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막 언약궤 하나님 말씀 중에서 성막의 언약궤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막의 언약궤는 하나님을 만나던 장소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속죄소 위에 뿌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던 곳입니다. 또한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의 말씀이 있었던 곳입니다. 우리는 언약궤와 같은 것이 바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피 흘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막의 언약궤를 통해서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막의 언약궤”(출 25:10-22)
♣명제: 성막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던 상자이다.
♣목적: 구원받은 자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어야 한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성소는 거룩한 장소이고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를 말합니다. 언약궤가 있는 곳이 지성소입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것이 바로 휘장입니다. 휘장 안은 지성소이고 밖은 성소입니다.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지성소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합니다. 교회에 들어온 자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 언약궤 앞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서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길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오늘은 지성소에 있는 법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법궤의 뚜껑 시은 좌에서 하나님이 만나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법궤의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만들 때에 정확한 수치를 정해 주셨습니다. 법궤는 인간의 생각대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로 정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출 25: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법궤를 만들 때에 조각 목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법궤의 길이는 가로125Cm, 세로 75Cm, 높이 75Cm의 크기로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치수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장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만든 법궤에서 만나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 25: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이렇게 만든 궤를 순금으로 싸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안과 밖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라고 했습니다.
‘싸되’ צפה(차파 6823) 씌우다, 입히다, 도금하다, 꾸미다, 라는 뜻입니다. 법궤를 순금으로 도금하여 씌우라고 하나님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조각 목 자체로는 아름답지 못합니다. 투박하며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며 영광스러운 분이 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조각 목 자체로는 영광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순금을 입혀 꾸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각 목은 예수님의 인성을 의미하고 순금은 신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인간의 육체가 달리셔서 죽으셨지만 3일 만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금으로 조각 목을 싸는데 나무가 하나도 보이지 않도록 싸라고 하셨습니다. 순금으로 나무를 모두 덮었기 때문에 밖에서는 절대 나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조각 목을 싼 정금은 다시 덧입히지 않을 정도로 완전하게 쌌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통해 모두 덮였습니다. 다시는 고난당하지 않으시고 영광의 주로 오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출 25:12-15)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법궤는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개의 발에 달라고 했습니다. 고리에 조각 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이 채를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채는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고리를 달며’ נתן(나탄 5414) 감동시키다, 달다, 허락하다, 베풀다, 동침하다, 라는 뜻입니다. 고리를 법궤의 발에 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리는 채를 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리가 없으면 법궤를 이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고리를 만들어 법궤에 달면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하여 기뻐하고 저주가 사라지며 속죄소 위에 두 그룹 사이에서 만나 주시고 구원을 허락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것은 신랑이 신부를 만나주는 것처럼 인간을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이 법궤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동해야 합니다. 고리를 달았는데 고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확실하게 붙여 놓아야 합니다. 중간에 고리가 떨어지면 법궤를 이동할 수 없습니다. 단단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메게 하며’ נשא(나사 5375) 용서하다, 교만하다, 빼앗다, 기쁘게 하다, 사함을 얻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만들고 메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약에 이 법궤를 메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이며 죄 사함을 얻지 못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법궤를 메게 된다면 지금까지 약속했던 모든 복들을 모두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만하여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법궤를 메라고 명령하신 것은 인간들을 위해서 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법궤를 함부로 취급하지 말고 항상 어깨에 함께 있으라는 것입니다.
(수 3: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벌하러 갈 때에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법궤를 어깨에 메고 요단강에 들어갔을 때에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언약궤는 항상 어깨에 메어야 합니다.
(삼하 6:6-7)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웃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법대로 법궤를 나르지 않고 교만하여 수레에 싣고 언약궤를 이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웃사의 잘못으로 인하여 즉시 진노하여 죽였습니다. 이것을 볼 때 언약궤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것을 보고 다윗이 놀랬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자신이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가지고 오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법궤가 오벧에돔에 집에 석 달 있게 되고 하나님은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은 자신이 있는 성으로 가지고 오게 됩니다.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 율법의 말씀은 사람이 항상 메고 있어야 할 짐을 상징합니다.
(출 25: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언약궤 속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증거 판을 두라고 했습니다. 이 증거 판은 하나님께서 직접주신 판입니다.
‘증거판’ עדות(에두트 5715) 법도, 율법,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וד(우드 5749) 반복하다, 경고하다, 권면하다, 명령하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언약궤 속에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율법을 넣으라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에 인간들에게 말씀으로 명령하여 올바른 길로 가라고 권면하시고 잘못된 인생을 살면 율법의 말씀을 통해 경고하셔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이렇게 인간들에게 반복적으로 말씀을 통해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임재 속에는 말씀도 함께 동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 25: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는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길이는 175Cm, 너비는 75Cm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속죄소’ כפרת(카포레트 3727) 뚜껑, 덮개,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כפר(카파르 3722) 용서하다, 속죄하게 하다, 진정시키다, 면제해주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속죄소는 법궤 뚜껑입니다. 이 뚜껑은 피를 뿌리는 곳입니다. 피가 뿌려짐으로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대 속죄일에 1년에 한 번 7월 10일에 대제사장이 속죄소에 나가 피를 뿌려 민족의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이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1년 동안의 죄가 속죄받는 날입니다. 법궤 뚜껑에 피가 뿌려짐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분노에서 화해로 바뀌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면제해 주고 용서하셔서 속죄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자신이 직접 죽으심으로 인해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이 피를 통해 믿는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용서가 있으며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속죄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은 자들은 언제든지 율법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항상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죄가 있을 때는 속죄소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속죄를 받지 않았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얼마든지 담대하게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속죄소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 속죄소 위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만나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고’ יעד(야아드 3259) 정하다, 시집가다, 장가가다, 뜻이 같다, 정해진 시간에 함께 오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속죄소에서 만나주신다고 했는데 이 만남은 이미 정해진 만남이며 신부와 신랑이 만나서 결혼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어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 약속하고 함께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해진 약속의 시간을 알지 못하면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장소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신부에게는 권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이 만남은 아무도 모르고 오직 신랑과 신부만 아는 은밀한 만남이며 정해진 약속 시간에 1:1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에 나가서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이 약속된 장소에 나가서 신랑을 기다리고 있으면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고 싶어도 하나님이 오시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에 만날 수 있는 만남입니다.
속죄소에서 구름기둥이 올라왔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바뀌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은혜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성도는 은혜의 구름기둥 아래서 살아가게 됩니다. 구름기둥이 보호해 줄 때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광야에는 불 뱀과 전갈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름기둥 아래에서는 절대 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원망 불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의 구름기둥을 잠시 거두었을 때에 불 뱀에 물리게 된 것입니다.
법궤 앞에 나가는 신앙은 중요합니다. 이곳에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휘장을 통과해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속죄받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가게 됩니다. 이제 은혜의 보좌 앞에서 항상 하나님을 만나 결혼하는 신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영적 신부입니다. 신랑을 만나야 기쁨이 있고 즐겁습니다. 성막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으로 원하시는 분은 체데크바이블칼리지체데크서점에 가시면 됩니다. 이 시간 법궤 앞에서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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