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가서 2장 주일 설교문 중에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대화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대화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됨으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또한 혼자 기도하면서 주님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우리도 항상 주님과의 은밀한 사랑의 대화를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대화”(아 2:1-2)
♣명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만남을 통해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있다.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도 매일같이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솔로몬이 준비한 연회장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대화를 하고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서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을 서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옆에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와 함께 있을 때에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행복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교회를 나오는데도 억지로 끌려 나오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나의 신랑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기쁨으로 나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서로 있다가 헤어지고 나면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연인의 관계입니다.
이렇게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은 침실에서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아늑한 침실에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과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침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신앙생활이 힘들지 않고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에게 자신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사론의 수선화이며 골짜기의 백합화 같다고 말합니다.
아2: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술람미 여인이 이렇게 사론의 수선화이며 골짜기의 백합화라고 솔로몬에게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사론’ שרון(샤론 8289) 사론,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שר(야샤르 3474) 좋아하다, 정직하다, 솔직하다, 똑바르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론은 평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수넴 지역의 출신으로서 사론 평야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사론평야는 팔레스틴 지역의 서부, 즉 지중해 동부 연안 지역의 욥바에서 북쪽 갈멜산 지역에 이르는 거대한 평원지대를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자신을 비유하면서 사론 평야에 있는 수선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이렇게 사론 평야를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신의 모습은 비록 부족하고 남들에게 내세울 것이 없지만 자신의 마음만큼은 정직하게 솔로몬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현재 솔로몬 주변에는 천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들과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정략적 결혼을 한 것이지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 여인들에게는 사랑의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말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식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술람미 여인은 다릅니다. 정략적인 것도 없고 정치적인 것도 없습니다. 순수하게 솔로몬을 사랑하니 솔로몬의 마음이 술람미 여인을 만나면 편안한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가식적으로 솔로몬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랑이 말하는 데로 신부는 솔직하게 말하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신랑만을 위해 똑바로 따라가는 여인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넓은 평야의 사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신랑 되신 예수님을 대해야 할까요? 술람미 여인처럼 주님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거짓되지 않고 정직하게 신랑을 믿을 때에 신랑 되신 예수님의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매일같이 주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정욕과 유익을 위하여 정략적으로 기도한다면 신랑의 마음이 불편하여 떠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딸들에게서 나와 시골처녀인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구원받은 주의 신부는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솔직하게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수선화요’ חבצלת(하바첼레트 2261) 수선화,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어근 사전에 בצל(바찰) 벗기다, 벗겨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또한 חבץ(하바츠) 밝다, 빛나다, 찬란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수선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요? 자신의 겉모양은 신부로서 볼품이 없는 것 같지만 자신의 속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른 여인들은 겉으로는 화려하여 남자들이 몰려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격이 드러나고 속 사람이 거듭나지 않아 신랑의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술람미 여인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신랑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벗겨서 보면 볼수록 더 매력적이며 속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영적인 냄새가 솔로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알면 알수록 더 진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른 여자들을 수없이 만나보고 사랑을 나누었지만 술람미 여인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신랑을 세워주고 인정해 주고 빛나게 하며 찬란하게 만드는 말들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여인을 솔로몬은 사랑하고 있습니다.
