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복음 9장 설교문] 실로암의 은혜(요 9:1-12)

체데크 2020. 6. 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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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방문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9장 설교문 중에서 실로암에 가서 예수님이 맹인에게 씻으라고 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실로암의 은혜(요 9:1-12)

 

명제: 맹인 된 자는 실로암 물로 씻어 밝은 눈으로 치료함을 받았다.

목적: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한 자들이 치료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주님을 만나 고침을 받고 평생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어떤 의도로 이 본문의 말씀을 기록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은 8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율법으로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율법의 죄에서 구해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님은 세상의 빛이며 주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은 빛을 받아들였고 더 이상 어둠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빛을 말씀하시고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주님의 제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알게 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 스스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해 주실 때에 우리가 참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 말씀을 8장에 핵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9장에 맹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맹인처럼 빛을 보지 못했고 진리를 알지 못하여 캄캄한 어둠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둠에 있었던 인생을 주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맹인의 눈을 고쳐주심과 같이 우리의 죄악 됨으로 말미암아 어둠에 있었던 인생을 고쳐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하고 있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도 이와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원죄 때문에 영적으로 앞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맹인이 고침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삶이 고침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맹인 된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누구의 죄냐고 묻는 것입니다.

요9:1-3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의 부모의 죄로 인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함이니이까’ (άμαρτανω하마르타노 264) 죄를 범하다, 죄를 짓다, 죄로 인하다, 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기를 이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맹인 자체가 죄가 있어서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맹인은 잘못이 없는데 부모의 죄로 인하여 자식이 죄의 대가로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죄가 실제적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죄는 부모의 죄로 인함도 아니고 자신의 죄로 인함도 아닌 것입니다. 이미 과거에 계획된 죄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하나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맹인을 보고 왜 죄의 문제를 가지고 질문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앞을 보지 못한 것과 죄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이는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영적인 의미는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하고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원죄에 매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여기에서 제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죄인지 아니면 부모의 죄인지를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죄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죄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어둠에 싸여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원죄 때문에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빛을 보지 못하는 눈을 고쳐주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무의 죄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내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타내고자’ (גלה갈라 1540) 발가벗기다, 드러내다, 명백해지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질문에 해답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이렇게 맹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깊은 영적인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들도 나의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죄 때문에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원죄에 빠져있는 영적 맹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발가벗기듯이 명백하게 드러내어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알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맹인들이 스스로 알려고 해도 절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고 밝혀주실 때에 복음이 보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라는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 맹인의 눈을 열어주는 것은 나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요9:4-5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을 나타내신다고 하시고 갑자기 빛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낮이기 때문에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밤이 되면 아무도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암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있는 동안이 낮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부지런히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가 제자들과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밤이 오는 것입니다. 이때는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있을 때가 낮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이로라’ (אור오르 216) 빛, 광명, 광선,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빛이며 능력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빛 때문에 모든 세상의 원죄에 싸인 자들이 앞을 보지 못하고 죽어갈 때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빛이 동공을 통하여 들어와서 사물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광선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요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원죄의 어둠에 있으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여 주셔서 생명을 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께서 맹인의 눈을 고쳐주신 것은 원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빛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나서 맹인의 눈을 치료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맹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알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9:6-7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여기에서 주님의 행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빛이라고 말씀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행동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침을 뱉어’ (רוק루크 7324) 쏟아내다, 이끌어내다, 황무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치료하기 위하여 자신의 침을 땅에 뱉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지금까지 맹인이 어둠에 싸여 원죄의 고통에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영혼이 메마르고 황폐하여 영원히 지옥의 불구덩이로 들어갈 인생을 주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이 맹인을 위해 달리시고 피를 쏟아부어주셔서 눈을 고쳐주시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한 맹인이 불쌍하여 즉시로 주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내가 맹인처럼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영혼이 망가지고 심령이 고통을 당하는 이러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 주님께서 직접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눈에 발라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꼭 진흙을 이겨 맹인을 고쳐야 할까요? 말씀으로만 하셔도 얼마든지 맹인의 눈을 고칠 수가 있는데요.

‘진흙을’ (טיט티트 2916) 진흙, 수렁, 더러운 것,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되는데 진흙을 자신의 침과 섞어서 눈에 발라주고 있는 영적 의미는 주님께서 직접 십자가에 맹인을 위하여 달리시고 지금까지 진흙과 같은 추악하고 더러운 삶에서 또한 깊은 수렁에 늪에 빠져 영적으로 죽어있었고 육적으로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던 맹인을 위해 자신이 고난을 당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죄를 지은 자들을 위해 말씀으로만 하셔도 구원을 이루게 하실 능력이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확실하게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으로 부족하여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실로암 연못이 생긴 배경이 있습니다. 이 연못은 히스기야 왕 때에 만들어진 연못입니다.

대하32: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민족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기혼의 샘물을 막아 다윗 성으로 수로를 파서 물을 끌어 들였습니다. 이 물이 실로암 연못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기혼의 샘을 막고 나서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로암의 물은 기혼 샘에서 나오는 물입니다. 주님은 맹인을 기혼 샘에서 나오는 물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기혼’ (גיהון기혼 1521) 기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יח기아흐 1518) 터져 나오다, 낳다, 쏟아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실로암으로 맹인을 보내고 있는 것은 기혼 샘에서 나오는 물로 눈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맹인의 눈을 진흙으로 발라 주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맹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맹인이 직접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는 행위는 주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혼 샘에서 나오는 물을 통하여 새롭게 빛을 볼 수 있는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말씀으로 완전하게 씻김 받아 주님을 영접한 자들은 더 이상 원죄의 맹인의 삶을 살지 않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진리를 알게 되어 자유 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맹인이 오늘 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원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는 고통의 나날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시간 나에게 찾아오셔서 진흙으로 침을 뱉어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눈에 발라주시고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나의 원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모두 이루어주셨습니다. 내 안에는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맹인이 앞을 보았을 때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우리도 이와 같이 영원한 죽음의 원죄에서 해결 받은 것이 맹인이 눈을 뜬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바라보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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