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갈라디아서 1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눈이 멀었다가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다시 눈이 보이게 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삼 년 만에 베드로는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사도들과 유대 교회들이 바울을 인정하게 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복음으로 돌아섰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했지만 완전히 회심한 것을 알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갈 1:18-24)
18절 에페이타 메타 에테 트리아 아넬돈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히스토레사이 페트론 카이 에페메이나 프로스 아우톤 헤메라스 데카펜테
갈 1: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18
그 후 삼 년 만에 - 본 구절에 대하여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1) 바울이 회심하고 나서 삼 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즉 문맥상 바울이 자신의 독특한 회심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회심에 역점을 두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Boice, Huxtable, Lenski).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온 때로부터 삼 년이 경과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에서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게바를 만나기 전에 상당 기간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어떤 학자는 3년이란 기간을 문제 삼아 본문의 기록이 행 9장에 나타난 바울의 행적과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누가가 행 9장에서 바울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할 때 '아라비아로 간 것'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의 침묵이 바울의 아라비아행을 부정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는 못된다.
누가는 단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아니한 기간에 대하여 침묵한 것뿐이며, 그 반면에 바울은 본서에서 게바를 만나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재정립(再定立)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게바를 심방하려고 - '심방하려고'의 헬라어 '히스토레오'는 영어의 '히스토리'(history, '역사')의 어원이 되는 말로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이다. NEB는 이를 '게바와 가까워지려고'(to get know)라고 번역하였다. 본 구절은 행 9:26-30에 기록된 사건으로 바울은 바나바에 의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된 이후에 베드로를 찾아갔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주장하면서 베드로와의 만남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는 두 가지의 추측이 가능하다. (1) 2절에서 언급한 자신을 지지하는 '형제' 가운데 베드로가 포함되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2)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이 방문이 사적인 방문이며 어떤 인간적인 권위의 지지를 얻으려는 방문이 아니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주께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양자가 조심스럽게 적용되어야 하겠으나 문맥상 후자를 택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사도는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 자신이 사도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5일 동안 머무르며 게바를 통하여 예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바울은 그때에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과 가르침을 바르게 정립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설명하였을 것이다.
19절 헤테론 데 톤 아포스톨론 우크 에이돈 에이 메 이아코본 톤 아델폰 투 퀴리우
갈 1: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1:19
주의 형제 야고보 - 바울이 만난 야고보가 세베대의 아들이면서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마 10:2)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3)가 아니라 예수의 친형제 야고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예수의 선교 초기에 그의 형제들과 친족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친 자로 여겼다(막 3:21; 요 7:5).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그들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진실한 신자가 되었으며(행 1:14)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2:9, 12; 행 12:17;21:18 등). 어떤 학자는 바울이 야고보를 사도로 인정하느냐 또는 인정하지 않느냐에 관심을 가지지만(Cole), 당시 교회의 보편적인 사도 개념으로 이해할 때 지도자인 야고보를 사도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바울이 왜 열두 제자 중 베드로 외에 야고보만을 보았다는 것을 강조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바울은 예수에 대한 보다 넓고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수제자를 택했으며 또한 예수의 친형제를 택한 것 같다.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도 너그러웠으며 온유한 인격을 소유하였으므로 바울에게도 친절하게 예수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20절 하 데 그라포 휘민 이두 에노피온 투 데우 호티 우 프슈도마이
갈 1: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1:20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 바울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 교회의 구성원 중에는 아직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바울이 교회의 지도자들과 충돌할 때에 발생되는 문제는 그의 진정한 사도권에 관한 것이었지만, 교회의 구성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자신이 지난날에 그들을 핍박했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갈라디아의 교인들에게 거짓 교사들을 멀리하고 복음에서 떠나지 말라고 엄숙하게 권고하고 있다.
21절 에페이타 엘돈 에이스 타 클리마타 테스 쉬리아스 카이 테스 클리키아스
갈 1: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1:21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의 연대기적인 행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를 들러 길리기아 지방으로(행 9:30) 갔다가 안디옥에서 함께 사역하기를 바라는 바나바의 요청에 의해 수리아 지방으로 갔다(행 11:25,26). 길리기아는 소아시아의 동남부 연안지대로서 바울의 고향인 다소를 포함하는 지역이며 수리아는 팔레스틴 북부 지역으로 수도인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바울이 이 두 지역을 언급하는 것은 (1) 예루살렘 교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먼 곳에서 사역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며, (2) 또한 예수를 만난 이후에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했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함이다.
22절 에멘 데 아그노우메노스 토 프로소포 타이스 에클레시아이스 테스 이우다이아스 타이스 엔 크리스토
갈 1: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1:22
유대에...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 '얼굴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프로소포'는 '개인적으로'라는 의미이다(Longenecker). 행 8장에 나타난 박해로 인해 유대 지방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어떤 인물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어떤 인격의 소유자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예루살렘 교회에 국한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변방(邊方)에 있던 유대인의 교회는 바울에 대해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Cole).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 바울이 13절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였는데 본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고 표현한 것은 유대교의 회당과 구분 짓기 위함인 것 같다(Cole). 또한 이러한 표현은 살전 2:14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이라는 표현과 동일한 용어로 보인다(Longenecker). 그러므로 본문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따로 교회로 모이는 것을 시사한다거나, 유대 지역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지역 교회의 형태를 가졌음을 보여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한편 '교회'를 복수인 '엑클레시아이스'로 사용하는 것은 단지 유대 지역에 있는 교회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의 교회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행 9:30).
23절 모논 데 아쿠온테스 에산 호티 호 디오콘 헤마스 포테 뉜 유앙겔리제타이 텐 피스틴 헨 포테 에포르데이
갈 1: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1:23
잔해 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 '지금'(뉜)은 현재 사실을 과거 사실과 대조하여 사도 바울이 회심한 사실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낸다.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이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과거 바울로부터 직접 핍박을 받았던 유대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되고도 남았다. 본문은 바로 그와 같이 변화된 바울을 두고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Ernst Bammel).
24절 카이 에독사존 엔 에모이 톤 데온
갈 1: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1: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돌리니라 - 본절의 이면(裏面)에는, 바울의 사도직과 메시지를 부정하면서 정면으로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에 대해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한 모습과 바울의 초기 선교 사역의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한편 본절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 관하여 말씀하신 부분인 사 49:3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Longenecker).
[성탄절 찬송] 성탄절 찬송가 112장 그 어린 주 예수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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