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에서는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주셨는데 이것을 유대인들이 트집을 잡았다. 유대인들은 율법주의 신앙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 자기들은 안식일에 자기의 양이 우물에 빠지면 건지면서 예수님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병 고친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난했다. 율법주의 신앙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요 5:10-18)
성 경: [요5:10] 엘레곤 운 호이 이우다이오이 토 테데라퓨메노 삽바톤 에스틴 우크 엑세스틴 소이 아라이 톤 크랍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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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 안식일에 짐을 지는 것은 성경에 금지되었다(느 13:19; 렘 17:21-22). 그러나 그 말씀은 영업과 관계된 운반을 금지시킨 것이고, 부득이한 휴대품을 운반하는 것까지 금지시킨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때에 바리새인들은, 머리털을 쪼개 듯이 번쇄하게 사람들의 행동을 정죄하는 일에 율법을 오용하였다.
성 경: [요5:11] 아페크리데 아우토이스 호 포이에사스 메 휘기에 에케이노스 모이 에이펜 아르론 톤 크랍바톤 수 카이 페리파테이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 이것은, 그가 예수님께 책임을 돌리고 자기는 발뺌을 하려고 말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권위를 승복하고 그에게 의지하는 생각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난치병에서 건져 주신 이의 말을, 그로서는 복종할 만하였다. 9:11; 행 3:9-10 참조.
성 경: [요5:12] 에로테산 운 아우톤 티스 에스틴 호 안드로포스 호 에이폰 소이 아론 톤 크랍바톤 수 카이 페리파테이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 그때 유대인들이 강퍅하였던 것이 여기 드러난다. 그들은, 그 불쌍한 병자의 고침 받은 반가운 사실을 묵살시키고,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게 한 사실만을 추궁한다. (1) 그들은 죽을 사람을 살린 긍휼보다, 사람들의 헛된 유전을 중대시 하였으며(마 15:2, 9), (2)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사람을 헛되이 정죄하여 죽이는 것을 유쾌하게 여겼던 것이다.
성 경: [요5:13] 호 데 이아데이스 우크 에데이 티스 에스틴 호 가르 이에수스 엑세뉴센 오클루 온토스 엔 토 토포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 예수님이 그 병자를 고치신 뒤에, 많은 병자들이 고침 받기를 원하여 그에게로 모여들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자리를 피하셨다. 그는 병 고쳐 주심보다 복음 전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병 고침 받고 믿는 것보다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을, 그는 더욱 원하신 것이다.
성 경: [요5:14] 메타 타우타 휴리스케이 아우톤 호 이에수스 엔 토 히에로 카이 에이펜 아우토 이데 휘기에스 게고나스 메케티 하마르타네 히나 메 케이론 티 소이 게네타이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 이 구절에 대하여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그 고침 받은 자의 병들었던 원인이 그의 어떤 특별한 범죄에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죄를 다시 범치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Luther). 이 해석에는 난제가 있으니, 그것은, 성경말씀이 한편, 어떤 질병의 원인을 특수한 죄악에 돌리지 않은 사실이다(요 9:1-3). 그러나 성경은 다른 한편, 어떤 질병의 원인이 사람의 특수한 죄악이라고 하므로(민 16:46), 우리는 이 해석을 옳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음 해석을 더욱 적합하다고 본다. (2) 여기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의 헬라 원어는, "이 이상 더 범죄를 계속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필 그의 38년 전의 범죄(처음에 그가 병든 원인)를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니고, 38년 동안 병 중에서도 계속 범죄 하던 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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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것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지 않는 그의 죄악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 "더 심한 것"은 영적 형벌을 가리켰을 것이다. 마 12:43-45 참조. 위의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뜻을 보여준다. (1) 예수님께서 친히 38년 된 병자의 과거의 죄악들을 모두 다 용서하여 주신 사실, (2) 그가 그 고침 받은 자의 성화(聖化)를 요구하신다는 사실, (3)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성화를 힘쓰지 않는 자는,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히 2:2-3). 그러므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그 고침 받은 자는 그 말씀에서 살아야 되며, 그 한 마디 말씀이 늘 그의 심령에 살아 있어야 된다. 루터(Luther)는 말하기를,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것을 권장한다. 곧, 사람이 마땅히 그리스도의 충족성을 믿어야 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 경: [요5:15] 아펠덴 호 안드로포스 카이 아넹게일렌 토이스 이우다이오이스 호티 이에수스 에스틴 호 포이에사스 아우톤 휘기에
성 경: [요5:16] 카이 디아 투토 에디오콘 톤 이우다이오이 호이 이우다이오이 카이 이에둔 아우톤 아포크테이나이 호티 타우타 에포이에이 엔 삽바토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 그 병 고침 받은 자가 저렇게 보고한 것은 예수님을 배반하는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공적으로 핍박하기는 여기 이 사건에서부터이다(Bernard). "핍박하게 된지라." 이 말은 헬라 원어로 미완료 시상(未完了時相)에 속하는 동사인데, 핍박하기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이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남들을 대신하셔서 항상 고난을 받으신 분으로 드러난다. 그는 병자를 고쳐 주셨고, 그 자신은 그 일 때문에 고난을 받으신다.
