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마태복음 고난주간 설교] 예수님이 조롱과 핍박을 받음(마 27:26-32)

체데크 2024. 3. 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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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고난주간 설교 말씀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 형의 언도를 받고 로마 병사에게 끌려나가서 조롱과 핍박을 받게 됩니다. 유대인의 왕이냐고 하면서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혀서 조롱합니다. 침을 뱉고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면서 희롱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희롱과 고통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조롱받고 고통받았다는 것을 고난주간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주간에 고통당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한 주를 경건하게 보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조롱과 핍박을 받음(마 27:26-32)

 

. 로마 군병들의 조롱 27:26-32

1. 사형 선고와 사형 집행령(26)

사형을 집행하도록 한 명령은 사형 선고가 내린 것과 동시에 즉시로 이루어졌다.

(1) 바라바가 석방되었다. 이것은 비록 죄인들의 괴수라 해도 그 죄인들을 석방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정죄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는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그 자신을 내어준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이 실례를 통해 볼 때 올바른 사람이 죄인의 대속물이 되었고 의로운 사람이 불의의 대속물이 된 것이다.

(2) 예수께서는 '채찍질'을 당하셨다. 40회 이상의 채찍질을 금하고 있는 유대 율법의 관용을 알지 못하고 있는 로마 군병들이 채찍질을 했기 때문에 그 채찍질은 비열할 정도로 잔인한 형벌이었다.

(3) 예수께서는 채찍질을 당한 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졌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로마인들에게만 사용되었던 사형의 한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죄인을 가장 두렵고 비참하게 죽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지와 잔인성이 발휘되어 고안된 사형 방법인 것 같다. 십자가는 땅에 세워지며 그 십자가에 손과 발을 못 박는다. 그것은 사람이 고통으로 인하여 죽일 때까지 그 몸이 십자가에 달려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살벌한 죽음으로서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우며 저주받은 죽음이다. 그것은 너무도 비참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동정심이 많은 통치자들은 법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도록 정죄받은 사람들을 먼저 죽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도록 명령했다.

2. 로마 군병들의 야만적인 행동(27-30)

그리스도는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약간의 시간적 여유를 가졌어야 했다. 그리고 로마 원로원에 의해 제정된 법에도 죄수는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적어도 10일이 지나서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는 잠깐의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폭풍이 그치지 않고 계속 몰아쳤던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진 것으로도 그가 받아야 할 처벌로서는 충분했다. 몸을 죽이려는 자들은 몸만 죽이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리스도의 원수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하고자 했다. 즉 그리스도를 지키는 자들이 그를 능욕했던 것은 아마도 그에게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유희를 즐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면류관을 탐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면류관을 탐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면류관을 씌워 조롱함으로써 즐기려 했다. 이제 다음의 사실들을 주목해 보라.

(1) 이 일이 어디에서 행해졌나. 이 일은 '관정' 안에서 행해졌다. 부당하게 학대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에게 은신처가 되었어야 할 총독의 집이 이처럼 야만적인 행동이 자행되는 곳으로 전락된 것이다. 권세를 가진 자들은 그들이 행하거나 명령한 일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들이 구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2) 누가 이 일에 관심을 가졌나. 총독의 군병들이 사형을 집행하는 데 동원되는 '온 군대'를 모았다.

(3) 그리스도는 특별히 어떤 모욕을 받았나.

1) 그의 옷을 벗기고(28). 벗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3:7).

2) 홍포를 입히며. 이것은 로마 군병들이 입었던 약간 낡은 홍포였는데 왕이나 황제들이 입는 황포를 모방한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가 ''으로 불린 것을 모욕하려 했다. 그들이 그에게 홍포를 입힘으로써 큰 수치를 준 것은 단지 그를 구경군들에게 더욱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에 불과했다.

3)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29). 이것은 그들이 그를 놀림받는 왕으로 만들려고 꾸며놓은 익살이었다. 만일 그들이 단지 그를 비난하기 위하여 이런 행동을 했다면 그들은 짚이나 풀로 면류관을 엮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가시는 고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 고통들을 면류관으로 쓰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에게 속한 고난을 자기의 고난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들이 고난 중에서 영광을 받을 수 있게 하셨으며 또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귀한 영광으로 여기게 했다. 그리스도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것은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그 나라의 영광도 이 세상적인 영광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영광이 드러나는 동안 그는 이 세상에서 핍박과 고난을 당했던 것이다.

4)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들은 이 일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권위를 나타내는 홀을 조롱하고자 했다. 그들은 마치 갈대가 이런 왕에게는 잘 어울리는 홀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들은 그의 홀과 나라를 약하고 흔들거리며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아주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보좌는 영원 무궁하기 때문이다.

5)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찌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수치스런 왕으로 만들고 나서 그에게 이와 같이 신하의 예를 흉내 내어 그를 희롱했으며 마치 그가 통치권을 탐했던 것처럼 그를 조롱하였다.

6) 그에게 침뱉고(30). 그는 대제사장의 뜰에서도 이와 같은 모욕을 받았었다(26:67). 신하는 신하로서의 예를 표할 때 충성의 표시로서 통치자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하의 예를 표함에 있어서 그에게 입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에 침을 뱉음으로써 그를 조롱했던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이처럼 악한 행동을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 이처럼 수치를 당해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7)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그들은 지금 그리스도의 왕권을 조롱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것을 그들의 잔학성을 나타내는 데뿐만 아니라 그에게 고통을 주는 실제적인 도구로 삼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그 갈대로 '가시 면류관'을 쳤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가시들이 그의 머리를 찌르도록 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고통을 가장 즐거워했던 자들에게 최대의 오락이 되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영생의 기쁨과 영광을 얻으시려고 이 모든 불행과 수치를 당하셨다.

3. 처형장으로 끌려가시는 그리스도(31, 32)

그들은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능욕하다가 흡족한 생각이 들자 '홍포를 벗기고' 그의 옷을 입혔다. 그 이유는 그의 옷이 처형을 집행하는 군병들의 몫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가시 면류관'을 벗겼다는 기록은 없다. 비록 확실한 것은 아니라 해도 이 사실로부터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쓴 채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가정을 하게 된다.

(1)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그는 제단에 바쳐지는 희생물로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53:7) 끌려갔다. 그들이 가능한 한 빨리 그를 재촉해서 끌고 갔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그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들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다(15:12).

(2) 그들은 구레네 시몬으로 하여금 '예수의 십자가를 지도록' 강요했다. 처음에는 예수 자신이 십자가를 지셨던 것 같다. 그들이 이렇게 했던 것은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고통을 주고 수치를 당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해서 그로부터 십자가를 내려놓게 했다. (1) 그들은 십자가가 예수에게 너무 큰 짐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동정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예수를 동정했다고 거의 생각할 수 없다. (2) 아마도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등에 진 채로 그들이 원했던 만큼 빨리 갈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3) 그렇지 않다면 그가 십자가를 계속 지다가 실신하여 죽게 될 경우 그를 대적하고자 하는 그들의 악의가 중단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에게서 십자가를 내려 구레네 시몬으로 하여금 그 십자가를 지도록 강요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강요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그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았다. 혹자는 이 시몬이 그리스도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거나 적어도 그리스도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자로서 로마 군병들도 그 사실을 알고 그에게 십자가를 지도록 강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시인하는 자라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고난 주간 성경공부자료] 고난 주간의 예수님의 행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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