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막 하나님 말씀 중에서 법궤 안에 만나 항아리의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주셨던 양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을 상징합니다. 만나를 담아두었던 항아리를 법궤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영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찌기 위해서는 복음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법궤 안에 만나 항아리(출 16:31-36)
♣명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늘에서 내렸던 음식이 만나이다.
♣목적: 성도들은 하늘에서 내린 영적인 만나인 복음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노예의 삶에서 건져내어 주시고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왔던 음식들을 모두 먹고 더 이상 먹을 양식을 없을 때에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40년 동안 만나를 광야에서 내려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만나는 성도들이 먹어야 할 영의 양식인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먹지 않으면 굶어주게 됩니다. 이 시간 만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 16: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만나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주식으로 먹었던 양식입니다. 만나가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만나’ מן(만 4478) 달콤한 맛있는 과자, 라는 뜻입니다. 만나는 달콤한 과자와 같은 것입니다. 희고 달콤한 과자 같은 맛이 납니다. 바로 만나는 신령한 음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먹어야 할 음식인 것입니다.
(고전 10: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같이 신령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광야는 바로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들어온 자들은 모두가 신령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이것이 만나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반드시 예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신령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영적으로 굶주리게 되어 있습니다.
(출 16:32)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만나를 오멜에 채워서 대대로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주신 양식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명령하시기를’ צוה(차바 6680) 명하다, 허락하다, 말씀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셨는데 후손들을 위해 만나를 잘 간수하라는 것입니다. 후대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교육시키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생명을 주시고 살리시기로 허락하신 것들을 깨닫고 배워서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우리도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역사적인 유품들을 자손들에게 남겨 하나님을 기억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온 마음을 다해 명령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번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도록 반드시 만나를 보존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1세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후손 대대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죽이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보살펴 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출 16:34)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만나는 항상 증거 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습니다. 증거 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이 적혀 있는 판입니다. 항상 율법의 말씀 앞에 만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두어’ ינח(야나흐 3240) 쉬다, 휴식하다, 정착하다, 라는 뜻입니다. 증거 판 앞에 있는 만나를 통하여 쉬게 되는데 증거 판은 율법을 말씀하고 만나는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영혼이 쉼을 얻게 되며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정착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증거 판의 율법으로는 절대 영원한 쉼은 없습니다. 구원의 은총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물어 죽음을 가져오지만 복음은 생명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 만나를 증거 판 앞에 두었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마자 즉시로 갖다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손들을 위해 역사적으로 교훈하기 위해 증거 판 앞에 만나를 담아서 갖다 놓은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모두가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생명이 살아날 수 있도록 율법 앞에 복음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받는 곳에 만나 항아리가 있습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죽음이지만 복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은 율법을 준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과 복음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6:31-33)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광야에 내렸던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참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내려온 떡이라는 것입니다.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주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요 6:48-51)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계속 주림이 생기고 이 만나를 먹었어도 죽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영원히 죽지 않고 굶주림도 없는 떡입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주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로 복음을 먹는 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제 예수님의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이 복음의 떡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됩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육을 살리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영을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으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영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이 사건을 믿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는 아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허락된 자들만 먹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만나는 법궤 안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법궤까지 나가야 합니다. 성소를 지나 휘장을 통과하여 지성소의 법궤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통과하여 들어간 자들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으면 법궤 앞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신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인 2세들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은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백성들을 낮추고 시험하여 결국에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먹는 자들은 마침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만나를 먹는 자들은 십자가의 구속의 체험을 한 자들이 복음의 만나를 먹을 수가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ענה(아나 6031) 겸비하다, 괴로움 받다, 복종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2세대들에게 광야에서 괴로움을 주고 고통스럽게 한 이유는 자신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불평함으로 모두 죽게 되었으므로 자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신 것은 혹독한 훈련의 과정입니다. 이 훈련을 통과하지 않으면 광야생활을 정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힘들게 겸손의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광야생활에서 고된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불평하여 하나님께 진노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를 시험하사’ נסה(나사 5254) 시험하다, 유혹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시험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과 밤에는 추운 날씨로 인해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또한 불 뱀과 전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들짐승들의 위협도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으면 모두 죽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험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모든 것이 쉬운 것처럼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시험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이 시험을 받음으로 강대한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방 민족들과 싸워야 합니다. 나태해서는 절대 이들과 싸워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강한 시험을 통해 훈련하고 단련시키시는 것입니다. 이 훈련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시키는 훈련입니다.
이렇게 훈련과 혹독한 고난이 있었던 것은 마침내 복을 받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광야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먹었던 것이 만나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고 인생의 고난이 나에게 찾아온다고 해도 마침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복음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도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 만나는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과 믿음의 훈련을 통해 승리하면 감추었던 만나를 하나님께서 주시게 됩니다. 이기는 자는 감추어진 만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가 받는 것이 바로 복음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영원한 진리 되시며 만나 되시는 주님과 함께 하여 복음이 끊어지지 않고 항상 함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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