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호세아 13장 설교문 중에서 배부름의 교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배부름의 교만”(호13:4-6)
● 명제 : 북이스라엘은 배가 부름으로 하나님을 배신했다.
● 목적 : 육적 배부름에 빠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으로 간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먹어야 합니다. 육체는 음식을 먹어야 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먹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먹는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육적 쾌락과 유흥에 눈을 돌려 타락한 삶을 살게 됩니다. 육적인 것이 해결되면 더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좋아할 것 같지만 반대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몰라보고 세상의 우상이 자신에게 복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육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육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는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경각심을 갖고 배부름의 교만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육적인 재물의 복을 주셔서 돈이 많아지면 배부름의 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사람이 처음에는 잘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도 모르게 배부름의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 나는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자각하고 일어나 그리스도의 복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쓴소리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타락을 보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모습에 하나님은 실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은혜가 큰데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우상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원죄를 해결해 주셨는데 주님의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세상에서 인간의 우상을 섬기면 안 됩니다. 재물과 권력의 우상을 섬기면서 그리스도보다 더 높이면 안 됩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 물질의 배부름에 빠져 주님 앞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을 배신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철저하게 배우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섬기면서 육적인 배부름의 교만에 빠지지 않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호13: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할 때부터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여호와였고 주님밖에 구원자가 없습니다. 다른 이방 신을 알거나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애굽과 같은 원죄 가운데 있을 때부터 주님은 나의 구원자였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을 줄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현재 북이스라엘의 신앙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다른 신랑을 만나 쾌락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북이스라엘의 신앙 상태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심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육적인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복을 받고 재물과 권세의 복을 받으려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런 목마름이 해결되고 난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게 됩니다. 나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원죄 가운데 고통받을 때부터 알고 계셨고 그 이전 창세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호13: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여호와께서는 북이스라엘을 광야 마른 땅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로 먹여 주셨습니다. 물이 없다고 불평하면 반석에서 물이 나와 마실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고기가 없다고 하면 메추라기를 보내서 먹여 주셨습니다.
‘너를 알았거늘’ ידע(야다 3045 동사, 칼, 완료, 공성, 1인칭. 남성, 2인칭, 단수) 알다, 동침하다, 나타내다, 선포하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광야로 인도하심으로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백성들을 알았다는 것은 신랑과 신부가 함께 동침함으로 하나가 된 것처럼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낸 시간은 허니문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부가 먹을 것이 없으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갖다 주고 마실 물이 없다고 하면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여 주었습니다. 칼형은 하나님이 북이스라엘 백성을 이미 알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시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부터 알고 있었고 사랑하여 모든 것을 공급해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은 이미 나를 창세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공급받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지금 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현상일 뿐입니다. 주님은 나를 먼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이 땅에서 신부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호13: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그들이 먹여 준 대로’ מרעית(미르이트 4830) 목장, 목초지, 목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먹여주셨는데 목자가 양무리를 먹임과 같이 먹여주셨습니다. 양이 목장에 있으면 먹을 것을 고민하지 않고 늑대나 이리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목자가 양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에 광야에서 먹을 걱정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주님이 나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나를 양의 우리에 넣어 주시고 이리와 늑대와 같은 사탄의 공격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을 지켜주시고 내가 먹을 것이 없으면 신선한 꼴로 채워주십니다. 나의 영혼이 목마르거나 주리고 있으면 주님의 피와 살로 공급해 주셔서 영원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십니다.
‘배가 부르니’ שבע(사바 7646 동사, 칼,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만족하다, 포식하다, 풍족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아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육적으로 편안해지니 신앙이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만족감이 채워지고 먹을 양식이 많아서 포식함으로 영적인 신앙에는 게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칼형은 이스라엘 백성이 육적인 먹을 양식이 많아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시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육적인 재물과 권능을 받음으로 육적인 만족감에 빠져 영적으로 감각이 무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죄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체가 편안해지면 영적으로 무감각해집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육적인 편안함에 빠져 영적으로 무감각해지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이 불과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한해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이 15조에 달한다고 합니다. 음식물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엄청납니다. 우리나라는 한 끼도 먹기 어려울 정도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로 넘쳐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육적으로는 너무나 배가 부르고 포식할 정도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자신을 높이는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율법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배부름에서 온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하여’ רום(룸 7311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교만하다, 높이다, 자랑하다, 나타내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육적으로 복을 받아 편안하고 잘되니 자신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는데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와우접속사는 처음부터 교만하게 행동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물질이 들어오고 힘이 생기니 하나님을 온전하게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우상의 신랑을 섬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육적인 문제가 해결되니 점점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더니 육체가 복을 받고 하는 일이 잘되고 나니 자신을 자랑하고 높이는 율법주의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만을 높이고 자랑하게 되는데 율법주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는 없고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자랑하게 됩니다. 육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해도 듣지 않고 귀를 닫아 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입니다.
‘나를 잊었느니라’ שכח(샤카흐 7911 동사, 칼,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공성, 1인칭, 단수) 잊어버리다, 생각하지 아니하다, 시들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목초지에서 먹고살면서도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은혜가 어디에서 오는지 조차도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빠지게 된 것은 처음부터 그렇지 않고 영적 신앙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시들해졌습니다. 칼형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우상을 섬겼다는 의미입니다.
완료 시제는 다시는 마음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완전히 지워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구원받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졌는데 세상에서 사업이 잘되고 돈을 벌다 보니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육신의 편안함이 나의 영혼을 죽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육체가 하는 일이 너무나 잘되다 보니 영적인 것을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나는 육신의 배부름의 교만에 빠져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잠30:8-9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언 기자는 자신을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자신을 먹여달라고 기도합니다. 혹시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항상 십자가 복음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육체의 복을 받아 너무 부해져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내가 올라가 있는 교만의 죄를 저질러서도 안 됩니다.
나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내가 원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또 내가 이 땅에 살면서 육체의 일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먹고살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사업과 모든 일에 주님이 함께하셔서 도와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일을 위해서 구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육신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구하는 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나를 푸른 초장에 인도하시고 그곳에서 신선한 꼴로 먹여 주십니다. 육적으로 먹을 것이 없으면 채워주시고 물질이 부족하면 그것을 미리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내가 하는 사업에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아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올 한해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주님은 미리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배부름의 교만에 빠지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는데 열정을 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배부름의 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이 정도면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얼마나 더 듣고 알아야 하지! 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복음은 매일같이 먹지 않으면 영혼이 죽습니다. 영혼은 늘 갈급하고 갈증이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항상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육적인 배부름의 교만과 영적인 배부름의 교만을 쳐내야 합니다.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늘 나의 심령이 가난하여 십자가 복음이 필요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배부름의 교만에 빠지지 않고 오직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을 높이는 신앙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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