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구약성경지명 성경공부] 가데스-가데스 므리바의 교훈(민 27:12-14)

체데크 2021. 5. 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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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구약성경 지명 성경공부 중에서 가데스 므리바의 교훈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에 도착했을 때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반석을 명하라고 했는데 반석을 치게 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를 드러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인간은 율법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모세를 통해서 예표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가데스 Kadesh-가데스 므리바의 교훈

 

민 27: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민 27:13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민 27: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므리바란 '다툼'을 의미하는 말로 가데스 바네아의 별명입니다. 성경에는 왜 가데스가 이런 별칭을 얻게 되었는지에 관한 사건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20:1-13).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의 한 사건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건은 평범하지만 깊은 영적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평범해 보이는 일도 막상 우리에게 닥치면 우리 역시 그와 유사한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격차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 생활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 차이에 유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자신에게 닥칠 유사한 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1. 백성들은 불평 불만으로 일관했습니다

1) 기적을 체험하고도 원망했음

가데스 바네아가 므리바란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된 발단은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마실 물을 얻지 못하자 차라리 애굽에서 종노릇 하거나 다른 형제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을 때 함께 죽은 것만 못하다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미 그들이 출애굽해서 광야로 나올 때에는 이런 시련이 충분히 예견되어 있었다는 점이며, 또한 그들은 가진 것 하나없이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곳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가데스까지 오는 동안 최소 10회 이상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14:22).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고 르비딤에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셨습니다(17:1-7). 그런 경험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아뢸 믿음이 생길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원망과 불평, 다툼으로 일관하였습니다.

 

2) 불신앙의 본성 때문에 원망하게 됨

원망의 본질적 요인은 인간 심성 깊숙이 내재해 있는 뿌리 깊은 불신앙의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잠시뿐입니다. 새로운 시련이 닥치면 은혜로운 하나님이 또 도와주시겠지 하는 굳센 믿음보다는 왜 또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 하는 불안과 염려에 압도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혀 그만 짜증내고 불평을 터뜨리고 맙니다. 그리하여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라고 권면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시종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1) 변함없으신 사랑으로 대하심

오직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는 우리의 생각이나 상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회중을 모으고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보복이나 책망도 없습니다. 그들의 불신앙에 대한 책망의 언급이 있을 만한데도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창기와 함께 아버지의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눅 15:20-24). 아버지는 있는 그대로의 탕자를 받아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를 대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요,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은혜로 자기 백성을 대해 주심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원망으로 일관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자격이 없지만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은혜로 일관되게 대우하십니다. 이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모세는 인간적인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1) 끝까지 인내하지 못했음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할 때만 해도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했던 모세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을 얻고 돌아왔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격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거세게 질책하며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씩이나 두드리며 물을 내었습니다. 본문은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크게 훼손한 망령된 행동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스가 산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해야 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간혹 지극히 인간적인 자기감정의 분노를 폭발하면서도 마치 하나님을 대신한 거룩한 분노인 양 위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감정에 자기가 속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모세는 큰 불이익을 당했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대신한 감정 폭발을 위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그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임한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관용이고 용서이며 자비이며 긍휼입니다. 우리는 종종 관용과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야 할 때 오히려 정죄와 비방과 분노의 감정을 폭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가 가나안 입경을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받았듯이 우리 자신에 대한 심판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세는 그 자신이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야 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인간적인 분노, 그것이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 있다 해도 자신에게 종국엔 사탄적이요, 마귀적이요, 정욕적인 것임을 명심하고 철저히 억제해야 합니다. 결국 가데스 바네아는 므리바라는 슬픈 또 하나의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이름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으로 인해 르비딤이 얻었던 별칭이기도 합니다(17:7). 그런데도 다시금 이 이름이 가데스에 붙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뿌리 깊은 인간의 불신앙의 깊이를 알게 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을 향해 보복하지 않으시고 변함없는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의 요구대로 생수의 강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을 모르고 혈기로 대한 모세는 그만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자비의 깊이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자비의 깊이를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성도는 그분의 은혜를 더욱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의 더 깊은 곳에 들어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약성경 지명 성경공부] 가다라 귀신들린 자들의 비극(마 8: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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