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1장 설교문 중에서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두 증인(계 11:1-6)
♣명제: 두 증인의 사명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이다.
♣목적: 복음을 가진 내가 고난이 있어도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예언의 말씀을 받아먹으라는 명령을 받고 예언의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이 말씀은 입에서는 달았지만 배에서는 쓰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백성들과 나라와 임금들에게 반드시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이 복음을 세상에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을 전하여 살리게 하는 것입니다.
(계 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그런데 사도 요한은 말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팡이 같은 갈대를 사도 요한에게 주고 있는 것일까요? ‘갈대’는 καλαμος(칼라모스 2563) 갈대, 척량 막대기, 라는 뜻입니다. 갈대는 6m 정도의 높이로 자라고 요단 강둑을 따라 물속에서 번성하는 대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곧고 가벼운 갈대는 측량 자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히브리어로는 קנה(카네 7070)입니다. 이 단어는 קנה(카나 7069) 세우다, 건립하다, 획득하다, 구속하다, 라는 뜻입니다. 같은 어근입니다. 사도 요한이 갈대를 가지고 측량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새롭게 세우고, 제단을 건립하며, 주님께 경배하는 자들을 구속하고 얻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명령을 받기를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했습니다. ‘일어나서‘는 εγειρω(에게이로 1453) 일어나다, 깨우다, 살리다, 세우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갈대를 받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영적으로 깨우고 죽은 자들을 살리며 새롭게 복음의 말씀으로 세워나가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깨울 것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주의 종들이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죽었던 영혼들이 새롭게 살아나고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우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종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우시며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복음을 사도 요한에게 주신 것처럼 이 시대 주의 종들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측량하되’는 μετρεω(메트레오 3354) 재다, 측량하다, 분배하다, 비판받다, 라는 뜻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했습니다. 이 측량은 교회에 있는 자들을 먼저 복음의 잣대를 가지고 재어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측량해 보고 이 사람이 구원에 합당한 자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복음에 합당한 자가 아니면 말씀으로 치리 하여 구원받은 자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이 교회에 측량하는 일들이 있으며 자발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구원받고 돌아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주님께서 주의 종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주의 종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계 11:2)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이방인에게 주었고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께서는 교회를 먼저 측량하게 됩니다. 복음의 잣대를 가지고 성도들은 측량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복음의 잣대로 측량을 했을 때에 부족하게 되면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 복음의 말씀을 붙잡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측량하지 않습니다. 마흔두 달 동안 거룩한 성을 짓밟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마흔두 달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방인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가 핍박을 받는 기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거룩한 교회를 마흔두 달 동안 짓밟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실한 주의 종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 보니 이방인들에게 핍박과 환란을 받음으로 많은 순교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할 때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단들도 교회를 세우지 못하도록 교회를 핍박하고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흔두 달은 복음을 전파하는 전 기간을 의미하며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핍박을 받는 기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계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런데 주님께서는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겠다는 것입니다. 30x42=1260입니다. 30은 그리스도의 피, 헌신의 뜻을 가지고 있고 42는 적그리스도의 수, 하나님의 뜻과 충돌이라는 뜻입니다. 이 기간 동안 주의 복음을 가진 자들은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죽이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바로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입니다. ‘증인에게’는 μαρτυς(마르튀스 3144) 증인, 순교자, 라는 뜻입니다. 증인은 법정 용어로써 다른 사람의 사건을 목격함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에 많은 고통과 핍박이 따라올 수 있으며 순교당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증언하다 죽은 자들을 존경했습니다. 교회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보지도 못한 것을 전한다면 증언을 잘못할 수 있습니다. 거짓으로 전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두 증인은 권세를 받고 전하는데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왜 굵은 베옷을 입고 복음을 전하는 것일까요?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구약에서 개인과 민족적 애통함이 있을 때에 입었으며 회개할 때에 입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개인의 고통과 민족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바로 고통과 애통이 동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있고 핍박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고’는 περιβαλλω(페리발로 4016) 주위에 던지다, 주위에 놓다, 입다, 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굵은 베옷을 입을 때가 되었고 이 굵은 베옷을 입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애통한 일을 당할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굵은 베옷을 입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는 주님으로부터 영광도 겸하여 받고 복음을 들은 백성들이 주님께로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가 복음을 가진 자라면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에 고통과 핍박과 애통한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을 버릴 수 없고 오직 주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계 11: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증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계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촛대는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촛대는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혼을 살리는 복음이 있는 곳입니다. 두 감람나무는 촛대에 기름을 공급해 주는 나무입니다. 바로 올리브 나무를 말합니다. 바로 기름부음 받은 주의 종을 말합니다.
(슥 4:11-14)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증인은 바로 두 촛대와 두 감람나무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복음을 가진 교회와 주의 종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주님을 증언해 주는 복음의 증인들입니다. 만약에 교회와 주의 종들이 복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증인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교회와 주의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님께서 구원하시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계 11: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주님께서는 증인들에게 많은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엄청난 권세를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훼방하는 자들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전하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대적하셔서 죽이는 것입니다.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은 말씀의 권세를 말합니다.
‘불이 나와서’에서 ‘나와서’는 εκπορευω(에크포류오 1607) 퍼지다, 나가다, 흘러나오다, 라는 뜻입니다. 입에서 권세의 말씀이 나옴으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실들이 진짜 있었다는 것이고 현재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가진 백성들은 이미 이런 능력을 받았고 말씀을 전할 때에 이런 기적들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해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재앙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재앙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왕하 1: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아하시야 왕이 병에 걸려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려고 할 때에 엘리야가 하나님이 없어서 우상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책망하고 너는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아하시야 왕이 오십부장을 보내 엘리야를 데리고 오라고 했을 때에 엘리야의 말 한마디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 명을 불살랐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가진 주의 종들에게도 이런 말씀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종들을 해하고자 하는 자들도 반드시 주님께서 죽이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에 역사는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계 11: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복음을 가진 증인인 교회는 큰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엘리야 시대에 복음을 전하던 엘리야의 말대로 비가 3년 반 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기근의 때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의 권위와 주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적 기근의 때를 맞고 있습니다. 이때에 오직 복음을 전파하여 주님의 권위를 높여드려야 하는 것이 바로 증인의 사명입니다. 물을 피로 변하게 한 것은 모세 때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의 압제 하에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할 때에 모세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제일 먼저 나일 강을 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애굽의 젖줄인 강을 피로 만들어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재앙을 보냄으로 주님의 능력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 가장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가장 어두울 때에 가장 밝은 복음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증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 살면서 흥청망청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저 세상에 나가 증인의 삶을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하겠습니까? 증인은 확실한 것을 본 사람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본 것도 없는데 어떻게 증인이라고 재판석에 나가 검사와 판사 앞에서 증언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증인으로 나갔다면 열심히 거짓말로 꾸며서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증인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면 주님을 몸소 체험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복음에 대해서 배우고 익혀 가르쳐야 합니다. 열심히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가르치려고 하면 나는 세상일로 바빠서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면서 사는 이런 자들은 복음의 증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고난과 핍박이 있다고 해서 증인을 거부한다면 주님께서도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를 거부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절대 하나님 앞에서 나를 증언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을 받은 증인들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세상에 나가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을 전하여 죽은 자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지금까지 우유부단하게 신앙생활을 했다면 주님의 증인으로서 결단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면 이제 깨어나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주님이 오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떡하실 것입니까? 이제 영으로 깨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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