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3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라리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계 3:7-13)
♣명제: 복음으로 승리하는 자가 성전의 기둥이 될 수 있다.
♣목적: 나의 신앙은 성전에 기둥이 될 만한 신앙인가 점검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6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의 뜻은 형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을 들었던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와 같이 능력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지켰던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사데 동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사도들이 사역하던 당시 빌라델비아 도시의 전체 인구는 약 1000명 정도였습니다. 이곳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농업과 목양하는 농민들이 사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도 다른 도시처럼 우상을 섬기던 도시입니다. 주민들이 섬기던 신은 디오니소스 신을 섬겼는데 이 신은 술의 신입니다.
농민들은 디오니소스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포도주를 마시며 춤을 추고 향락을 즐겼습니다. 빌라델비아의 유명한 농산물은 포도입니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1세기 당시 빌라델비아는 사데, 버가모, 트로이를 거처 로마로 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대 전승에 의하면 바울이 그의 친척 누기오를 빌라델비아 교회의 첫 번째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롬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사도 헌법에서는 이 도시의 첫 번째 교회 감독은 요한이 임명한 데메트리우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 칭찬을 들었던 교회입니다. 책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붙잡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묵묵히 주님을 따라가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영적으로는 풍성한 삶을 누렸던 교회입니다.
그럼 나의 신앙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복음을 사수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욕심에 빠져 사는 인생은 안 됩니다. 영혼을 살찌우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영적으로 풍성해질 수 없습니다. 결국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와 사데 교회가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빌라델비아의 어떤 신앙을 본받아야 하는지를 주님의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시면서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룩한’ קדש(카다쉬 6942) 거룩하다, 성별 하다, 봉헌하다, 라는 뜻입니다. ‘카다쉬’의 의미는 진리 되시는 예수님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와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올바르게 진리를 바라보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진리를 허락해 주셨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런 분이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진리 안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지 않으면 절대 거룩한 자가 아닙니다.
‘진실’ אמת(에메트 571) 신실, 성실, 진리, 라는 뜻입니다. ‘에메트’의 의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죽이시고 사역을 완수하시면서 선택받은 백성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주심으로 하나님과 연결시키며 결합하게 하여 생명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며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입니다. 이런 분이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함으로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셔서 나의 영혼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표현하시면서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22: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열쇠’ פתח(파타흐 6605) 베풀다, 열리다, 순찰하다, 헐다, 해방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죄악 가운데서 해방시켜 주시고, 영혼이 구원을 얻고 천국 문을 열어주신 분이며 불꽃같은 눈동자로 순찰하시면서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는 것은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를 가졌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계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주님께서는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문을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열린 문은 무엇입니까? 구원의 문을 말합니다. 성전에는 엄청난 큰 문이 있었습니다. 이 문을 혼자서는 절대 열 수도 없고 닫을 수도 없는 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은 밖에서는 절대 열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안에서 성전 문을 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북쪽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성전 안으로 들어가 성전의 문을 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린 문을 열었다는 것은 오직 예수님이 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선택함이 없으면 절대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는 사람으로서는 절대 취소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칭찬을 하는 것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작은 능력은 무엇입니까?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른 교회들보다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농부들이나 가난한 자들이 있어서 물질이 풍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의 열정과 믿음은 다른 교회들보다 더 뜨거웠던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사수하는 일에 앞장섰고 주님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버려도 아까워하지 않는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배반치’ αρνεομαι(아르네오마이 720) 거절하다, 부인하다, 저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과거, 중간디포, 단수, 2인칭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오직 주님을 향해 육신의 고통을 이겨냈던 교회입니다. 단수를 사용하고 있음으로 오직 메시아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중간디포를 사용하면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어려움 속에도 이겨냈더니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행위가 자신에게 상급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중간디포의 해석입니다.
