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罪)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죽은 이유가 무엇인가? 죄 때문이다. 사람은 죽음에 관하여 두려움이 있다. 인간의 죽음은 죄로부터 나왔다. 인간의 조상을 따라 올라가면 아담이 나온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결국 죄를 짓게 되었고, 이것 때문에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죽었다.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육적인 생명으로 살아있는 것이지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졌다. 인간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생부터 죄악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선한 것을 먼저 배우는 것보다 악한 것을 먼저 배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배우지 않으려고 해도 악한 것들은 더 빨리 배우려고 한다. 인간이 죄악성을 갖고 있다는 근거다. 교인이 교회에 들어오면 죄를 깨달아야 한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가 거룩한 백성인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때부터 성도로 가는 길이 시작된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 때문이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스스로 의인이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 헤브라이즘의 관점에서 죄를 살펴보자.
헤브라이즘 관점에서의 죄
구약에는 많은 죄를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죄를 살펴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죄인이었는지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과 아벨이 있는데 둘 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게 된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리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다. 이때에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내면서 얼굴색이 변하였다. 그러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하나님 앞에서 들지 못하겠냐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게 되고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선을 행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그리스도의 선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구원받은 자가 죄를 다스릴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있을 때이다.
여기에서 ‘죄’라는 단어가 (하타아 2403) 죄, 유죄, 죄의 형벌, 속죄제, 속죄 제물,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타 2398) 빗나가다, 죄를 짓다, 범죄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그럼 죄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빗나가는 행동이 죄다. 활에서 화살이 날아갔는데 과녁에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고 과녁에서 벗어난 상태가 죄다. (하타아)는 이 세상의 모든 죄를 통틀어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지은 모든 죄가 형벌받을 죄다. 아담도 죄인이기 때문에 가인도 아벨도 죄인이다. 그런데 아벨은 하나님께 양의 새끼와 기름을 드려 죄 사함을 받았다. 하지만 가인은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녁에 정확하게 꽂힌 것은 무엇일까? 율법이다. (토라 8451) 율법, 지시, 가르침, 계명,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야라 3384) 활 쏘다, 가르치다, 교훈하다, 알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이다.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활을 쏜 사람의 화살이 과녁에 정확하게 명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도 율법을 주셨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교훈과 가르침을 주셨다. 그런데 이 말씀의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지 못하고 빗나가 버렸기 때문에 죄가 되었다. 율법도 복음이다. 모세오경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율법주의자가 잘못된 것이지, 율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화의 삶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정확하게 과녁에 꽂고 있는가? 토론해 보자. 만약에 정확하게 꽂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 시간 생각해 보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토론해야 한다.
우리가 전체적인 죄에 대하여 알아보았으니 이제는 죄를 세부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이유는 원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원죄에 대하여 공부해 보자.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장은 고난 받는 메시아에 관하여 주시는 말씀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찔림은 나의 허물 때문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상함은 나의 죄악 때문이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다.
여기에서 ‘허물’이라는 단어가 (페샤 6588) 반역, 범죄, 죄, 허물,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파샤 6586) 이탈하다, 어기다, 반역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이사야 53장이 원죄와 자 범죄에 관하여 제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 단어는 원죄에 관하여 말씀해 주고 있는 단어다. 원죄는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하고 반역한 사건이다. 아담의 원죄 때문에 나도 죽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죽게 되었다.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했을 때에 나도 함께 반역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대표성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아담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결국 뿌리는 아담이다.
여기에서 원죄를 나타내고 있는 (페샤)는 단수로 사용하고 있다. 아담이 지었던 죄를 의미한다. 이 죄 때문에 나도 함께 아담과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함께 살아나게 된다. 이 시간 내가 아담의 후손으로서 원죄에 빠진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나는 원죄의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게 된다. 자신 스스로 의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으로 구원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내가 원죄의 죄인이라는 것을 이 시간 고백하고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어야 할 것인지를 토론해 보자.
다음은 자 범죄가 있다. 원죄가 해결된 사람이라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모든 죄가 해결되었다고,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것이지, 자 범죄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 범죄에 해당하는 단어가 ‘죄악’이다. 이 단어는 (아온) 불법, 부정, 죄악,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아바 5753) 정도를 벗어나다, 행악하다, 죄를 짓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원죄를 해결 받았어도,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불법을 저지르고 부정과 행악한 죄들을 짓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원죄의 죄인은 아니지만 자 범죄의 죄인은 맞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시간 손을 들어보라. 나는 구원받고 난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불법을 전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고백해 보라.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회개해야 할 죄인이다. 이 단어는 복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 범죄를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나의 자 범죄 때문에 몸에 상함을 받았다. 십자가에서 대 못에 찔리셨다. 그렇기 때문에 원죄의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영접함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단회적 회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의 고백으로 끝난다. 하지만 자 범죄의 해결은 그렇지 않다.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해서 회개해야 한다. 이것이 반복적인 회개다. 우리가 원죄를 해결 받게 되면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는다. 자 범죄를 아무리 열심히 회개해도 원죄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지옥의 형벌을 받아 영원히 불로 심판을 받게 된다. 현재 나는 원죄가 해결된 자인가? 그렇다면 자 범죄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토론해 보자. 자 범죄는 기도만 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
다음은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함부로 맹세를 하거나 약속을 하고도 어기는 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생활에서나 신앙생활에서 함부로 행동했을 때에도 죄가 된다.
