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구레네 사람 시몬 설교문] 십자가를 짊어진 구레네 사람 시몬(막 15:21-23)

체데크 2020. 6. 2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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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구레네 사람 시몬 설교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진 구레네 사람 시몬”(막 15:21-23)

 

명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구레네 사람 시몬은 주님과 함께 죽은 것을 의미한다.

목적: 구원받은 자들도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함께 죽었고 함께 고난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이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죄인의 모습으로 온다는 자체가 수치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모습으로 올 수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시지 않으면 구원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나의 죄를 대신 갚아주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 관대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시고 나의 죄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까? 이것만 생각해도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많은 고뇌와 번민에 쌓여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육신이 피곤하여 잠만 자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뇌를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과 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나는 어떻습니까? 주님이 기도를 원하실 때에 주님의 뜻에 맞추어 기도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나를 원하실 때에 나는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이 부르실 때에 라고 대답하여 주님의 기쁨이 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가룟 유다의 손에 팔려가시게 됩니다. 제자의 손에 팔려 가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제자로 불렀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잡기 위하여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입을 맞춤으로 자신의 구세주를 팔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악역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 앞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밤새 심문을 받고 채찍을 맞으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살은 갈기갈기 찢겨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군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브라이도리온 이라는 로마 부대의 사령관 관저로 들어가게 되고 많은 군인들이 있는 곳에서 희롱을 당하시고 자색 옷을 입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며 이방인들이 수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밤새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고통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방인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황제에게 충성 맹세하는 것을 풍자하여 예수님을 놀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색 옷은 군인들이 입던 망토로서 자색의 색깔은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황제에게 충성 맹세한다는 의미를 예수님을 놀리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씌운 것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네가 황제와 같은 자냐고 희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침을 뱉는 것은 자신의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입을 맞춘다는 의미로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입니다. 그리고 갈대로 주님의 머리를 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침을 뱉는 것과 갈대로 머리를 때리는 것은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침을 뱉고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때렸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릎을 꿇게 하시고 무릎으로 총독관저의 돌로 된 바닥을 기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절하는 것의 문법을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보통의 머리를 숙여 절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복종의 의미를 가지고 무릎으로 기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밤새 고통을 당하시고 로마 병사들로부터 침 뱉음과 갈대로 머리를 맞으시고 지치신 몸을 이끌고 무릎으로 돌 위를 기어가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왜 이렇게 고난과 수모와 이방인들로부터 수치를 당하셔야 하는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바로 나의 죄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통의 수난으로는 죄 값을 치를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희롱을 다 한 후에 예수님께 입혔던 자색 옷을 벗기고 원래 예수님의 옷을 입혀서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골고다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오늘 본문의 말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예배를 드리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 온갖 수모를 겪으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메게 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기쁨으로 메고 올라가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이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여 도망을 치실 것입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레네 사람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곳이 마가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알렉산더도 나타나지 않고 루포의 아버지라는 것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마가는 왜 이것을 자세하게 기록했을까요? 마가의 입장에서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행동이 귀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자신은 겟세마네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협을 당하니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막14:50-52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중에 한 청년이 있는데 이름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마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잡히니까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을 쳐버렸다고 자신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통하여 자신이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저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레네 지역은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서쪽에 있는 곳으로 섬으로 된 지역으로서 구레나이가의 수도였습니다. 이곳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시몬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다. 이곳에 왔다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시몬이’ (Σιμων시몬 4613) 시몬,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שמע샤마 8085) 순종하다, 청종하다, 준행하다, 찬송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온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고 구레네 사람 시몬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이 사람은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여 말씀을 따르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할 때에도 묵묵히 준행하여 마지막은 하나님께 찬송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시몬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메고 간다는 것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의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말로만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고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고 실제로 주님의 고통과 고난에 동참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했습니까? 구레네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멘 사건을 통하여 같이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αγγαρευω앙가류오 29) 강제로 봉사하게 하다, 억지로 가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로마 병사가 왜 구레네 사람 시몬을 강제로 봉사하게 하여 십자가를 지게 했을까요? 