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구원론 성경말씀 중에서 의인되는 방법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은 의인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이것을 오해하여 자신의 뜻대로 해석하니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의인되는 방법으로 행위가 아닌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들이 행위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특히 거짓 이단들이 행위를 주장하여 성도를 미혹합니다. 이런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여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도 있습니다. 행위로는 절대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로는 절대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만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의인이 되는 방법은 나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인되는 방법 (롬 10 : 2-3)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항상 내 안에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는 어려움을 당하고 삶에 행복도 잃어버렸습니다.
전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그래서 사람이 의롭게 된다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 영생을 얻어야 하는데 인정받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지옥의 불에 던져질 운명에 처해 있는 겁니다.
우리는 반드시 칭의의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죄인과 의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죄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의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인정을 받으면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내에게 인정을 받으면 행복합니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칭찬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는 사장님께 인정을 받으면 최선을 다하면서 일합니다. “내가 특별히 너한테만 5만 원 더 주는 거야”라고 말하면 아주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님께 인정을 받으면 아주 신앙생활하는데 힘이 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도 이렇게 힘이 나는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면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여기에 오신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의롭다 하심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의롭게 되는 것이 점진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개념들입니다. 모든 이단들은 율법주의 교파로서 율법을 잘 지키면 의롭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서서히 그 행위가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서서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으로 나의 행동이 점차적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의롭다는 개념은 순간적, 즉각적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형식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는 개념들이 있습니다. 가톨릭의 개념은 세례, 고해, 미사, 성찬, 등의 형식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죄인이 되었는데 이런 형식적인 것으로 의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교회 생활하면서 이렇게 믿음 생활하고 있다면 내가 세례를 받았으니 나는 의인되었다.라고 생각하신다면 형식적인 개념에 의로운 것을 알고 있는 겁니다. 선행이나 공덕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가톨릭에는 공덕 축적설이 습니다. 덕을 쌓으면 의로워진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이 되었는데 내가 죄를 씻지 않고 아무리 좋은 선한 행실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의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예화) 우리가 어렸을 때에 밖에서 아주 재미있게 흙을 갖고 놀아본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소꿉장난하다가 손이 완전히 버리고 발도 버리고 옛날에 검정 고무신 신을 신고 여름에 다니다가 놀이기구가 없으니까 고무신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물 퍼오고 하면서 놀았던 기억들이 나실 겁니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땀이 범벅되고 흙에 범벅되고 집에 가게 되면 어머니는 아주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 놓고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되지요. 그때에 어머니는 손을 씻고 와서 먹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나 나름대로 닦고 와서 급한 마음에 대충 닦지요. 그런데 어머니가 보실 때에는 전혀 닦은 것 같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직접 몸을 씻겨주시고 깨끗하게 온 몸을 구석구석 씻겨주신 기억들이 나실 겁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로 물들었던 우리의 모든 삶이 우리가 아무리 씻고 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의로워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는 공덕설과 지성, 방생을 하면 의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고기도 놓아주고 살아있는 생물들을 방생하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살생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동물과 사람을 하나로 보는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살인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제일 귀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스리고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귀하게 보아야지 동물들을 우상시하면서 그것들을 숭배하는 사상은 절대적으로 성경에 어긋나는 겁니다. 그럼 자기의 의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롬 10:2-3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기의 의란 무엇입니까? 자신의 노력, 공로, 선행, 등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방언으로 열심히 기도하면 의롭게 되는가 생각하게 되고 열심히 봉사하면 의롭게 되는가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런 것들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봉사해서 기도해서 헌금 많이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므로 감사해서 봉사는 겁니다. 자기의 의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절대적으로 의를 얻기에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사람의 방법과 수단으로써는 절대적으로 의로워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이 아무리 사람이 볼 때에 선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절대적으로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루신 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뤄 놓으신 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라는 겁니다.
예화) 축구장에서 열심히 선수들이 공을 차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방법으로 열심히 골을 차고 심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선수가 공을 잡고 열심히 상대방의 골대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선수가 공을 상대방의 골대에 차는 순간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그 공은 상대방의 골문을 가르고 골인이 되었지요. 여러분 생각에는 이것이 골인입니까? 선수는 너무나 좋아서 혼자 골인이라고 심판에게 우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골인으로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심판이 인정하는 골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방법을 가지고 열심히 의로워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율법들을 지켜보기도 하고 선행을 하기도 하고 열심히 자신만의 노력들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되는 방법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법으로 의로워지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의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까지 내놓으신 그 십자가의 피 흘림의 의로움을 이루어 놓으신 방법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방법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인정하는 방법들을 성경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전가된 의가 있습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의를 우리가 받는 겁니다. 그래서 죄인 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서 의롭게 되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어기면 모두가 돌을 맞아 죽어야 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한쪽 손에는 율법을 한 손에는 성막을 받아서 내려왔습니다. 만약에 율법만 받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광야에서 죽어야 됩니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을 살릴 방법으로 성막을 주시고 죄인들은 모두가 제물을 가지고 와서 대신 제물이 죽고 자신은 의롭게 되어 성막을 나가는 겁니다.
예화) 미국에 쌍둥이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어려서부터 공부도 안 하고 잘못된 친구들을 만나서 조폭으로 빠지게 되어 사형수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생각하기에 형이 장남이고 엄마를 모셔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 형에게 면회를 가게 됩니다. 그래서 형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형과 동생이 옷을 갈아입습니다. 동생은 죄인이 되어 사형수의 자리로 들어가고 형은 동생의 신분으로 감옥에서 죽을 상황이었는데 나오게 됩니다. 이제 동생은 사형당하여 죽고 형은 살았습니다. 이제 형은 더 이상 사형수의 신분이 아닙니다. 죄인의 신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의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의 이름과 동생의 신분으로 열심히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에서는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된 겁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죄는 2천 년 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전가된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그러면 이제 죄인이 아니라 의인처럼 살아가십시오.
롬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우리의 의는 법정적으로 판결이 난 의입니다.
롬 8:33-34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무죄 판결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단이 정죄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도 우리를 더 이상 죄인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죄라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분의 변화가 왔습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법적으로 죄인의 신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재판을 하시면서 우리를 무죄로 판결하시고 의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칭의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제 의인입니다. 덮어주시는 의가 있습니다.
롬 4:6-8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의 죄를 덮어주신 의입니다.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니 앞에서는 전혀 검정 색깔의 죄가 보이지 않고 하얀 예수님이 의만 보이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더 이상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시 103:8-10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선언적인 의가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의인이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이것은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의 선행, 공로, 신앙의 정도에 따라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즉각적으로 의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화는 점진적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되나 칭의는 단번에 완성되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방법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마음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억하신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과 주님께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오늘 의인의 재판 판결을 받고 돌아가시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삶은 자유로운 삶이 되었습니다. 항상 의인의 삶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5장 성경주석] 므두셀라와 노아에 관한 기록(창 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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