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아가서 2장 주일설교]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찾아온 솔로몬을 회상”(아 2:8-9)

체데크 2021. 1. 2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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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가서 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찾아온 솔로몬을 회상하는 말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속사 관점에서 주님과 나와의 사랑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술람미 여인처럼 나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회상하면서 나의 첫사랑을 지켜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찾아온 솔로몬을 회상”(아 2:8-9)

 

명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를 회상하고 있다.

목적: 그리스도의 신부들도 주님의 첫사랑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수넴의 시골처녀를 왕이 직접 찾아왔다는 것에 감사하여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합니다.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과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첫 만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첫 사랑을 잊는 순간 주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신 것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습니까?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주님께서는 신부인 에베소 교회에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복음의 말씀을 주셨는데 온전히 믿지 못하고 복음을 버리고 난 후에 세상의 우상들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타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도 주님과의 첫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이 찾아와서 자신을 만나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잊을 수가 없고 신랑의 첫 대면을 가슴 벅차 하면서 회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구원받은 주님의 신부로서 신랑과 만났던 그 기억을 계속해서 잊지 않고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의 신앙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2: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의 첫 대면을 어떻게 회상하고 있습니까?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라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이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자신에게 오고 있구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소리로구나קול(6963) 음성, 소문, 말씀, 이라는 뜻입니다. 성경 원문에는 목소리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하나님은 먼저 신랑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앞에 넣은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신랑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지혜가 출중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인물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에 흠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 신앙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복음 말씀을 들을 때에 신랑의 음성을 듣고 신부인 내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겉모습은 양의 탈을 썼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랑의 음성은 변조시킬 수가 없습니다.

 

요10:3-5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문지기는 양을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합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 우리에서 양을 방목하면서 목자가 앞서 가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목자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따라가지 않고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랑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음성을 먼저 듣고 자신의 신랑인 줄 알아차린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의 신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고 확실하게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린 석은 신앙입니다. 내 눈으로 보는 것은 얼마든지 변장하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은 변조시킬 수가 없습니다. 말씀은 변함이 없고 십자가의 피 흘림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산에서הר(하르 2022) , 산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הרר(하라르 2042) 흐릿하게 보이다, 생각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처음 대면하여 볼 때에 산에서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만나러 오기 위하여 열심히 신랑이 달려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의 개념에 산은 구원과 연관이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멀리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이 나에게 가까이 왔을 때에 구원의 역사가 흐릿하게 보이지 않고 깨끗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구원의 확신이 나타나지 않다가 솔로몬 신랑이 가까이 오니 정확하게 구원의 확신이 신부에게 들어오게 되고 이 분이 바로 내가 찾고 있었던 신랑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은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에서 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 신랑이 나를 찾아와 확실하게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멀리에서 쳐다만 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대면하여 보아야 합니다.

 

고전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현재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으로는 절대 신랑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랑이 가까이 오니 그때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확실한 신랑의 얼굴을 보니 기뻐지는 것입니다. 이때에 신랑에 대하여 완전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볼 때에 멀리에서 팔짱만 끼고 있으면 정확하게 신랑을 볼 수가 없습니다. 멀리 산에서 달리는 모습만 보고 있으면 구원의 확신이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가까이 와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볼 때에 구원의 확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랑이 나를 찾아왔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감사하면서 회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달리고דלג(달라그 180) 뛰어오르다, 도약하다, 라는 뜻입니다. 현재 술람미 여인을 만나러 오는 솔로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눈에 비친 솔로몬은 신부를 만나러 오기 위하여 산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부를 만나러 오는 솔로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산을 한 걸음에 도약하여 뛰어오르듯이 보고 싶은 급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시가 급하여 열심히 쉬지 않고 술람미 여인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직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모든 정신이 술람미 여인에게 있기 때문에 쉴 틈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술람미 여인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우리들에게 달려오고 계시는 주님을 회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얼굴을 대면하여 보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마음과 같은 그런 마음으로 신부인 나를 만나기 위하여 오시는데 산이라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신랑의 입장에서는 문제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하는 신부를 만나러 가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제일 먼저 선택받은 신부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큰 권능으로 찾아오실 것입니다.

 

작은 산을גבעה(기브아 1389) 낮은 산, 언덕,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어근을 보면 גבע(가바) 높다, 라는 뜻의 어근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보는 신랑의 모습은 작은 산을 뛰어넘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이 신부를 만나러 오는데 높은 장벽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만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나를 찾아오시는데 이런 산과 같은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랑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찾으러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빨리 넘어קפץ(카파츠 7092) 움켜쥐다, 봉하다,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온다는 것은 신부인 술람미 여인을 만나러 가는 것인데 이것은 지금까지 혼자 남겨두었던 신부를 빨리 자신의 소유로 삼아 손에 움켜쥐듯이 절대 놓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한 번 선택한 신부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마음먹고 한시가 급하게 산을 넘어 술람미 여인에게 뛰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됩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인 쳐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신부인 나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절대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신랑이 직접 신부를 선택하여 인 쳐주셨기 때문에 인봉을 신랑이 떼기까지는 절대 어느 누구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 구원받은 주님의 신부는 생명 책에 이름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말씀하시면서 자신들 스스로는 살았다고 하나 결국은 죽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데 교회에서도 흰 옷을 입고 구원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생명 책에 이름이 올라간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의 이름은 결코 지우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신부인 나에게 빨리 달려와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성령으로 인 쳐주시는 것입니다.

