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인물 설교문 중에서 암논과 다말 설교 중에서 암논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다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암논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다말”(삼하13:7-14)
● 명제 : 음식을 준비하는 다말은 복음을 준비하는 자의 예표이다.
● 목적 : 암논과 같은 자는 복음을 준비하는 자에게 수치를 준다.
암논과 같은 자는 교회에서 율법주의자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없는 자는 다말과 같은 복음이 있는 자에게 수치를 주려고 합니다. 자신의 행위 사상을 주입시켜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으로 물들게 하려고 합니다. 암논은 요나답의 말을 듣고 다윗에게 요청하여 다말이 자신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암논의 말을 듣고 다말에게 암논의 집에서 가서 음식을 만들어 주라고 말합니다. 암논은 음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롯이 다말과 동침하는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 복음을 가진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옛말에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제사 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암논의 관심은 음식에는 관심이 없고 다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암논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세상에서 자신의 쾌락을 즐기고 누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면에 다말은 다윗의 말을 듣고 열심히 음식을 준비합니다. 다말과 같은 주님의 신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복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말이 암논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말씀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삼하13:7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다윗은 암논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말의 집에 사람을 보내어 너의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어떤 의미일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다말은 복음을 준비하는 주님의 신부를 상징합니다. 암논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복음을 준비하여 암논과 같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자에게 선포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주님도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원어 복음을 만백성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삼하13:8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다말이 암논의 집에 도착하여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암논이 보는 앞에서 과자를 만들고 과자를 구웠습니다.
‘과자를 만들고’ לבב(라바브 3823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마음을 얻다, 용기를 복돋우다, 마음을 빼앗다라는 뜻입니다. 다말이 암논을 위해서 과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말은 순수한 마음에 자신의 오라비가 빨리 병에서 쾌유될 수 있도록 과자를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낙심된 마음에 힘을 주어 용기를 북돋우어 주려고 열심히 과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암논은 다말이 직접 자신의 집에 와서 과자를 만드는 모습에 더 마음이 빼앗겨 버렸습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던 다말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니 동침하지 않고서는 안될 정도로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과자를 만든다는 문법을 보면 피엘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말이 암논을 위해서 빨리 쾌유하라는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정성껏 음식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는 암논은 다말이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고 음식은 뒷전이고 다말과 빨리 동침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복음을 준비하는 자들은 순순하게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올 수 있도록 율법주의자를 위해서 복음의 음식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율법주의자는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오롯이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삼하13:9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다말은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여 암논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암논은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말합니다. 암논은 이미 음식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다말과 동침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주의자는 예배를 드려도 복음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정욕적인 것을 채워주는 기복적인 복을 원하고 있고 야차르의 육체의 쾌락을 즐기게 해 주면 끝납니다. 지금 시대는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고 입이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눈이 즐겁기 위해서는 성경보다는 세상의 자극적인 것을 보게 되고 귀가 즐거워야 하니 찬송보다는 세상 음악을 들어야 합니다. 입이 즐거워야 하니 교회에서 맛없는 음식을 먹느니 세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먹게 됩니다.
‘거절하고’ מאן(마엔 3985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거절하다, 거부하다라는 뜻입니다. 다말이 음식을 가져다 주었지만 암논은 음식 먹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와우접속사는 그 즉시 계속해서 먹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열심히 만들어 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피엘형은 완강하게 거부하여 한 숟가락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말과 같은 주님의 신부들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열심히 준비하여 암논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복음을 완강히 거부하여 하나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절대 믿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위를 주장하게 됩니다. 원래부터 복음에는 관심이 없었던 자들입니다.
삼하13: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암논은 다말에게 자신을 위해서 만든 음식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내가 네 손에서 먹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말은 자신의 오라비가 빨리 병에서 쾌유되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게 됩니다.
