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복음 3장 설교문]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22-30)

체데크 2020. 8. 2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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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3장 설교문 중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하나님 말씀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22-30)

 

명제: 세례 요한은 쇠하여지고 예수님은 흥하여야 된다.

목적: 구원받은 나는 죽어야 하고 주님은 살아나야 한다.

 

우리가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증거 하라고 미리 앞서서 보낸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인 사가랴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미 제사장의 아들로서 준비가 되었고 사가랴가 제사장 사역을 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세례 요한을 아들로 주겠다고 약속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사가랴가 믿지 못함으로 천사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세례요한을 낳고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니 사가랴의 말문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탄생부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태어났고 예수님을 증언할 자로 선택함을 받은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말씀을 들으면 모두가 믿을 수가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아들이며 이미 요한의 탄생을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을 부르시기 위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권능과 기적을 나타내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의로 돌아오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때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로서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세례 요한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따라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들어가서 세례를 주셨습니다.

 

요3: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과 거주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세례 요한도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요3: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세례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그곳에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회개하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럼 요한이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푼 영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살렘’ שלום(샬롬 7965) 평화, 번영, 평강, 이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처럼 살렘 가까운 곳의 애논에서 세례를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살렘은 평화를 의미하는 장소입니다. 세례 요한은 원죄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여 예수님을 가르치고 알리고 난 후에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평화와 평강과 화평을 주는 자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평강과 평화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세례 요한과 같은 자들로부터 복음의 말씀을 듣고 원죄에서 해방되어 주님의 평안을 얻고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구원의 은혜를 얻은 것입니다.

 

‘애논’ עין(아인 5869) 샘, 샘물, 눈, 이라는 뜻입니다.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고 있다는 것은 이곳에 많은 샘물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요한이 세례를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 하러 온 사람입니다. 자신이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례를 베푸니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선포하여 구원자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여 구원의 샘물에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가르쳐서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고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님의 제자를 만들라는 선포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이 이렇게 당부하셨던 일을 이 땅에서 유대인들에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례 요한이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풀어준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럼 이곳이 현재 어디입니까?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아직도 율법에 빠져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고 성령의 세례를 베푸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보내는 사명입니다.

 

요3: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여! 당신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바로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었더니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가고 있습니다. 라고 요한의 제자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보내는 사역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주님께로 보내는 것이 우리의 사역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더이다’ ερχομαι(엘코마이 2064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포, 복수, 3인칭) 들어가다, 따르다, 돌이키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주니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요한의 제자들이 보고 세례 요한에게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복음을 깨달으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갔던 발걸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실제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들으니 실제로 주님께로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서 주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세례를 받은 것은 이미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세례 요한의 물세례만 알았다면 구원의 확신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듣고 성령의 세례를 받으니 구원의 확신이 들어와 천국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여 나와 같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예수님께로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요3: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요한은 제자들의 말을 듣고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구원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자로서 보내심을 받은 것뿐이라고 말할 자는 바로 너희들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추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처럼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면서 목회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높여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따르고 추앙하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늘 채찍질하면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세례 요한의 말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이 말을 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흥하여야’ αυξανω(아욱사노 837 동사, 부정사, 현재, 능동태) 자라게 하다, 성장하다, 증가하다, 왕성하다, 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더 성장하시고 사역이 더 왕성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숫자가 증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계셔야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어느 장소에 있든지 어떤 환경에 있든지 상관없이 왕성한 사역을 하셔야 하며 과거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계속해서 이와 같이 예수님은 높임을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예수님을 증거 하는데 주님은 가장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셨지만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보좌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인 것처럼 우리들도 주님만을 높이는 것입니다.

 

‘쇠하여야 하리라’ ελαττοω(엘랏토오 1642 동사, 부정사, 현재, 중·수동태) 더 형편없이 되다, 더 못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주님보다 더 못하고 형편없는 자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주님보다 더 좋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예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떠한 환경과 장소에 있든지 간에 주님보다 더 못한 인간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랬던 인생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님보다 못한 인생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이미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선택받은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필요한 죄인에 불과한 존재고 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아야 할 자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외형적으로 내가 아무리 많은 재물과 학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죄인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필요한 원죄에 빠진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죄인이 아무리 열심히 자신을 높여도 죄인입니다. 그러니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나는 십자가에서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것이 흥하여야 하고 나는 모든 것이 쇠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돌려드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앞으로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만 인도하는 인생이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 영광을 높이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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