이란 '개로 이뤄진 한 벌'을 뜻하는 '테트라스''통치'를 뜻하는 '케르'의 합성어로 문자적인 뜻은 '한 나라의 1/4을 통치하는 자'이다. 시 말하면 이들은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아 로마의 정복 지역의 한 부분을 통치하는 괴뢰 정부의 왕을 가리킨다.

본문의 헤롯은 헤롯 대왕이 죽은 B. C. 4년부터 A. D. 39년까지 네 개의 통치지역으로 나뉜 유대 땅 가운데서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렸던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이다. 따라서 이 시대를 주무대로 활동하셨던 세례 요한 및 예수와 관계가 깊었던 사람으로, 예수로부터는 그의 교활하고 간사한 성품 때문에 '여우'라고 불리기도 하였다(눅 13:32).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그에게 심문(審問)을 받으심으로써 그는 세례 요한 및 예수의 처형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되었다(눅 23:7).

예수의 소문을 듣고 - 6:14에 의하면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 것'이며, 9:7의하면 예수의 행한 '모든 일'에 대해서 헤롯에게 보고(報告)가 된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마가와 누가의 두 복음서에서의 예수에 대한 소문은 모두 그의 '제사 파송'관련된 것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러나 대략 A.D. 29년경, 즉 아무리 빨리 잡는다 해도주께서 죽기 1년 전에 있었던 제자들의 전도 파송의 결과, 제자들이 행한 사역과 능력에 의해서 예수에 관한 소문이 더욱더 멀리 퍼져나갔다고 하더라도 헤롯이 지금 처음으로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일 년 이상 헤롯의 통치지역인 갈릴리에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이적을 행해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롯은 갈릴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주로 세례 요한을 가두어 놓았던 베레아의 마케루스(Machaerus) 궁전에 있었거나 또는 사치와 향락에 심취해 있었으므로(F.R.Fay, Homer A. Kent, Jr.) 갈릴리 지방에서는 그가 예수에 관해서 가장 나중에 알게 된 사람 중에 속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그의 신하들이 예수의 소문에 관해 언급하고 그 일을 문제 삼으려고 하는 일은 예수의 사역이 예수의 진의(眞理)와는 달리 그들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 위협(威脅)으로 다가오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정의와 진리는 그것이 굳이 불의와 비진리를 정면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해도 물과 기름이 서로 갈라지듯이 서로서로를 밀어내기 마련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절 카이 에이펜 토이스 파이신 아우투 후토스 에스틴 이오안네스 호 밥피스테스 아우토스 에게르데 아포 톤 네크론 카이 디아 투토 하이 뒤나메이스 에네르구신 엔 아우토

마 14: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14: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 누가는 이 부분에 대해 먼저 신하 중 몇몇이 보고하고 헤롯이 곧 그 사실을 거부하는 듯한 인상으로 기술하고 있다(눅 9:7-9). 이에 비해 마가는 헤롯이 신하들의 말에 동조(alignment)한 것으로 기술했다(6:14-16). 아마 이러한 차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심경의 변화를 표현한 것으로, 누가는 헤롯이 신하의 말을 듣고 난 즉시 일어난 상태를, 마태와 마가는 시간이 조금 더 경과한 뒤에 헤롯의 감정이 가라 앉은 후 헤롯이 예수를 세례 요한으로 판단할 때의 일을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세례 요한이라 - 헤롯이 예수를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으로 오해한 원인은 (1)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2) 예수의 사역과 세례요한의 사역에 있어서 유사점, 곧 설교에 있어서의 회개 촉구와 하나님 나라 도래의 임박성 강조, 유대 교권주의자들에 대한 책망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사실 헤롯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예수를 부활한 세례 요한으로 이해(16:14)는 예수를 유일무이(有一無二)한 메시아로 고백한 제자들의 신앙고백과는 엄청난 질적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 이러한 결론을 내린 사실에서 적어도 헤롯은 미신적이며 절충적인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바리새적인 부활관에 영향을 받은 듯, 자신이 살해한 요한이 부활하여 죽기 전보다 더욱 강한 모습으로 행동한다는 미신적 사고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는 훗날 예수를 십자가 형()에 처하도록 하는데도 묵시적 동조를 하게 된다.