레5:4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정치인들을 보면 자신이 한 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 생명에 문제가 되면 바로 말을 바꾼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교회에 나오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목사, 장로나, 집사나, 평신도나 모두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함부로 말하여 맹세를 했거나 약속을 했는데, 그때에는 약속을 어기고 맹세를 어겼다가 시간이 흘러 생각이 났을 때에 이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허물’은 (아샴 816) 죄를 범하다, 유죄로 판결되다, 형벌을 받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약속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신다. 또한 맹세와 서원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함부로 할 때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도 함부로 서원하여 지키지도 않는다.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유죄다. 형벌을 받을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한다. 이것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죄로 인하여 이 땅에서 대가를 받게 된다. 육적인 형벌의 대가가 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고 지키지 않은 것이 있다면 생각해 보자. 사람과 약속하고 지키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런 계기를 통해서 약속을 지키는 신앙인이 되자.
우리가 죄를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공부를 했으니 이제는 헬레니즘 관점에서 공부해 보자.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죄
신약에도 죄라는 단어가 있다. 헬라어를 통해서 죄에 대하여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죄에 관하여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이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 이중에 나도 한 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사망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죄’라는 단어가 (하마르티아 266) 잘못, 죄, 불법,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마르타노 264) 죄를 범하다, 범죄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아담은 하나님이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명령했는데, 아담은 불법을 저질러 죄를 범하게 되었다. 이 단어는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목표에서 벗어나 잘못된 실수를 할 때에 사용한다. 구약의 개념에서는 (하타아)와 같은 개념이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원죄뿐만 아니라, 자 범죄도 함께 저지른 것이다. 이와 같이 나도 아담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같은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말씀한다. 내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다른 종류의 죄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외식하는 것도 죄다.
마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말씀하고 있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셨다. 율법주의자들은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불법이 난무한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외식’이라는 단어가 (휘포크리시스 5272) 가장, 위선, 외식,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휘포크리노마이 5271) 가장하다, ~같이 꾸미다, 속이다. ~체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외식은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가장하여 좋게 꾸며서 속이는 것을 말한다. 장사를 하는데 비양심적인 사람들은 위에는 좋은 상품가치가 있는 것을 올려놓고 속에는 확인할 수 없으니 나쁜 저질의 상품을 넣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위선자이며 외식하는 사람들이다. 사람 중에도 처음에 만났을 때는 자신의 간까지도 빼줄 것처럼 하다가 몇 번 만나서 자신에게 이득이 없을 것 같으면 본색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외식하는 자의 신앙을 해서는 안 된다. 겉모습은 경건한 척하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신앙 자가 되면 안 된다. 이런 율법주의적인 신앙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다. 겉은 하나님을 잘 믿는 척하지만 속은 주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고 자신의 의만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외식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만약에 있다면 말씀을 통해서 회개하고 온전한 신앙생활로 돌아가자.
신약에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다.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정죄를 받는다.
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했다. 이 복음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구원을 얻게 되지만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은 정죄를 받게 된다.
여기에서 ‘정죄를 받으리라’는 단어가 (카타크리노 2632) 정죄, 유죄선고하다, 정죄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카타 2596) 대항하여, ~을 향하여, 라는 뜻과 (크리노 2919) 심판하다, 정죄받다, 재판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유죄 선고를 받고 정죄를 받아 지옥의 형벌에 처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도 죄다. 복음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도 죄다. 이런 자들은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가 직설법, 미래,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게 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여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절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데 내가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 이것도 이렇게 힘든데 내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이것보다 더 어려운 확률 중에 내가 선택을 받아 구원을 얻은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로또에 맞은 것은 기뻐하면서 로또보다 더 어려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기쁨이 없을까? 또한 로또에 맞은 것보다 더 시시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죽음에 대하여 절박한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은 지금 다른 인생을 산다고 말한다. 물질에 목 메이며 살았던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니 물질은 필요 없고, 현재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사람의 말을 듣게 된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경험한 사람은 주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것도 기쁨과 감격으로 받게 된다. 내가 받은 구원이 싸구려가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정말 값진 보화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받은 구원은 세상에서 로또로 당첨될 확률보다 수만의 확률을 뚫고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죄인 된 나를 기억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할 때에 구원의 은혜는 더 감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원죄와 자 범죄를 구별하여 공부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성화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죄도 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원죄가 해결된 것이다. 자 범죄는 여전히 계속해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지으면서 사는 죄인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이 필요한 것은 이런 죄를 주님 안에서 회개하기 위해서다. 죄에 관하여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관점에서 우리가 공부를 했으니 내가 철저한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앞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아가서 6장 강해설교말씀] 솔로몬을 만나는 술람미 여인의 노래(아 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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