나의 신앙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을 절대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주님을 배반한다면 결국 나의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영적으로 단절된다면 죽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과 신앙을 오직 주님께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신앙입니다.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유대인의 핍박이 심했던 교회입니다. 사탄의 회당이라는 것은 정통 유대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강조하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하며 핍박하는 무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 들 중에서 몇 명을 빌라델비아 교회로 보내 무릎을 꿇고 절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핍박을 하던 사람들을 빌라델비아 교회로 오게 하여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런 증표를 통해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끝까지 지키면서 이단들과 싸우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상황과 형편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주님의 칭찬은 인내의 말씀을 지켰으니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먼저 성전 안 마당을 척량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을 시험하고 그다음에 성전 밖 마당을 척량하여 심판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복음을 지키고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시험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계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님께서는 속히 오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고 아무에게도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내가 잡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또한 면류관은 상급을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충성했던 것들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교만해져 결국 자신을 높이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면류관’ στεφανος(스테파노스 4735) 왕관, 화관, 이라는 뜻입니다. 면류관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쓰던 월계관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지막 승리한 자가 얻는 기쁨을 말합니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4년의 고통을 견디고 훈련을 하게 됩니다. 엄청난 육신의 고통스러운 훈련을 이기고 출전하여 상대 선수와 싸워 승리하면 최고의 영광인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영적인 싸움도 이 세상에서 고통스럽지만 끝까지 싸워 승리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 것입니다.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주님께서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지진이 많이 일어났던 도시입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에 기초를 튼튼히 쌓고 기둥이 쓰러지지 않도록 세웠습니다.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성전의 기둥을 삼아 영원히 넘어지지 않는 자가 되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상 7: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두 기둥을 세워 오른쪽 기둥을 야긴이라고 하고 왼쪽 기둥을 보아스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야긴’ יכין(야킨 3199) 이며 כון(쿤 3559) 그가 세우실 것이다, 라는 뜻에서 온 단어입니다. ‘야긴’의 의미는 하나님의 양 손으로 죄인들을 선택하여 죄악에서 탈출하게 하시고 생명을 불어넣어주셔서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선택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손에 뽑힌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성전의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하여 사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아스’ בעז(보아즈 1162)는 עזז(아자즈 5810) 강하다, 견고히 하다, 든든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아자즈’의 어근에서 온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기둥에 든든하게 세우시고 견고하게 세워 강하게 만드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면 누구도 무너트릴 수가 없습니다.
복음을 끝까지 붙잡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이름은 거듭난 자들을 의미합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난 자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들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새 이름을 성전 기둥에 새겨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에 확실한 구원의 확인 도장을 새겨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인 쳐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있는 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성전에 기둥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흔들리는 것입니다. 사탄의 미혹에 빠져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 날에 불 못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전의 기둥으로 선택받은 자들은 절대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힘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이름이 성전 기둥에 새겨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계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럼 귀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히브리어로 אזן(아잔 238) 깊이 생각하다, 순종하다, 깨닫다, 라는 뜻입니다. 귀가 있는 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깊이 생각하여 주님을 따라는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께 귀를 열어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성전에 기둥이 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12장 설교말씀] “내가 감사의 예물이 되어라”(롬12:1-2) (0) | 2020.10.10 |
---|---|
[무화과나무 저주 설교말씀] “주님이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막11:12-14) (0) | 2020.10.10 |
[요한계시록 14장 설교말씀] 시온 산의 어린양(계 14:1-5) (0) | 2020.10.10 |
[요한계시록 14장 설교말씀] 세 천사의 경고(계 14:6-13) (0) | 2020.10.09 |
[사도행전 2장 설교말씀] “하나님의 추수 때”(행2:37-42) (0) | 2020.10.08 |
[사도행전 18장 설교말씀]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행18:5-11) (0) | 2020.10.08 |
[사도행전 5장 설교말씀]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행 5:33-42) (0) | 2020.10.08 |
[사도행전 5장 설교말씀]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선포하라”(행5:17-23) (0) | 2020.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