한편 유대인들의 부활관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정립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구약 시대에도 이미 부활 사상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몇몇 구절들(14:13-15; 12:2-3; 6:2)이 있다. 그러나 부활 사상이 훨씬 다양해지고 많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신구약 중간 시기를 거친 신약 시대였을 것이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신앙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 사상을 전면 부정(否定)하였다(행 23:8). 실로 여기서 죽은 자는 모두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신약의 가르침과 달리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은 의로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차이점이 있다.

이런 권능이 - 세례 요한이 그의 사역 중에 비록 어떠한 표적도 해하지 않았다(10:41) 하더라도 헤롯의 이 말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그를 권세(엑수시아)와 능력(뒤나미스)을 갖춘 자로, 즉 적어도 그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한의 권위에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자 심지11:11에 묘사한 대로 여자가 낳은 자, 즉 사람의 피를 받고 태어난 자 중 가장 큰 자가 예수에 대한 선구자로서 예수의 메시아직에 대한 증거라는 점에서 마태는 이를 부각시킨 것 같다.

운동하는 도다 - '운동하다'는 헬라어 '에네르게오'는 '활기를 돋우다', '움직이다'의 의미인 영어의 'energize'에 해당하는 말이다. 즉 무엇인가 초월적 힘이 한 인격에게 영감(靈感)(動力)을 주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다른 초자연적인 힘(바알세불 등)의 도움으로 행한다고 생각했듯이 헤롯도 죽은 세례 요한의 영()이 예수 안에서 그 권능들을 행하게 생각하였다.

3절 호 가르 헤로데스 크라테사스 톤 이오안넨 에데센 아우톤 카이 에데토 엔 퓔라케 디아 헤로디아다 텐 귀나이카 필립푸 투 아델푸 아우투

마 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14:3

전에 - 이 말은 3-12절의 내용이 적어도 1, 2절의 시점 이전에 일어났던 일의 회상(回相) 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관복음 모두 이 헤롯의 공포와 세례 요한 살해의 사건12제자 파송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12제자 파송을 즈음하여 요한 살해가 있었고 12제자 파송으로 전국이 예수 소문으로 들끓자 헤롯이 두려워하였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동생 빌립 - 헤롯 빌립 1(Herod Philp 1)세를 말한다. 헤롯 대왕과 대제사장의 딸 마리암네(Mariamne 2)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헤로디아의 첫 남편이며 살로메의 부친이다. 한편 그와 헤롯 안티바스와의 관계는 이복형제간이었다.

헤로디아의 일 - 여기 헤로디아는 헤롯 안티바스의 이복형제인 '아리스토블루스'(Aristobolus)의 딸이었다. 그녀는 헤롯 빌립, 곧 자신의 삼촌과 결혼하여 살로메를 낳았다. 그런데 사바티안(Sabatian) 왕인 아레타스(Aretas)의 딸과 이미 결혼한 바 있는 또 다른 삼촌 헤롯 안티바스가 그녀를 유혹하여 남편 빌립을 버리고 자신과 불법적인 재혼을 하게 했다.

그런 까닭으로 인해 아레타스의 딸은 본국으로 도망가게 되고 끝내 두 나라 간에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결국 안티바스는 이 전쟁에서 참패하게 된.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이때가 세례 요한을 참수(斬首)시킨 바로 직후였기 때문에 이 참패의 원인을 의인의 살해로 말미암은 징벌이라고 간주한다. 편 본문의 '헤로디아의 일'이란 헤롯 안티바스와 헤로디아의 불법적인 결혼에 대한 세례 요한의 책망을 가리킨다.

이 일로 인해서 헤로디아는 신약의 엘리야인 세례 요한을 미워하고 죽이고자 계획하였는데(6:19), 이는 바알의 선지자를 죽인 일로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던 이세벨의 경우와 좋은 대조가 되는 사건이었다(왕상 19:1,2).

옥에 가두었으니 - 요한은 유대인의 3대 요새(要塞) 중의 하나인 마케루스에 있는 감옥에 갇히었다고 한다. 이곳은 헤롯과 헤로디아가 주로 거처하는 베레아의 남부를 방어하는 요새로, 표고 736m의 사해 동편 황량한 사정에 위치하고 있었다. 요한의 투옥 이후에 그의 제자들 중 일부는 별개의 집단으로 계속 존속하고 있었으며 그가 옥에 갇혀 있을 동안에는 계속해서 그의 지시를 받았던 것 같다(11:2).