 

아2: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회상하는데 신랑을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벽 뒤에서 창틈으로 신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부가 신랑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하는 모습을 엿보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루와도צבי(체비 6643) 노루, 영광, 영화로운,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צבה(차바 6638) 부풀어 오르다, 팽창하다, 싸우러 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눈에 비친 솔로몬의 모습은 자신을 구원해 주시고 영광을 받을 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를 위해 언제든지 싸우러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며 신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벅차 터질 것만 같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나를 위해 사탄과 맞서 싸우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십자가에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로부터 많은 영광을 받으시고 영원토록 존귀한 자로 신부에게 남는 것입니다.

 

계5: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신부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든 저주와 죄를 끊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주시고 영원히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어린 사슴과도עפר(오페르 6082) 어린 수사슴,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פר(아파르 6080) 먼지를 날리다, 티끌을 날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어린 사슴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신랑이 신부를 위하여 헌신할 것을 의미합니다. 왕이면서도 천한 시골 처녀를 위해 자신이 헌신하여 찾아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이 어떻게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골까지 찾아와 만나주겠습니까? 이렇게 만나러 왔다는 사실 자체가 헌신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나의 신랑이 되어주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헌신하여 죽으시고 신부를 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우시고 먼지가 되어 모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신부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더 이상 죽음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랑이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고후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 약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티끌이 되어 먼지가 되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되셔서 신부인 우리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벽 뒤에서כתל(코텔 3796) ,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 속에는 촘촘히 결합시키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신부를 찾아와서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벽 뒤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신부와 하나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부를 보고 있는 솔로몬의 마음이 얼마나 설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신부로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부가 준비하는 모습을 신랑 되신 예수님이 보시고 흡족해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과 연합되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주님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창살 틈으로’ חרך(헤레크 2762) 창살, 그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רך(하라크 2760) 불태우다, 구워서 만들다, 사냥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천한 술람미 여인의 모습을 창살 틈으로 엿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자신의 신부로 맞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술람미 여인이 신부로서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뜨거운 불 속에 생고기가 들어가면 구워져 알맞게 익혀지는 것처럼 현재 솔로몬이 볼 때에 술람미 여인의 영육이 준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솔로몬은 포수가 자신이 원하는 동물을 잡듯이 그 많은 여자들을 포기하더라도 술람미 여인만큼은 포기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사냥하듯이 취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주님의 신부로서 그물 속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에 신랑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제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불타오르고 있기에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우리의 신앙을 엿보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도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신부인 내가 주님을 기다리면서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시고 있습니다. 주님의 그물 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쉼이 있는 것입니다.

 

엿보는구나צוץ(추츠 6692) 빛나다, 융성하다, 꽃이 피다,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창살 틈을 통하여 자신의 신부를 보니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나보았지만 이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온전하게 성장하여 꽃이 피는 것처럼 최고의 절정에 올라온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엿보면서 느낀 감정입니다.

 

이것은 신부로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결혼할 적령기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현재도 이렇게 말씀으로 영육이 빛이 나고 매일같이 성장하여 융성하게 되어야 합니다.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데 부족하면 안 됩니다. 부족한 면이 있다면 고치고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꽃이 만발할 때에 가장 예쁜 것처럼 최고의 절정의 신부로서 준비가 끝마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나를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잘하는지 신부의 삶을 잘 살고 있는지 엿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부가 신랑의 눈을 의식한다면 함부로 인생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빛나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인격과 성품이 모나지 않고 신랑을 높이면서 사는 인생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매일같이 신랑을 만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신랑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준비하고 있었더니 때가 되매 솔로몬이 시골로 직접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에 우리들도 매일 같이 주님이 나에게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신부로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을 가꾸고 준비해야 합니다. 구원받았다고 안일한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겉 사람과 속 사람이 변화되어 재림하실 신랑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처음에 만났던 솔로몬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기뻐하고 가슴 벅차 하고 있습니다. 신랑의 모습이 술람미 여인에게는 너무 좋아 보였던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신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주님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가서 2장 주일 설교문]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을 향한 애끓는 연민의 고백”(아 2:3-7)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가서 2장 주일 설교문 중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을 향한 애끓는 연민의 고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을 향한 애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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