잠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와 같다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시골처녀로서 많은 학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경우에 합당한 말로 신랑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자신은 낮아지고 솔로몬의 마음을 알아주며 왕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높여주는 합당한 말을 하니 솔로몬이 사랑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신부로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까요?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속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신랑이 신부를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져야 합니다. 금방 바닥을 드러내면 싫증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빛나게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신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겉 사람은 날마다 낡아지고 있지만 우리의 속 사람은 주님과 함께하여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의 신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인생을 살아갈 때에 속에서 나오는 인격과 성품들이 드러나서 주님을 높이게 됩니다. 술람미 여인은 항상 자신의 처신을 잘했습니다. 신랑과 자신을 시기하는 자들에게도 처신을 잘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겉은 화려하게 장식되었지만 속은 썩은 냄새가 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수선화 꽃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골짜기의’ עמק(에메크 6010) 골짜기, 평지,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מק(아마크 6009) 깊다, 헤아릴 수 없다, 살펴볼 수 없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다시 골짜기의 백합화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스라엘의 골짜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깊은 골짜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산 하나가 있고 넓은 평지가 있고 난 다음에 산 하나가 있으면 산과 산 사이를 골짜기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하나의 평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람미 여인을 볼 때에 자신들의 생각대로 판단을 합니다. 평지이기 때문에 쉽게 술람미 여인의 마음을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골짜기처럼 깊은 남들이 알 수가 없는 심오한 마음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여인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있습니다. 살펴봐도 절대 알지 못하는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신부를 볼 때 겉으로는 방정맞게 생기고 싹이 없게 보였지만 절대 그렇지 않고 속이 깊어서 부모님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고 신랑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아서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신부가 있습니다. 겉모양으로 아무리 관찰하여 판단하여도 그 속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여인입니다. 이런 여인이 바로 술람미 여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나를 볼 때에 그 속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중심을 보고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신앙도 깊이가 있어서 연륜이 쌓일수록 도저히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품행이 방정하고 영적으로도 성숙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말 한마디를 해도 소망과 비전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대하20:26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또한 골짜기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술람미 여인은 자신은 솔로몬을 만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브라가 골짜기는 ‘축복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골짜기라는 단어가 עמק(에메크)입니다. 신부인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만나지 않았다면 시골에서 별 볼일 없이 끝날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자신을 찾아와 인생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골짜기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솔로몬이라는 축복이 자신에게 찾아와 복을 얻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솔로몬 밖에 없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골짜기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찾아주는 사람이 없이 살았던 인생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어느 날 나를 찾아오셔서 선택하여 주시고 만나주시고 사랑한다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신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백합화로다’ שושן(슈샨 7799) 백합화,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וש(수스 7797)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기뻐 날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들에 피는 백합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인위적으로 자라난 꽃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들판에서 누구의 보호함도 없이 자랐지만 더 아름답고 향기가 짙은 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환란 풍파를 겪고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이런 꽃의 향기를 맡고 솔로몬 왕이 자신을 찾아와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기쁜 존재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찾아주지 않았는데 자신을 찾아와 주셨는데 어떻게 신랑에게 기쁨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신랑을 만나고 기뻐 뛰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현재 술람미 여인과 같은 고백을 예수님께 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온갖 풍파로 고통을 당할 때에 사람들은 외면했지만 우리 주님은 나를 찾아오셔서 신부로 삼아주셨습니다. 술람미 여인처럼 기뻐 날뛰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신랑 되신 주님 한분만으로 우리는 만족하고 있습니까? 이제 내가 주님을 만났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신랑은 아무나 찾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비유적으로 신랑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화답을 하고 있습니다.
아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솔로몬이 다정한 말로 술람미 여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자들 중에 내가 사랑하는 자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와 같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말이며 하찮은 인생을 최고로 끌어올려주는 말입니다.
‘가시나무’ חוח(호아흐 2336) 가시나무, 쇠사슬, 갈고리, 코뚜레,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현재 솔로몬의 주변에는 많은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가시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솔로몬의 마음을 찌르고 정치적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솔로몬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쇠사슬과 같은 말로 솔로몬의 마음을 붙잡고 소를 주인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코를 뚫는 것처럼 솔로몬을 소의 코를 뚫듯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여인들의 농간에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에 술람미와 같은 여인들이 많았다면 솔로몬의 말년은 비참하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술람미 여인은 신랑의 마음을 편안하게 말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치와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신랑을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랑과 만났을 때는 제일 기뻐해 주고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니 솔로몬이 신이 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사랑의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신부들 중에 네가 제일 예쁘며 백합화와 같다고 인정해 줄 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만날 때에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만나면서 신랑을 최고로 높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신랑 되시는 예수님만을 높이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내 안에서 오래 머물러 계실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우상을 섬기고 신랑을 무시한다면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나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신랑을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면 이제부터는 오직 신랑만 바라보는 신앙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많은 가시나무 중에 백합화와 같다는 찬사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부인 나를 선택하셔서 사랑하신 것은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세상의 척박한 땅에 홀로 핀 백합화를 잊지 않고 기억하셔서 나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러니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날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신랑은 나를 신부로 맞이하여 인정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신부의 거룩한 삶을 살면서 신랑과 영적 교제가 끊어지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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