4절 엘레겐 가르 아우토 호 이오안네스 우크 엑세스틴 소이 에케인 아우텐

마 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4:4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 헬라어 동사 '엘레겐은 과거 미완료시상으로서 '그가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한이 헤롯을 직접 만나 그를 책망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중에 혹은 세례를 주는 등의 여러 행위 속에서 헤롯과 헤로디아의 불법적인 결혼에 대해 공공연히 비난하였음을 의미한다.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 '광야에서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세례 요한의 '고발 내용'이다. 요한이 헤롯을 책망한 것은 그가 첫 번째 부인인 아라비아 왕 아레다(고후 11:32)의 딸을 버림으로써 외교적 갈등으로 인하여 나라의 정치적 위기를 몰고 온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방인 출신(헤롯 대왕은 이두매 사람이었다)인 헤롯이 자신이 유대인이 되었음을 자처하면서도 유대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법(18:16;20:21)에는 형제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은 그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뿐이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첫 님편인 헤롯 빌립 1세는 여전히 살아있었으므로 그들은 간음죄를 범한 것이며, 또한 헤롯파 헤로디아는 삼촌과 조카(헤로디아는 헤롯 대왕의 또 다른 아들 아리스토블루스의 딸이다) 사이로 이들은 근친상간(近親相姦)죄를 범한 것이 된다.

5절 카이 델론아우톤 아포크테이나이 에포베데 톤 오클론 호티 호스 프로페텐 아우톤 에이콘

마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 그 이유는 두 가지, (1) 도덕적 이유, 즉 요한이 자신의 비윤리성을 비난했기 때문에, (2) 정치적 이유, 세례 요한이 민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심각해졌기 때문에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문제는 상호 연결된 것으로서 나누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유대인 사가(historian) 요세푸스(Josephus)등은 정치적 이유에 초점을 두고, 성경 기자들은 비교적 전자에 기울어진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세례 요한에게 있어 헤롯 가문이나 로마의 식민체제 등을 비판하는 것이 임무는 아니었다. 오히려 구속사적 입장에서 구약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인한 신약의 시작을 증언하는 것이 그의 주() 임무였다. 또한 그가 세속 정치인에게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은 예수께서도 정치적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 것과 연결되어 다시 한번 세례 요한이 예수의 선구자였음을 상기시켜 준다.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 6:20에서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하여 그를 처형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이때 헤롯이 요한을 단번에 처형치 못한 것은 백성들의 폭동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전한다. 여하튼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제외한 민중의 태도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매우 호의(好意)적 인 것이었다(3:5, 6;11:7-4).

그에 대한 민중들의 신뢰와 지지의 원인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유대 지도자들과 율법주의자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그들을 책망하였기 때문이다. (2) 적국(敵國)인 로마를 등에 업고 민중들을 억압하고 있는 헤롯 왕가를 비판하였기 때문이며, (3) 예수께서도 그를 크게 칭찬하셨으므로 예수를 따른 자들도 세례 요한을 참 선지자요, 예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선구자로서 인식하고,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했기 때문이며, (4) 헤롯이 세례 요한을 불법적으로 감금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와 동정으로 인해서 세례 요한의 인기가 더욱더 고조되고 전 국민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6절 게네시온 데 아고메논 투 헤로두 오르케사토 헤 뒤가테르 테스 헤로디아도스 엔 토 메소 카이 에레센 토 헤로데

마 14: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14:6

요한은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국민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재판에 부쳐지거나 보석을 신청하게 되지도 아니하였다(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나라는 이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마도 일 년 반쯤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추측이 되는데, 이 기간은 그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여 옥에 갇힐 때까지의 기간과 거의 맞먹는다. 여기에는 죄수들이 함께 쉬게 하는 죽음(모든 선인들의 고난의 기간)의 방법에 의해 그가 해방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압제자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욥 3:18).