성 경: [요5:17] 호 데 이에수스 아페크리나토 아우토이스 호 파테르 무 헤오스 아르티 에르가제타이 카고 에르가조마이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지 만물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다는 것은(창 2:2-3), 결코 하나님의 무활동을 의미하지 않고, 그의 창조 역사에서 쉬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가 계속하여 만물유지와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하신다. 그와 같이, 예수님도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이, 5:17,19-30에 나타난 변론이다. 그가 이와 같은 일을 하신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등되신 증표이다. 예수님의 이 변론(5:17)을 들은 유대인들 자신도 그의 변론을 가리켜, 그가 하나님과 동등이란 의미의 변론이라고 하였다(18절). 예수님의 하신 일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이신 그로서 안식일에 오히려 하실 만한 것이었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안식에 속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안식은 사람의 활동 능력을 정지시킴이 아니고, 보다 참된 일로 돌림이다"라고 하였다(Asleep in Jesus, P.55).
성 경: [요5:18] 디아 투토 운 말론 에제툰 아우톤 호이 아우다이오이 아포크테이나이 호티 우 모논 엘뤼엔 토 삽바톤 알라 카이 파테라 이디온 엘레겐 톤 데온 이손 헤아우톤 포이온 토 데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 "이를 인하여" 란 말은, 위의 17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유로 함을 가리킨다.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므로 자기도 일하신다는(하나님과 자기는 동등이라는 의미) 말씀을 이유로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은혜로운 계시(啓示)를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 때문에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가장 요긴한 점을 반대한 셈이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은, 특수한 의미에서 아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만이 저런 특수한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셨고, "우리 아버지"라고는 하지 않으셨다(Zahn). 그런데, 예수님의 신자격(神子格)을 다른 뜻으로 오해한 학설들이 있다.
(1) 성령적 신자설(聖靈的神子設). 이 학설이 성립된다면, "하나님 아들"이라는 이름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아들이라기보다도 순 인간으로서 성령과 함께 한다는 의미의 하나님 아들일 것이다. 곧, 뤼트겔트(Lutgert)의 이론에 의하면,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하늘의 일들을 문견(聞見) 하신다는 어귀들에 하나님 아들이란 칭호가 많이 나오는데, 이 천적(天的) 문견은 현세에 있어서 성령을 통하여 되는 일일 것이라고 하며, 이렇게 성령을 충만히 받으신 의미에서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학설의 관계 장절들을 연구하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신 고로 하나님 아들이 되셨다는 것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성령을 받으셨다는 것이다(요 1:33-34). 그뿐 아니라, 하늘 일에 대한 문견이, 그의 현세적 경험에 국한한 것이 아니고 그의 화육(化肉) 이전의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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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3:32의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란 어귀의 그 문견에 관한 동사는 완료 시상이다. 그것은 그의 화육 이전의 경험을 말함이다. 그 이유는, 그 윗절에 있는 그의 화육 사실은 "위로부터 오시는 이"라고 하는 현재 사상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2) 종교 윤리적 신자설(宗敎倫理的神子設). 하르낙(Harnack)은 이 학설의 대표자이다. 그는 말하기를, 요한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아들이 아니고 종교 윤리적으로 그가 하나님과 일체이신 의미에서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였다 한다. 요한복음을 읽으면, 예수님의 신자 격(神子格)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대한 그의 순종(종교 윤리)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10:18, 12:49, 14:31, 15:10).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종교 윤리적 생활이 신자격의 성립 원인이라고 하지 못한다. 요한복음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이런 교훈을 찾을 수 없다. 그의 종교 윤리적 생활은 그의 신자 격의 결과로 나타는 일종의 수반 현상이고, 결코 그것이 신자 격의 성립 원인은 아닌 것이다. (3) 역사적 신자설(歷史的神子設). 독생자란 술어를 기초로 하여 역사적 신자설을 지지할 수 있을까? 독생자란 말은, 예수님의 화육(化肉) 사실을 의미한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영원 자존의 신자격을 가리킨다. 3:16, 18; 요일 4:9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독생자 되도록 보내신 것이 아니고, 독생자를(화육 전에도 이미 독생자였음) 보내셨다고 한 까닭이다. 독생자가 독생자 되심은, 역사상의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우리로서 측량하기 어려운 영원(永遠)에 속한 일이다.
[마태복음 7장 헬라어 성경말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구별법(마 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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