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창세기 9장 하나님 말씀] “선택받은 자의 축복과 선택받지 못한 자의 저주”(창9:24-27)

체데크 2020. 5. 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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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9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선택받은 자가 축복을 받고 선택받지 못한 자가 저주를 받은 이야기입니다. 함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해서 영적인 축복을 받지 못하고 셈과 야벳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영적인 복을 받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선택받은 자의 축복과 선택받지 못한 자의 저주”(창9:24-27)

 

명제: 가나안의 저주는 선택받지 못한 자의 표상이고 셈과 야벳은 선택자의 표상이다.

목적: 현재도 가나안과 같은 자가 있고 셈과 야벳과 같은 자들이 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에 취해 옷을 벗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함은 형제들에게 알렸고 셈과 야벳은 자신들의 겉옷을 가지고 들어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하체를 덮어주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려고 한 것인데 함은 노아의 속뜻을 알지 못하여 형제들에게 외형적인 것만 보고 비난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가 하려는 의도를 깨닫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하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면서 외형적인 모습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구원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나를 위한 고난이며 나를 위한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함과 같은 자들은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선택받은 자의 축복이 무엇이며 선택받지 못한 자의 저주가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선택받은 축복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를 알아야 하며 항상 주님께 감사의 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노아가 술에서 깨어나 함이 자신에게 했던 일을 알고 처음으로 행했던 일이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하나님의 깊은 영적 의도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함의 입장에서는 노아가 잘못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추태를 부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아버지가 손자를 저주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자신의 아들이 잘못을 했는데 저주는 후손들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함이 한 일이 노아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옷을 입지 않고 포도주에 취해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밖에 나가 말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비난하고 구원의 일을 방해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노아가 술이 깨어 함이 한 일을 깨닫고 나서 가나안을 저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노아는 왜 가나안을 저주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술이’ יין(야인 3196) 포도주, 술, 잔치, 라는 뜻입니다. 노아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보면 실제로 술에 취해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가 술에 취해있는 것을 말씀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노아는 이미 천년왕국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혼인잔치의 역사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잔치가 일어날 때에는 항상 포도주가 있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함은 이것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술에서 깨어났다고 했는데 מ(멤)이라는 전치사를 넣어 천국의 혼인잔치로부터 깨어나서 함이 자신에게 했던 일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함처럼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주님과의 혼인잔치를 부인하고 시기하며 믿지 않는 것입니다. 노아는 이것이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했기 때문에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부정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싫어하고 자신의 의로만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사도바울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행8:1-3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당하는 것도 외형적인 것만 보고 죽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최고로 하나님을 믿고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가 잘못된 자들이라고 생각하여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끌어다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사울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함과 같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함은 노아의 깊은 영적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달라집니다.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 셈과 야벳과 같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창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노아는 술에서 깨어나 함을 저주하지 않고 가나안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함의 후손들이 저주를 받아 형제의 종들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כנען(케나안 3667) 가나안, 천하게 된,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כנע(카나 3665) 항복하다, 굴복하다, 엎드러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노아의 저주로 가나안은 비천한 민족이 됩니다. 가나안의 후손들은 팔레스틴 지역에서 민족을 형성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노아의 저주를 받았지만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함의 후손인 가나안 족속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까지 팔레스틴을 점령하면서 살고 있었지만 셈의 후손인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쳐들어가 그곳에 살고 있던 함의 후손인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쳤고 이들은 셈의 후손에게 항복하게 되었으며 여호수아 군대와 싸웠지만 하나님은 셈의 후손인 여호수아의 손을 들어줌으로 가나안 족속들은 셈의 후손에게 굴복하여 엎드러지게 된 것입니다. 노아가 저주한 것이 여호수아 때에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비난하고 믿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육적인 모습으로만 보고 비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함과 같은 자들로서 하나님께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서받을 죄가 있고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하나님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 구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 죄에 대하여는 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무엇이며 사망에 이르는 죄는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자 범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원죄가 해결 받은 자들은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들도 완전하지 못함으로 자 범죄를 짓게 됩니다. 이런 죄를 회개할 수 있도록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망에 이르는 죄는 무엇입니까? 원죄에 관한 죄입니다. 이 죄는 아무리 구한다고 해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이 원죄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주권이 있는 죄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구할 주권이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바로 함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함의 후손들이 저주를 받아 멸망받게 된 것입니다.

 

셈과 야벳 같은 자들은 원죄가 해결이 되었지만 자 범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반복적인 회개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함이 노아에게 행했던 일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시기하고 모욕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은 영원한 진노를 받을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도덕적인 죄나 윤리적인 죄도 물론 죄입니다. 이런 죄들은 얼마든지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런 죄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하는 죄는 심각한 죄입니다. 영원한 심판을 받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창9: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노아는 가나안을 저주한 후에 셈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셈에게 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셈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가나안 족속들이 멸망받아 종이 된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셈’ שם(솀 8035) 이름, 명성, 지명하다, 부르다, 라는 뜻입니다. 노아는 이미 셈의 후손에서 구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셈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셈은 다른 형제들보다 이름이 있고 명성을 떨치는 후손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셈을 부르시고 지명하여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시고 다른 형제들보다 더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셈은 종교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영성이 뛰어나며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복을 받았습니다. 셈의 후손에서 3대 종교가 탄생됩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입니다. 그중에 하나님은 기독교를 통하여 구원의 계획을 완성시켰습니다. 이렇게 셈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입니다.

 

창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노아가 야벳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벳을 창대하게 하시고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하시겠다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가나안은 야벳의 종이 되게 하기를 원한다고 노아가 저주하고 있습니다.

 

‘야벳’ יפת(예페트 3315) 야벳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תה(파타 6601) 열다, 넓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야벳은 창대하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많은 지식과 과학과 재물의 부를 받게 되는 후손이 되었습니다. 이런 민족이 흩어져 살게 된 곳이 유럽 민족으로 형성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함의 후손들을 종으로 삼게 되었고 세력을 확장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야벳의 후손들이 셈의 종교적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같은 곳은 기독교 국가로서 셈의 장막에 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유럽 쪽은 가톨릭을 국교로 삼은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셈의 종교를 받아들여 야벳이 장막에 거하게 된 것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의 후손들이 노아에게 왜 저주를 받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거부하고 천국의 삶을 무시했기 때문에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는 보면 실수는 노아가 했는데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 것은 부당한 일로 보여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함은 너무나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를 무시하고 저주하며 비난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선택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함과 같은 자들은 결국 영원한 진노의 심판을 받아 불 못에 떨어질 자들이라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셈과 야벳은 주님을 인정했고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자신의 모든 죄가 씻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삶을 인정하고 주님과 혼인잔치의 삶이 일어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금도 셈과 야벳과 같은 신앙을 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아 이 땅에서도 창대케 되는 복을 받고 신앙의 복을 받아 영육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셈과 야벳처럼 영육으로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아의 포도주 사건”(창9:20-21)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노아의 포도주 사건을 구속사 관점에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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