헤로디아는 음모를 꾸몄다. 그녀의 마음속 깊이 맺힌 복수심은 요한의 피를 애타게 찾았으며,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녀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육적인 욕구를 가로질러 급기야는 가장 야만적인 정욕으로 변하고 말았다. "성도들의 피에 취한 자"(계 17:5, 6)는 여자, 즉 창녀이며 창기의 어머니였다. 헤로디아는 어떻게 하면 헤롯의 환심을 살뿐만 아니라 민중들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아무도 모르게 깜쪽같이 요한을 해치울 것인가를 여러 모로 궁리하였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헤롯이 음모를 도모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놀라움과 슬픔을 가장함으로써 자신의 책략을 남에게 나타내지 않으려고 했으며, 또한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맹세하는 체한 것이나 손님들에게 대해 존경하는 것 같이 꾸민 것은 한낱 속임수요 짐짓 꾸민 표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그가 알기 전에 (부지중에) 그 유혹에 말려들었다면 그는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하지 않도록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음모를 당연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봇을 죽게 한 것은 이세벨이었지만, 아합이 그 재산을 취하였으므로 "그가 죽인"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헤로디아가 요한을 목 베이려는 계략을 세우기는 했지만 헤롯이 이에 동의하고 기뻐하였으므로 그는 공모자일 뿐만 아니라 주범(主犯)인 것이다. 그러면 휘장 뒤에 있는 장면(음모)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전개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헤롯은 생일날 소녀의 춤을 보고 즐거워함. 아마도 헤롯은 생일은 성대하게 지켜졌던 것 같다. 그 날을 경축하기 위하여 늘 하는 것처럼 궁중 무도회가 필요하였다. 그 의식을 더욱 화려하게 하기 위해 헤로디아의 딸이 그들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녀는 황녀의 딸이었으므로 평상시보다 더욱 생식을 내면서 짐짓 친절하게 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육적인 즐거움과 환락의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악한 계획을 실천하기에 적절한 때라는 사실이다.

왕이 "술의 뜨거움으로 인하여 병이 날 때에 왕이 오만한 자들로 더불어 악수하는데"(호 7:15). 왜냐하면 "미련한 자"는 악을 행하는 것을 "낙으로 삼기"(잠 10:23)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이 즐거웠을 때 희롱하기 위해 삼손을 불러내었다. 파리의 대학살도 결혼식 날에 있었다. 이 어린 소녀의 춤은 헤롯을 기쁘게 하였다. 우리는 누가 그녀와 함께 춤을 추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누구도 그 소녀와 같이 헤롯을 즐겁게 할 수 없었다.

유의할 것은 무익하고 야비한 마음은 자칫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매우 사랑하게 되기 쉬우며, 또한 그렇게 될 때에 점점 시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탄은 그렇게 함으로써 사로잡고 붙들기 때문이다. 잠언 23장 31-33절을 보라. 헤롯은 지금 환락적인 기분에 젖어 있으며, 그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 이외에는 그를 기쁘게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헤롯이 이 방자한 소녀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한 성급하고 어리석은 약속. 이 약속은 맹세로 확약되었다(7절). 헤롯이 여기에서 맺은 약속은 지나친 책임(의무)이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잠 6:2)라는 말씀을 두려워하는 분별 있는 자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방법이며, 더욱이 맹세를 두려워하는 선한 사람(전 9:2)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방법이다.

그녀에게 이러한 지나친 특전을 주어 그녀의 마음대로 헤롯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소녀의 보잘것없는 춤에 대해서는 너무도 지나친 보상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헤롯이 소녀와 같이 헤로디아의 지시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약속의 맹세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일이 되며 또한 성급하게 맺어질 때 내적인 타락의 생산물(products)과 많은 시험의 기회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네가 "실수였다"(전 5:6)고 말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결코 맹세하지 말라.

7절 호덴 메드 호르쿠 호몰로게센 아우테 두나이 호 에안 아이테세타이

마 14: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14:7

헤롯의 맹세로 - 살로메의 육감적 독무에 심취한 헤롯 안티바스는 탐욕스럽고 권세 있는 제왕(帝王)으로서의 기분을 맘껏 누렸다. 그는 분위기에 도취되어 마치 고대 페르시아 군주들이 하던 식으로 호언장담을 늘어놓았다(에 5:3, 6;7:2). 헤롯은 자기 어리석음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허락하거늘 - '호몰로게오''확언하다', '공언하다' 등의 의미로, 맹세와 다짐을 동반한(메타) 허락으로서 반복될 수 없는 약속이. 물론 왕이 기쁜 날을 맞아 신하에게 훌륭한 선물을 내리는 것은 일상의 일이었지만 헤롯은 자신이 이행해야 할 내용을 알지도 못하면서 기분에 도취된 채 호언장담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과오(過誤)를 저지르게 된다.

