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사도행전 5장 설교말씀]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행 5:33-42)

체데크 2020. 10. 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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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5장 설교말씀 중에서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행 5:33-42)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세상에 나가 복음 전파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에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니 유대인들로부터 시기를 받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마음에 시기가 충만하여 사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천사를 통해서 감옥에서 빼내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계속해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퍼져가면 갈수록 율법주의자들은 더 시기를 내기 시작했고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초대교회와 같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게 합니다. 교회의 기득권자들도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싫어합니다. 레마의 복음은 바라의 생명을 살리게 됩니다. 로고스의 말씀은 야차르의 생명을 살려 기복적인 신앙에 빠지게 합니다. 하늘에 대한 소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소망을 주게 됩니다. 레마의 복음은 다릅니다. 바라의 속사람을 변화시켜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갖게 만듭니다. 내가 구원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졌으니 세상 사람들이 야차르의 겉 사람만 보고 판단하여 없다고 무시해도 내 마음은 기뻐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내 안에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가졌다는 것에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보다 못한 야차르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게는 십자가 복음이 있으니 그들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교회의 기득권자들이나 세상의 권력자들 앞에서 기죽을 일이 없습니다. 재물이 부족하다고 배운 것이 없다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마음이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안에 바라의 생명을 살리는 십자가 복음이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 앞에서 당당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5:33-34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유대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니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화가 났습니다. 그들이 노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바리새인 중에 가말리엘인 존경받는 랍비가 공회 중에 일어나 말합니다. 사도들은 잠깐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크게 노하여διαπριω(디아프리오 1282 동사, 직설법, 미완료, 수동태, 복수, 3인칭) 화나다, 조각조각 톱질하다라는 뜻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듣고 분노를 냅니다. 이 분노는 사도들을 골수까지 찔러 톱으로 조각낼 정도의 죽음까지 몰고 가고 싶을 정도의 분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십자가 복음을 들으면 속에서 분노가 표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직설법은 실제로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의 마음에 사도들을 톱으로 켜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미완료 시제는 사도들을 죽이지 않으면 이 분노가 절대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수동태는 자신들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고 복음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분노는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가르치면 행위 주의자들은 마음에 분노를 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야 하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파하니 분노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주의자들의 마음에 분노가 수동태로 일어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가르치고 구원을 선포하여 행위로는 절대 구원이 없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복음 만이 바라의 속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5:35-37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가말리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 드다라는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드다라는 인물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구스피우스 파디우스 총독 때의 거짓 메시아로서 많은 사람을 미혹했던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을 요단강으로 인도하여 강을 갈라서 건너가게 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구스피우스 총독이 붙잡아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그 이후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흩어졌습니다. 그 후에 호적할 때 갈릴리의 유다라는 거짓 메시아가 일어나 백성들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도 멸망함으로 따르던 모든 사람이 흩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현재 사도들이 전파하는 복음이 거짓이면 스스로 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조심하라προσεχω(프로세코 4337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복수, 2인칭) 주의하다, 전념하다라는 뜻입니다. 가말리엘은 유대인들에게 명령합니다. 사도들을 죽이려고 마음에 품은 뜻을 함부로 행동에 옮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여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너희들이 해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현재 시제는 가말리엘이 볼 때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의 행동이 너무나 거칠기 때문에 지금 경거망동하게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경고를 주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함부로 분노를 내거나 행동에 옮기면 안 됩니다.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이것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면 내가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다와 유다와 같은 거짓 메시아는 결국에는 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마지막에는 멸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5:38-39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사상과 복음을 전하는 행동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고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면 너희들이 무너뜨릴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의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관하지 말고αφιστημι(아피스테미 868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복수, 2인칭) 떠나다, 물러가다, 유혹하다라는 뜻입니다. 가말리엘은 유대인들에게 사도들의 일을 상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의 일에서 떠나서 물러가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없애고 율법을 강요하여 그들을 유혹시키지 말라고 가말리엘은 명령법을 사용하여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 시제는 가말리엘이 말하고 있는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드시 전파할 수밖에 없으니 그들의 일에 관여하여 해를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가말리엘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아닙니다. 바울의 스승으로서 유대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율법 선생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하는 행동과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보니 거짓 메시아인 드다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에게 사도들을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결국은 멸망당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할 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 복음은 인간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멸망하지만 십자가 복음은 주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반드시 흥왕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가졌으면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전하지 않으면 해가 나에게 올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대적하여 싸우면 하나님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과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여 속사람인 바라의 신령한 몸을 살려야 합니다. 내가 받은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5: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유대인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수긍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을 불러서 죽이지는 않고 채찍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놓아주었습니다. 사도들은 생명은 건졌지만 예수님처럼 채찍에 맞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 보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손해를 보아야 하고 억울함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명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복음을 버릴 수 없습니다. 복음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들은 풀려나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은 것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 ‘능욕받는 일에ατιμαζω(아티마조 818 동사, 부정사, 과거, 수동태) 모욕하다, 창피를주다라는 뜻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자신들이 창피를 당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당하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공회 앞에서도 자신들은 모욕을 당했습니다. 채찍에 맞고 복음을 전하거나 가르치지 못하도록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부정사는 자신들이 어디에 가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누구에게나 능욕을 받을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시제는 사도들은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로서 능욕받을 일도 이미 계획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동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능욕을 피하려고 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나도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창피를 당하고 모욕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을 나는 기뻐해야 합니다. 비록 야차르는 부족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풍족하게 누리지는 못할지언정 나는 주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만족하고 바라의 영적인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καταξιοω(카탘시오오 2661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3인칭) 가치 있다고 보다, 합당하다고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수모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모르고 구원받지 못하면서 사는 인생보다 더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은 주님을 위해서 당하는 능욕은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설법은 주님이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나도 당연히 주님을 위해서 능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시제는 내가 능욕받는 것은 이미 내가 만세전에 구원받았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수동태는 내가 능욕 받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손해를 당하고 눈치를 보고 욕을 먹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 때문에 내가 수모를 당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야차르의 육체의 힘과 능력과 권세가 부족해도 바라의 신령한 몸에는 주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참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나는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잠시 고난 받는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원한 세상에서는 큰 영광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능욕을 받는 일에 기뻐하면서 율법주의자들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것을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치지παυω(파우오 3973 동사, 직설법, 미완료, 중간태, 복수, 3인칭) 제지하다, 해방하다, 그치다라는 뜻입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데 열정을 내고 있습니다. 원죄에 갇힌 자들을 해방시켜 주고 거짓된 복음에 빠지지 않도록 제지하여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을 그치라는 말에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은 사도들이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공회에서 나와 실제로 복음을 가르쳤다는 의미입니다. 미완료 시제는 사도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간태는 사도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여 유대교에 있는 자들을 그리스도교로 돌아서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원어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따르는 것을 망설이면 안 됩니다. 원어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복음은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어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확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가르치게 됩니다. 사도들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것처럼 나도 원어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는데 쉬지 말아야 합니다. 원어 복음 때문에 능욕을 받고 무시를 당해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원어 복음은 바라의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세상에 나가 원어 복음을 외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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