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인물 설교문 중에서 다말이 채색옷을 찢은 다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채색옷을 찢은 다말”(삼하 13:15-19)
● 명제 : 암논에게 성적 수치를 당한 다말은 자신의 채색옷을 찢었다.
● 목적 : 다말과 같은 성도는 암논과 같은 율법주의자에게 순교를 당하게 된다.
암논은 다말을 자신의 집에 오게 하여 음식을 만들게 했고 자신의 침실로 유인하여 다말을 겁탈했습니다. 자신의 정욕을 힘으로 채우게 되었습니다. 암논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자신의 권세와 세력으로 힘이 없는 복음을 가진 성도를 괴롭히고 수치를 주게 됩니다. 율법주의자는 복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의 정욕과 자신의 탐욕에만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영혼이 구원받은 복음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말과 같은 성도는 복음을 듣지 못한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해서 열심히 복음을 준비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암논과 같은 자에게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와 같습니다. 다말이 열심히 준비한 음식을 암논에게 주려고 했는데 암논은 다말을 겁탈하여 수치를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에 다말을 대했던 행동보다 더 악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다말과 같은 복음을 가지고 전파하는 성도들은 암논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순교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삼하13: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암논은 다말과 동침하고 난 후에 행동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암논이 다말을 심히 미워했는데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 크게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말에게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말합니다.
‘가라’ ילך(얄라크 3212 동사, 칼, 명령법, 여성, 2인칭, 단수) 가다, 돌아가다, 쫓겨나다라는 뜻입니다. 암논은 자신의 정욕을 채우고 나니 다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니 만족감이 왔기 때문에 다말에게 당장 자신의 집에서 나가서 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다말을 자신의 집에서 쫓아내고 있습니다. 이 쫓아냄은 전보다 더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다정했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말 보기를 벌레처럼 보고 있습니다. 명령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집에서 더 이상 머물러 있는 것조차도 싫으니 빨리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라고 말합니다. 암논은 율법주의자의 표상입니다.
교회에서 지금도 암논과 같은 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취하고 나면 돌변해 버립니다. 특히 임직을 놓고 집사나 장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집사나 장로의 직분을 받고 임직식을 하고 나면 돌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로가 되기 전에는 담임목사에게 잘하다가 장로가 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갑자기 돌변하여 담임목사를 교회에서 몰아내려고 궁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듯이 암논이 다말을 쫓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절대 이런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앞에서 나의 세상적 욕심을 채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주님을 버리고 세상의 우상을 섬기는 이런 신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삼하13: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다말은 암논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자신을 쫓아내는 것은 전에 자신에게 행했던 일보다 더 큰 악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암논은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다말이 말하는 것을 듣지도 않습니다.
‘나를 쫓아보내는’ שלח(샬라흐 7971 전치사. 동사, 피엘, 부정사연계형. 공성, 1인칭, 단수) 보내다, 죽이다, 버리다, 손가락질이라는 뜻입니다. 다말이 암논을 향하여 말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수치를 주고 나를 쫓아내는 것은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이며 세상에 나가 손가락질 받으면서 평생 살아가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암논은 다말을 피엘형으로 쫓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움이 너무나 커서 한 순간도 함께 있고 싶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전에는 다말과 한 순간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육적인 정욕을 채우고 나니 더 이상 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암논과 같은 자는 자신의 정욕을 채우고 나면 구원에 관한 복음에는 관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세상에서 물질의 복을 받고 권력의 복을 받고 나면 복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전보다 더 못한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전에는 교회라도 나오려고 했지만 이제는 교회를 나오기는커녕 교회에 나가는 자들도 저주하여 돌아서게 합니다. 이런 자들이 암논과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암논과 같은 신앙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더니 교회에 나와 자신이 원하는 이익을 다 취하고 나니 주님도 배반하고 교회도 떠나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신앙은 결국 죽게 됩니다.
삼하13: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암논은 자신이 부리는 종을 불러 말하기를 이제는 자신의 동생도 아닙니다. 이 계집을 자신에게서 내보내고 문빗장을 지르라고 말합니다. 동생에게 수치를 주고 창녀와 같은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문빗장을 지르라’ נעל(나알 5274 동사, 칼,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 잠그다, 빗장을 지르다, 신을 신다라는 뜻입니다. 암논은 명령법을 사용하여 다말이 절대 앞으로 자신의 집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문빗장을 잠그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 단어는 신발과 연관성이 있는 단어입니다. נעל(나알 5275)은 신발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어근이 נעל(나알)입니다. 주님도 복음을 가지고 가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신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눅9:4-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주님은 복음을 전하러 가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떠나는데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는 집이나 성에서 나올 때는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 증거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저주를 의미합니다. 복음을 전해주러 집이나 성에 들어갔는데 복음을 거부하고 쫓아낸 곳에서는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암논은 복음을 전해주러 간 다말에게 수치를 주고 종을 시켜서 문밖으로 쫓아내고 문빗장을 걸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다말에게 저주를 퍼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저주는 다말에게 임하지 않고 암논에게 돌아갔습니다.
마10:12-13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집에 들어가서 평안하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집이 복을 받기에 합당하면 평안이 임할 것이고 만일 합당치 않으면 그 평안이 제자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암논은 복음을 전파한 다말에게 수치를 주고 저주하여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다말이 이 저주를 받을 상황이 되지 않으니 자신이 저주한 그 저주가 암논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암논은 압살롬에 의해서 죽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또한 저주한 그 저주가 나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빌어주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삼하13: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 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암논의 하인이 주인의 명령을 받고 다말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다말이 쫓겨나간 후에 문빗장을 질렀습니다. 다말은 채색 옷을 입었는데 출가하지 않은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채색옷’ כתנת פסים(케토네토 파심)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 공주들이 입었습니다. 이 옷은 야곱의 아들 요셉이 입었던 옷입니다. 왕과 같은 특별한 사람이 입고 있었던 옷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성도들이 채색옷과 같은 세마포 옷을 입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계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주님과 혼인한 신부들이 입은 옷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이 입을 수 있고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의를 말합니다. 다말은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는 거룩한 신부를 상징합니다. 암논은 이런 다말에게 씻지 못할 수치를 안겨주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가진 자들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율법주의자들에게 순교를 당한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깨끗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의의 옳은 행실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조들의 뜻을 따라 세마포 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삼하13: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 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다말은 암논의 집에서 쫓겨난 후에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자신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었습니다. 그 당시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는 행위는 회개를 나타낼 때 사용하고 수치가 임함을 나타낼 때 사용하게 됩니다. 다말은 자신에게 수치가 왔음을 회개하는 행위와 수치가 임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채색옷을 찢는 행위도 회개를 의미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암논과 같은 자들에게 거짓 우상의 교리를 듣고 사상이 더럽혀졌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암논과 같은 자들을 언제 심판할 거냐고 신원하고 있습니다.
계6:9-10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사도 요한이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여 순교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갚아 주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놔두고 있으렵니까? 라고 말합니다. 다말과 같은 자들이 암논과 같은 자들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해준 것밖에는 없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암논이 다말에게 행동했던 말씀을 통해서 다말과 같은 자는 결국 암논과 같은 자들에 의해서 순교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평생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며 이 길을 통해서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내가 가는 길이 다말과 같은 길이라면 나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라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암논과 같은 사람은 지금 현재 이 세상의 정욕과 탐욕에 빠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할지 모르지만 결국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심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말은 암논에 의해서 수치를 당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어 복음이라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마지막에 꼭 축복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복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다말과 같은 자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주님의 신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자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은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원어 복음을 선포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을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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