8절 헤 데 프로비바스데이사 휘포 테스 메트로스 아우테스 도스 모이 페신 호데 에피 피나키 텐 케팔렌 이오안누 투 밥티스투

마 14: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14:8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 그 당시 살로메는 육체적으로는 뭇남성의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성숙했는지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아직 제 어미에게 의존해야 할 만큼 미숙한 상태였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악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 크나큰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본문의 '시킴'에 해당하는 원어 '프로비바스데이사'는 '선동하다', '권면하다'는 뜻으로 헤로디아의 집요하고도 악의에 찬 일면을 보여준다. 여하튼 본문은 세례 요한의 죽음이 바로 헤로디아의 사주(使嗾)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말이다. 요한의 죽음은 그녀의 간계(奸計)에 의한 것이었다. 문법을 보면 과거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놓고 세례 요한을 죽이려고 작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로디아는 분명히 요한의 처형에 대해 끊임없이 헤롯을 졸랐을 것이다. 그러나 결심을 못하는 헤롯의 행동을 통해서도 자신의 요구를 포기하지 않던 헤로디아는 어린 딸을 이용하여 눈에 가시와 같이 자신의 부정(不貞)을 고발하던 요한을 제거하려 하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 헤로디아의 흡혈귀적인 완악상을 드러내 준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에 의하면, 이때 헤로디아는 자신의 부정한 결혼을 고발하던 요한의 칼날 같은 혀가 침묵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원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요한을 마음껏 저주하고 조롱하기 원했기 때문에 참수(斬首) 당한 요한의 머리를 요구했다고 한다. 한편 여기 언급된 '소반'은 타원형으로 된 얇고 큰 접시를 가리킨다.

여기서 내게 주소서 - '여기서'라는 말은 유대의 정치, 종교지도자와 로마시의 군관들이 모인 잔치 자리로서 연회석이자 공식적인 모임의 장소이다. 헤로디아는 헤롯이 그의 딸에 대한 맹세를 깨뜨릴 것을 염려하여 모인 사람들의 눈과 귀를 담보(擔保)하여 그(헤롯)를 위협하고 요한의 처형을 더 이상 지체치 말고 즉각 실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문법을 명령법 과거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헤롯과 헤로디아가 세례 요한의 말에 기분 나빠서 죽이려고 모의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딸을 통해서 세례 요한을 죽인 것이다.

9절 카이 엘뤼페데 호 바실류스 디아 데 투스 호르쿠스 카이 투스 쉬나나케이메누스 에켈류센 도데나이

마 14: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4:9

왕이 근심하나 - 헤롯의 근심이 무죄한 자를 죽이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아니면 요한의 죽음으로 인해서 일어날지도 모를 민란 대문인지 확실치는 않다. 쨌든 그의 근심은 '양심의 최후 투쟁'(plumptre)이었으나 그는 의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 집착, 선택함으로써 악에게 굴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기의 맹세한 것 헬라어 '호르쿠스'는 맹세의 뜻인 '호르코스'의 복수형으로, 맹세가 여러 번 반복되었거나 아니면 그 맹세가 확정적일 만큼 강력했던 것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처단하도록 허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째, 고대 근동에서의 맹세는 율법에서도 평시 되어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특히 성경적인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음과 약속 이행의 의지를 엄숙하게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반할 경우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처벌을 받더라도 이의(異意)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맹세는 하나님 대신에 신의 인격, 예배에 관련된 물체, 우주만물, 성전 등을 가리켜 맹세가 행해졌다. 그러나 맹세의 남용(남용)으로 인해서 예수께서는 일체(일체)의 맹세를 반대하시기도 하였다(5:34-37).

한편 구약의 인물 중에서도 경솔한 맹세로 인해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 사람으로 입다(11:31-39), 사울(삼상 14:38 ff)등이 있다. 둘째, 헤롯은 그의 왕으로서의 권위 때문에 맹세를 깨뜨릴 수 없었을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왕의 말은 곧, 국법이었다. 그 예로 다니앨을 사자굴에 집어넣었던 메대 나라의 다리오 왕의 금령을 들 수 있다(6:14-15).

