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 복음 4장 짧은설교] 사마리아인의 믿음과 갈릴리인의 믿음(요4:39-45)

체데크 2020. 8. 2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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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4장 짧은설교 중에서 사마리아인의 믿음과 갈릴리인의 믿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믿음과 갈릴리인의 믿음(요 4:39-45)

 

이스라엘 땅은 남과 북이 나누어지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앗수르 민족을 방망이로 사용하여 북이스라엘을 B.C 722년에 멸망하게 하셨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B.C 586년에 멸망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오면서 북이스라엘 유대인들은 혼혈 민족이 되어 남 유다의 유대인들에게 부정하다고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통 유대인들은 북쪽에 있는 사마리아 땅은 가지도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부정해진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정통 유대인이면서도 부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마리아 땅을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주시고 이 여인에게 영원한 생수인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믿음 생활을 했던 여인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복음을 깨닫고 자신이 물을 뜨러 가지고 왔던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4:28-30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을 깨닫고 나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자신만 복음을 듣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네에 들어가 그리스도가 왔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을 혼자만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간직한 자로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마리아인들이 여인이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셨을 때에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은 사마리아인들의 행동과 갈릴리 사람들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고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마리아인들이 행동했던 모습을 보겠습니다.

첫째, 사마리아 여인이 전해준 복음을 들었습니다.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아가 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증언하므로μαρτυρεω(마르튀레오 3140) 증명하다, 증언하다, 칭찬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물을 뜨러 갔다가 영원한 생수를 마시고 나서 물동이는 버리고 동네에 들어와 자신이 체험하고 영적인 갈증이 사라진 것을 증명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언어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것은 확실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을 만나서 주님이 자신에게 말씀을 전해주시고 모른다고 책망하지 않으시며 인자하게 복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신 것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은 주님이 행하신 일을 칭찬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현재 사마리아 여인은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동네 사람들을 향하여 전하고 있으며 해가 넘어가는 저녁 무렵에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지금 당장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수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 생수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 여인처럼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믿는지라πιστευω(피스튜오 4100) 믿다, 맡기다, 의탁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해 주었더니 마음속으로 믿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거부하지 않고 이제부터 자신들의 삶을 주님께 맡기고 영혼도 주님께 의탁하여 이제부터 주님의 뜻대로만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통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잘못만을 찾아 올무에 걸리게 하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부정하다고 생각했던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실제적으로 있으며 이 믿음은 자신이 소유하고 싶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자신들이 직접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사마리아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크게 보셨고 구원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교회에서 자신이 의인이라고 거들먹거리면서 신앙생활하면 안 됩니다. 사마리아인들처럼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에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사마리아인들은 주님과 함께하기를 원했습니다.

4:40-41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구원받은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자신의 동네에서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은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이곳에서 이틀을 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정한 곳에 거하고 있을 때에 이 동네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שמרני(쇼므로니 8118) 사마리아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מר(샤마르 8104) 지키다, 기다리다, 인정하다, 충만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오게 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들의 신앙을 지켜보시고 있었으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심정을 주님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전해주었을 때에 주님을 인정하게 되었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부정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의로운 자라고 선포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이틀을 유하게 됩니다. 2의 숫자적 의미는 증인, 연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마리아인들은 주님과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제부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마리아인들처럼 구원받았다면 주님과 영원히 거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삶입니다.

말씀으로λογος(로고스 3056) 말씀, 전도, 이야기,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λεγω(레고 3004) 말씀하다, 여쭙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의 동네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는 바로 주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께 말씀에 대하여 여쭙고 이해하여 완전하게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질문을 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 스스로 깨닫는 것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주님께 직접 질문했습니다. 제자들도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때는 질문을 하여 깨달았습니다. 말씀의 직접적인 목적은 바로 영혼구원입니다. 주님은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목사님께 질문하여 가르쳐주신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깨닫는다고 하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되며 그냥 스쳐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마리아인들은 사람에게 영광 돌리지 않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여자의 말을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자의 전도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직접 듣고 깨달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는 우리가 하지만 믿고 깨닫게 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와 같이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복음을 소개받았지만 깨달음을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아니면 절대 십자가 복음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과 이틀을 함께하면서 구원받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갈릴리 인들의 믿음을 알아보겠습니다.

4: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땅에서 이틀을 계시고 갈릴리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시고 갈릴리에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자라셨습니다.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서 갈릴리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만 보았지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가신 것입니다.

4: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님이 갈릴리에 다가서자 갈릴리 사람들이 나와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유월절 명절날에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보고 영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비둘기와 돈을 바꾸는 자들을 책망하시고 쫓아낸 일들을 보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적인 구원의 메시아로 보는 것이 아니라 표적을 나타내어 병을 고치는 사건들을 보고 영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접한다는 헬라어 단어는 영접하니δεχομαι(데코마이 1209) 영접하다, 받아들이다, 섬기다, 라는 뜻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동네로 받아들이고 영접한 것은 육신적인 표적을 보고 받아들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접은 자신에게 유익이 있을 때는 열심히 주를 섬기지만 유익이 없으면 과감하게 예수님을 내치는 영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갈릴리 사람들이 영접한 사실이 있고 이렇게 영접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자신들에게 유익이 있을까하여 받아들인 것입니다.

갈릴리גליל(갈릴 1551) 갈릴리,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לל(갈랄 1556) 옮기다, 의탁하다, 떠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부터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에 의해 자신들을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이익이 떨어지면 주님을 자신들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여 옮겨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자들은 완전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표적만을 따라가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처럼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겉으로만 보이는 표적을 따라가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기도의 응답이 없고 표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쉽게 믿음을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표적만 구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들에게는 표적입니다. 죽었던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 표적입니다.

우리는 갈릴리 사람들처럼 육체적인 표적만 구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마리아인들처럼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의 확신을 얻어 주님과 연합하고 증인의 삶을 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주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자신만 좋아하고 나만 구원받으면 되지! 라는 이런 생각은 아직도 구원에 대한 은혜를 온전하게 받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좋은 것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정상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사마리아와 같은 부정한 곳에 주님처럼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처럼 표적만 바라보고 은사만 바라보고 기도의 능력만 바라보다가는 말씀에 소홀해지고 말씀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마리아인들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귀중하게 여기고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절대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의 자리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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