이것은 고레스 왕으로부터 내려오게 되는데 큰 나라를 다스리다 보면 신속하게 왕의 명령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는데 왕의 명령을 전달하던 전문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왕의 명령을 하달받아 릴레이식으로 각 지방으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기사가 왕의 명령을 전달하다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이나, 물건이나, 사람을 쓸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강제로 징용하여 사용했는데 로마시대까지도 필요에 의하면 강제로 징용하여 사용하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너무 지쳐서 십자가를 메고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십자가 무게가 13Kg~18Kg의 무게를 메고 올라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지쳐서 십자가를 메고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시몬을 끌어다가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게 한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메고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는 사역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우고’ (αιρω아이로 142) 메다, 깨닫다, 취하다, 옮겨놓다, 라는 뜻입니다. 로마 병사가 억지로 시몬에게 십자가를 메라고 한 것 같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시몬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것이며 시몬은 예수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가 주님의 십자가를 메고 주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자신의 구원자이며 죄를 대속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온전히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다 자신의 무거운 원죄를 옮겨놓고 마지막에 주님이 가져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볼 때 나도 시몬이 십자가를 질 때에 나도 함께 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다 나의 모든 원죄를 전가시키고 이것을 주님이 담당하셔서 나의 모든 원죄가 십자가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내가 원죄를 전가시켰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몬이 짊어질 때에 나도 함께 짊어졌다는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정법을 사용하여 내가 짊어지지 아니하면 나의 원죄가 주님의 십자가에 전가되지 않지만 짊어지면 죄가 전가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을 믿으면 나의 원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나도 이와 같이 십자가를 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메는 사람은 아무나 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예정된 사람이 시몬처럼 십자가를 메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구레네 시몬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를 멘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일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없애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었는데 나의 죄 때문에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죄를 없애려고 할 때에도 아이로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나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어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몬이 십자가를 멜 때에 일어난 것처럼 나도 시몬과 함께 십자가를 질 때에 나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막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골고다(Γολγοθα골고다 1115) 골고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גלל갈랄 1556) 옮기다, 떠나가다, 맡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골고다는 예루살렘 근처의 해골이라는 뜻의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로마시대에 대항하던 사람들을 처형하던 장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한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많은 해골이 있었으며 부정하여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곳에서 처형을 당하시고 있습니다. 그럼 골고다가 하는 직접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처형하는 장소로 믿는 자들에게는 죄가 청산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신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의 죄를 전가받아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다면 주님은 선택받은 자들의 죄를 언제 전가받을 수가 있습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나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말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시몬을 통하여 선택받은 자들의 원죄를 십자가를 짊어질 때에 전가시킨 것입니다. 자신이 마지막 골고다에 올라가야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으로 자신의 몫은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이 십자가를 인계받으시고 골고다의 언덕에 직접 매달리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를 옮겨주셨고 수치를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수치들이 있습니다. 죄악들의 수치입니다. 이런 모든 수치를 주님께서 물러가게 하셨으며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사61: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수치를 두 배나 보상을 받게 되며 능욕 대신에 구원을 몫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기뻐하면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갑절의 복을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골고다에서 나의 수치와 죄와 능욕을 거두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영원한 수치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죄악들이 사라지고 주님의 영광이 나에게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수치가 있는 자들은 수치 대신에 갑절의 보상의 복을 받습니다. 모욕을 당하던 자들은 예수님이 모욕당하심으로 축복을 할당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선포하십시오. 나의 수치가 사라졌고 모욕이 굴러갔으며 이 땅에서 갑절의 복을 얻는 역사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십시오. 주님이 모두 이루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막15: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지만 예수님은 받지 않습니다. 이 포도주를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몰약은 탈무드 전승에서 말하기를 고통을 줄이기 위하여 포도주에 향료를 섞는 것입니다. 이들은 좋은 의도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줄여서 더 오래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죄인이 쉽게 죽으면 안 되니 더 고통을 느끼면서 오래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월절 만찬 때에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기 전까지는 절대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유월절 날에 포도주를 마시고 아버지 나라에서 새것으로 우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는 마시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재림의 날을 암시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오는 새로운 포도주를 주님과 함께 마시기 전까지는 주님은 이 땅에서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 재림의 때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초림의 역사를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구레네 시몬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이 시간 내가 시몬이 짊어졌던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고 내가 짊어진 것으로 믿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까지도 원죄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원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어야 만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주님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 바로 나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모든 수치가 주님의 십자가에 전가되었고 나의 모든 모욕과 능욕이 전가되었고 죽음이 전가되었고 슬픔과 애통과 고통이 전가되었고 질병의 아픔이 전가되었고 가난이 전가되었고 미련하고 어리석음이 전가되었고 탐욕이 전가되었고 정신적 고통이 전가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십자를 짊어짐으로 끝이 났습니다. 더 이상 애통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수치를 당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주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짐을 짊어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런 자들은 아직도 주님의 십자가를 메지 않은 자들입니다. 시몬과 같이 주님의 십자가를 멘 자들은 자신의 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쉽고 가벼운 짐이 나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니 고난과 고통의 시련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짐은 한결 가벼울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치와 모욕을 받았다면 갑절의 축복으로 보상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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