그 함께 앉은 사람들 - 6:12에 의하면 이곳에 초대된 사람들은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이다. 이 사람들은 왕의 잘못을 제지하는 엘리야김의 방백들과는(36:25) 달리 헤롯의 불의를 조장하고 촉구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이 함께 모이듯' 헤롯의 주위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모두 헤로디아와 같이 부정하고 사악 한 자들로서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신에 그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함으로써 세례 요한의 참수를 결단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들이 바로 어리석은 헤롯의 맹세의 증인이 되었고 사악한 헤로디아의 살인에 동조자(同調者)가 되었.

10절 카이 펨프사스 아페케팔리센 톤 이오안넨 엔 테 퓔라케

마 14: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4:10

사람을 보내어...옥에서 목 베어 - 심문이나 재판의 판결 없이 사람을 처형하는 것과 더구나 모세 율법에 따르면 목을 베어 죽이는 일은 종교적, 신앙 공동체에 대한 공적 범죄 이외에는(출 32:27; 신 13:6-18). 참수형은 그리스나 로마의 관습을 따른 것이다. 헤롯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이러한 이방적 태도를 반 율법적이고 반민족적인 것이어서 그가 아무리 유대인임을 자처한다고 하더라고 민중의 미움을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11절 카이 에네크데 헤 케팔레 아우투 에피 피나키 카이 에도데 토 코라시오 카이 에넹켄 테 메트리 아우테스

마 14: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4:11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 헤로디아는 그녀의 부정과 불의를 끝없이 고발하던 세례 요한의 혀가 잠잠해졌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의 머리를 요구한 것 같다. 그러나 요한의 처형이 정의를 부르짖던 그의 '소리'를 결코 잠재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아에게 주니 - 여기서 '여아'(코라시온)란 혼기(婚期)가 가까운 처녀를 가리킨다. 사실 그 당시 중 근동 지방에서는 조혼(早婚)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십 대 중반에 이른 살로메에게 이 용어를 붙인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제 어미에게 가져 가니라 -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을 받아 들 수 있게 되었다. 실로 악인은 피 흘리기를 좋아하며, 그것을 신속히 행한다. 한편 루핀(Rufin)의 제롬(Jerome)은 이때 헤로디아가 뾰족한 바늘로 피로 젖은 세례 요한의 혀를 사정없이 찔렀다고 전한다. 한편 무고(誣告)한 피를 흘리게 한 헤롯은 얼마 후 그의 전처의 본국이었던 페트라(Petre)의 아레타스 왕과의 전투에서 참패하여 도주하였고, 또 로마 황제의 진노를 사게 됨으로써 로마 원로원에 의해 프랑스 리용으로 추방되어 거기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또한 살로메는 겨울에 얼음 위를 걷다가 얼음이 꺼져 그만 날카로운 얼음에 목이 찔려 죽었다고 한다(Josephus). 정녕 하나님은 요한이 아닌 헤롯과 그 일당의 목을 요구하신 것이다.

12절 카이 프로셀돈테스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에란 토 소마 카이 에답산 아우토 카이 엘돈테스 아펭겔리안 토 이에수

마 14: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14:12

요한의 제자들이... 장사하고 - 하나의 조직체로서의 요한의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이 살아있을 때에 스승과 연락이 잦았으므로(11:2) 스승의 참수 소식을 곧바로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그들은 머리 없는 스승의 시신을 안치한 후 곧 예수께 나아갔다. 즉 그들은 스승인 요한의 증언, 곧 예수가 하나님의 어린양(요 1:35-40)이라는 말을 듣고 점차 예수를 신뢰하게 되었는데, 이제 그 스승이 죽자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예수에게로 와서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요한은 생전 뿐 아니라 사후에도 그의 영향력이 대단했는데, 그 결과로써 요한의 제자들은 팔레스틴을 벗어나 지역에서 여전히 작은 분파로서 존재하였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예수를 중심 한 복음의 충만한 지식을 지니지 못하고 단지 편협한 신앙적 지식만을 소유하고 있었다(18:24-19:7).

예수께 고하니라 - 6:30에 의하면 이 보고는 사도들의 선교 활동에 대한 보고였다. 그러나 마태는 이 보고가 요한의 처형에 관한 것임을 서술하는 가운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흡수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옥에 있는 요한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보고한(11:4 ff) 제자들이 요한의 처형 소식을 주님께 알렸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이 예수와 스승 사이의 사상의 일치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요한의 가르침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자들이 많았을 것임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2장 헬라어 주석 강해] 예수님의 진정한 가족(마 12:46-5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