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브라함의 족보 중에서 높임을 받은 아브라함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마태복음 족보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나오는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구속사에 꼭 필요한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도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서 천국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 אברהם(아브라함 85) 아버지는 높임 받으신다
♣ 명제 : 아브라함은 선택받은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 목적 : 구원받은 백성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높여야 한다.
마1:1-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마태복음을 처음 여는 장은 족보입니다. 족보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적통의 육적과 영적인 자손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려고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구원할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태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아버지인 구속사의 시작인 사람이고 다윗은 적통인 왕으로서의 시작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 후손으로 오신 이가 바로 너희들이 기다리고 있는 구원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족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출발점이 되는 사람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찾아야 합니다. 성경은 아담의 족보를 통하여 노아까지 구속사의 맥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홍수 심판 이후에 노아의 아들 셈을 통하여 아브라함까지 구속의 맥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때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어지는 민족의 조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한 개인의 하나님이 아닌 민족의 하나님으로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찾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의 예표입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숭배지에서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 땅은 나중에 아브람의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 됩니다.
‘네게 보여 줄’ ראה(라아 7200 동사, 히필,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남성, 2인칭, 단수) 보다, 준비하다, 지시하다, 드러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가나안 땅을 가라고 지시하시고 있습니다. 이 땅은 나중에 아브람의 후손들에게 주시기로 준비되어 있는 땅입니다. 현재 아브람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아브람 스스로 볼 수 없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드러내어 보여주셔야만 볼 수 있는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람을 불러내시고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고 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히필형을 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땅에 도착할 때까지 인도하시고 함께 가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계속하여 함께 하시고 먼 미래에 자신의 후손들에게까지 이 땅을 주시기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브람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까지 계속해서 인도해 나가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으로 보냄을 받아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예수님의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무 죄가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죄를 짊어지도록 보냄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맞으며’는 נכה(나카 5221 동사, 호팔, 분사수동, 남성, 단수, 연계형) 맞아 죽다, 찔러 넣다, 쳐 죽이다, 라는 뜻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채찍에 맞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양손과 발에 대못이 찔리게 하시고 옆구리에 창을 찔러 넣게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나를 위해 대신 지명을 받아 고난당하실 것이 예정되셨던 것입니다. 호팔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대신 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을 당한다’는 ענה(아나 6031 동사, 푸알, 분사수동) 고난당하다, 괴로워하다, 학대받다, 벌 받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 의해 고난을 당하시고 고통스럽게 십자가의 형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고난을 당하시면서 뜨거운 태양 아래 물 한 모금 드시지 못하시고 괴로워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원자로 오셔서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 오셨는데 이 양들에게 학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럽도록 주님은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푸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참지 못할 정도의 극한의 고통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고통을 주님께서 감내하신 것은 바로 나의 죄를 가져가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고통을 주님이 받지 않으면 절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통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하여짐으로 죄인들을 죄에서 끌어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끌어내어 죄악 가운데 있었던 인생들을 이스라엘의 선민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17:1-5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람이 99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고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하시면서 언약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브람의 삶은 예수님의 사생애를 예표하고 있고 아브라함의 삶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אברם(아브람 87) 고귀한 아버지,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는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귀한 아버지로서 한 가장의 사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지역은 족장의 시대이기 때문에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고 가정을 잘 치리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생각하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아브람도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리고 자녀의 아버지로서 고귀한 자가 되면 됩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생애기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막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신 것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요셉의 직업을 두고 말하면서 목수의 아들이라고 칭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이어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한 가정의 아들로서 살았던 것입니다. 목수의 아들로 살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난 후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시기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로서 살았던 한 가정의 목수의 아들로 살았던 기간을 의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אברהם(아브라함 85) 무리의 아버지, 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의 삶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삶이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고쳐주시는 것은 한 민족의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름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며 인격과 환경, 정체성이 묻어 나오는 것이 이름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주시고 있는 것은 이제부터 너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민족의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신 이름처럼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요셉의 목수의 아들로 끝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마3:13-17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사생애의 삶을 마감하시고 공생애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사시는 때가 언제입니까?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난 후에 예수님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난 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렸으며 하늘로부터 음성이 나오는데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때가 아브라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꾸어주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요셉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탄생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공생애의 3년을 살아가시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영적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생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몸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시고 육신의 몸은 죽고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났다는 표시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우리에게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우리도 사생애의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은 죄악 된 몸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부모의 몸을 통하여 이 땅에 나온 것입니다. 이 몸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몸으로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공생애의 기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았을 때입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하늘로부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거듭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난 자들은 공생애의 기간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자들은 사생애의 삶으로 인생이 마감되어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사생애의 기간은 주님과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공생애의 삶을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자녀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믿음으로 구원을 허락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율법이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들도 사생애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공생애의 삶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더 이상 주저하지 마십시오. 하늘로부터 거듭나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두려워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생애 기간에 있는 자들은 어둠에 있는 자들입니다. 빛 가운데로 나오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공생애 기간으로 나온 자들은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온 자들입니다. 이제 빛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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