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출애굽기 33장 설교문]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출33:17-23)

체데크 2020. 7. 1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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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33장 설교문을 본문으로 그 반석 위에 서라는 말씀을 알아보겠습니다.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출33:17-23)

 

명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반석 위에서 은혜로 덮어 주신다.

목적: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서 은혜로 덮음을 받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을 때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모세가 죽은 줄 알고 성급하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시내 산에서 내려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화가 나서 내려오다가 첫 번째 돌 판을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들에게 던져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돌 판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금송아지 우상을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같은 동족이 죽게 됩니다. 이때에 모세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 레위지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우상을 섬겼던 자들을 죽였습니다. 이들이 죽인 사람이 삼천 명 정도가 됩니다. 이때에 레위 자손들이 하나님께 헌신함으로 복을 받게 됩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같이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에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급하다 하더라도 금송아지와 같은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우뚝 서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출33: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네가 말하는 이 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같이 올라가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도 안다는 것입니다.

‘너를 앎이니라’ (ידע야다 3045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남성, 2인칭, 단수) 동침하다, 알다, 익숙하다, 기억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아는데 이름으로도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개념에 서로 동침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 결혼하여 익숙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항상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게 되고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가 이런 관계입니다.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말에 즉시로 대답하셔서 너의 이름도 알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너의 이름을 잊지 않고 내 마음에 새겼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와우접속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미리 정하셨으니’ (προοριζω프로오리조 4309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 단수, 3인칭) 예정하다, 미리 정하다, 예정을 입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προ프로 4253) ~전에, 앞에, 라는 뜻과 (οριζω호리조 3724) 결정하다, 정하다, 선포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구원받을 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인간의 어떠한 공로가 필요 없이 믿음도 필요 없이 예정하셔서 구원시키기로 결정을 내리시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선택받은 것은 나의 공로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잘 믿을 것을 아시고 예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것이 선택받은 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창세전에 나의 이름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직설법과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창세전에 나의 이름을 아셨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사실이 있습니다. 또한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땅에 왔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셨고 믿게 하셔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출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히 베푸느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 모든 선한 것을’ (טוב투브 2898 명사, 남성,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 이라는 뜻이며 어근은 (טוב토브 2895) 좋았다, 선히 여기다, 기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시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과 기뻐하는 것을 지나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1:17-18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신 선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은혜와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선한 것에서 단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줄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출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면 살 수가 없습니다.

 

‘내 얼굴을’ (פנים파님 6440 명사, 남성, 복수. 공성, 1인칭, 단수) 얼굴, 진설병, 용모, 라는 뜻이며 어근은 (פנה파나 6437) 권고하다, 돌아보다, 살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볼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복수형을 쓴 것은 하나님의 얼굴이 많아서 복수형을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영광의 광채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복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없어서 하나님은 진설병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출39:36 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성막에서 떡상 위에 놓여진 진설병이 (לחם הפנים레헴 하파님)입니다. 이것을 번역하면 그 얼굴의 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의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떡을 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인들은 이 떡을 먹어야 만이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원죄가 사라지고 생명의 떡을 먹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영광의 하나님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셔서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출33: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반석 위에’ (צור추르 6697) 바위, 반석, 이라는 뜻이며 (צור추르 6696) 함께 묶다, 압박하다, 괴롭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반석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반석입니다. 바로 고난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십자가에서 고통의 압박을 받으시게 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고통과 괴로움의 압박을 받으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셔야 만이 선택받은 죄인들과 하나님을 함께 묶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10:4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 반석은 신령한 음료가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입니다. 생수가 나와서 뜨거운 광야에서 마실 수가 있습니다. 이 반석도 (צור추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반석을 준비하여 주시고 그 위에 서라고 한 것입니다.

 

‘서라’ (נצב나차브 5324 동사, 닢알, 완료, 남성, 2인칭, 단수) 두다, 자리 잡다, 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반석 위에 세워주셨습니다. 주님의 자리에 올려주셔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서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정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닢알 단순 수동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자리는 죄인인 인간 스스로 올라갈 수 없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올려주셔야 가능합니다. 인간의 의지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세워지면 하나님이 내려오게 하지 않는 한 절대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 구원받은 백성들은 절대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반석 위에 서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출33: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반석 위에 세워주시니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반석 틈에 두고 하나님이 지나갈 때에 주님의 손으로 모세를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반석 틈에’ (נקרה네카라 5366) 갈라진 틈, 구멍, 이라는 뜻이며 어근은 (נקר나카르 5365) 구멍을 뚫다, 찌르다, 파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 틈에 두시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셔서 옆구리에 창을 맞으시고 피를 쏟아주셨습니다. 주님은 몸에 채찍 자국으로 구멍이 뚫리듯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온몸이 찢기시면서 살 조각이 파내어지는 고통을 당하신 분입니다. 이 반석 틈에 죄인들을 숨겨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요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시고 피와 물을 쏟아내어 주셨습니다. 죄인을 위한 대속의 피를 운명하신 후에도 쏟아주신 것입니다.

 

‘옆구리’ (צד차드 6654) 옆, 측면, 이라는 뜻이며 어근은 (צדד차다드) 외면하다, ~의 쪽으로 돌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옆구리에 창을 찔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택받은 자들이 원죄에 빠져 하나님을 몰라보고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바라보면서 그쪽으로 눈을 돌리고 우상을 섬겼던 죄 때문에 예수님은 옆구리에 창을 찔리셔서 내가 우상을 섬겼던 죄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원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모세도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 은혜 가운데 세워주시고 손으로 덮어주신 것입니다.

 

출33: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반석 틈에 세워주시고 지나가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손으로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을 거두어 주시게 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등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등을’ (אחור아호르 268 명사, 남성, 복수. 공성, 1인칭, 단수) 뒤쪽으로, 뒤에, 라는 뜻이며 어근은 (אחר아하르 309) 뒤에 남다, 머물러 있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등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얼굴에 나오는 영광은 볼 수가 없지만 뒤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하심을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등에서 나오는 후광의 보호하심도 얼굴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강력합니다.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등을 보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요14:8-9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등만 보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서 있어야 만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반석 위에 세우지 않으시고 창세전에 선택한 백성들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의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세워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등만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에 빠져있다면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가 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얼굴을 보여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으로 들어와서 은혜가 충만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게 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반석 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만을 섬기면서 독생자의 은혜와 진리를 마음껏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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