‘침실로’ חדר(헤데르 2315) 방, 침실, 내부라는 뜻이며 חדר(하다르 2314) 밀실에 들어가다, 봉쇄하다, 둘러싸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암논은 다말을 자신의 은밀한 침실로 유인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자신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밀실로서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차단된 곳을 의미합니다. 다말은 주님과 하나가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다말을 암논이 강제로 겁탈하여 수치를 주려고 합니다.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이 자신의 방으로 자신을 인도했다고 고백합니다. 왕과의 은밀한 관계 속에서 기쁨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과 깊은 교제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곳이 침실입니다. 그런데 암논은 다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상을 버리고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만드는 율법주의 신앙을 주입시켜서 수치를 주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삼하13:11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다말이 암논에게 자신이 구운 과자를 먹이려고 가까이 갈 때에 암논이 다말을 붙잡고 말하기를 자신과 동침하자고 말합니다. 다말은 현재 힘이 없습니다. 힘이 센 암논이 다말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동침하자는 단어가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암논이 강제로 자신의 힘을 가지고 억지로 동침하자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율법주의자들을 보면 세상적 권세가 있고 권력도 있고 재물도 있어서 힘이 셉니다. 반면에 다말과 같은 순수한 복음을 따라가는 자들은 권세와 권력과 재물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암논과 같은 자들에게 항상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다말의 상황이 이런 상황입니다.
삼하13: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다말은 암논의 말에 대답합니다.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암논의 정절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도 다말처럼 거짓 복음을 가진 암논과 같은 자들의 요청에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사탄은 나에게 접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정절을 버리면 내가 세상의 부귀영화를 넘겨준다고 미혹합니다. 이럴 때에 나는 단호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나를 욕되게 하지’ ענה(아나 6031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2인칭,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욕보이다, 쇠약하다, 천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다말은 당당히 암논에게 말합니다. 나를 욕보이게 하지 말고 천하게 만들지 말라고 말합니다. 피엘형은 당신이 나를 겁탈하면 영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천하게 만드는 것이고 욕보임으로 인하여 나의 심신은 쇠약해져서 평생 고통 가운데 살아야 될 것을 의미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암논과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 이 욕보임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괴로움과 고통으로 남게 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단에 빠져 고통을 당하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고통은 평생 따라다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을 만나지 못한다면 평생 치유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말과 같은 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에 암논과 같은 율법주의자들과 혼합된 신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귀신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복음과 행위를 겸하여 믿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믿고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행위로는 절대 구원이 없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암논과 같은 자들과 관계를 맺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동침을 통해서 거듭났습니다. 나는 주님의 신부이지 세상의 신부가 아닙니다. 다말처럼 나는 거짓 복음을 말하는 자들에게 단호히 말해야 합니다. 나에게 행위의 거짓된 사상을 주입시키지 말라고 말해야 합니다.
삼하13: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다말은 암논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냐고 말합니다. 너 또한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지 말고 차라리 다윗 왕께 청한다면 왕이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말과 암논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은 다윗 왕이 허락하면 됩니다. 이와 같이 암논은 다말이 준비해 준 복음을 먹고 율법주의 사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사상으로 돌아서면 그가 좋아하는 다말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면 죄를 짓지 않고 얼마든지 다말과 살 수 있습니다.
암논과 같은 거짓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빨리 복음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만이 구원이 있다는 사상으로 돌아서면 다말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 수 있고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상으로 돌아서서 영원히 천국에서 암논과 다말이 함께 살아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삼하13: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암논은 다말의 말을 듣지 않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다말과 동침하여 수치를 주었습니다. 암논과 같은 자들은 지금 당장의 정욕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정욕만 참고 다윗에게 가면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정욕을 참지 못하여 죄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암논처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익을 보려고 연모했던 다말과 같은 일을 영원히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평생에 숙원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인데 당장 내 눈앞에 세상의 정욕과 탐욕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율법의 의로 돌아서서 하나님 앞에서는 평생 죄인으로 살다가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다말과 같은 자는 복음의 정절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준비하고 복음을 선포하여 암논과 같은 자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말과 같이 살면서 복음의 정절을 지키다가 순교당한 믿음의 조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당장의 야차르의 이익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바라의 신앙으로 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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