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주일예배 설교문 중에서 성령의 열매는 이것이니라는 하나님 말씀 세 번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령의 열매 마지막 순서로서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성화의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하나님이 욕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는 이것이니라”(갈 5:22-23)
♣명제: 성령의 열매는 구원받은 자들이 행동할 성화의 결과이다.
♣목적: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힘입어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충성’ πιστις(피스티스 4102) 믿음, 신앙, 확신, 충성, 신뢰, 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충성이 있습니다.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확실한 신앙을 말합니다. 믿음이 확실한 자들은 주님께 충성을 다하여 주님만을 신뢰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세상으로 돌아가서 배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눅7: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백 부장의 믿음을 칭찬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백 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 부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자입니다. 끝까지 충성하여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보인 것입니다. 백부장은 종이 병들어 죽어갈 때에 믿음을 세워 종의 병을 예수님께서 치유하게 했던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πιστις(피스티스)입니다. 또한 충성이 무엇입니까?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초대교회에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제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또한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도 주님의 복음의 말씀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도’라는 단어가 πιστις(피스티스)입니다. 그렇다면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다른 행실은 모두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의 복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의 열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אמונה(에무나 530) 견고함, 확고부동, 신실함, 성실, 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맡은 직분에 관하여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께 성실하게 믿음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확고부동하여 견고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교회에 성실하게 충성한다는 것은 주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출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 군대가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와 아론과 훌은 르비딤에 올라가 모세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 군대가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 군대가 이겼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붙들어 올렸더니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군대가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려오지 아니한지라’라는 단어가 אמונה(에무나)입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과 훌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했더니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교회에서 맡은 직분이 하찮다고 생각하여 충성하지 않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직분만 눈에 들어와서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발이 자신은 매일같이 걸어 만 다니고 냄새나는 일만 한다고 하찮게 생각하여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몸이 상하게 되고 몸이 상하게 되니 결론적으로 자신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내가 맡은 하나의 직분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맡은 직분에 감사하시고 최선을 다하여 충성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다음으로 성령의 열매는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 같은 것들은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맺는 것입니다.
‘온유’ πραυτης(프라위테스 4240) 온유, 친절, 겸손, 동정심, 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헬라어의 온유는 마음이 착하고 친절하여 겸손한 것을 말합니다. 동물에 관하여 사용할 때에는 길들일 때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온순하지 못한 짐승을 고삐에 매어 온순하게 만들어서 주인의 말을 잘 들을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사용할 때에는 화를 내지 않고 매정하지 않으면서 온유하고 온순한 사람을 말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온유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천국의 기업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유한 자가 되어 마음을 겸손하게 하면 마음에 평안함을 얻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나 사람에서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온유’라고 하는 단어가 πραυτης(프라위스 4239)입니다. 이 단어는 온유하다는 단어와 어근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사람들을 그렇게 대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전파될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ענוה(아나바 6038) 겸손, 온유, 라는 뜻입니다. 히브리 개념의 온유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나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에게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온유의 표본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이며 겸손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인 온유가 있다는 것은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열매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나바’의 히브리적 의미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을 눈으로 목격하고 죄악에서 탈출하여 영원히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가 숨을 쉬고 새로운 영적 경험을 통해서 주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우리가 겸손해졌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의를 죽이고 주님께 복종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세상에서 망아지처럼 자신 뜻대로 살았던 인생이 주님의 은혜를 받고 교회로 들어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온유의 열매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높은 직급에 있고 많은 재물을 집에 쌓아 놓고 있어도 예배에 충성하지 않고 예배에 나오지 않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온유도 아니며 겸손도 아닙니다. 우리가 온유와 겸손을 주님께 배우기 위해서는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말씀도 듣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울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예배를 회복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훈계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겸손’이라는 단어가 ענוה(아나바)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겸손하게 나와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만한 자들은 예배를 무시하고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앞에 온유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큰 죄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말씀하심으로 겸손한 자와 온유한 자를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예배로 나와서 온유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절제’ εγκρατεια(엥크라테이아 1466) 자제, 극기, 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두가 중요하지만 절제의 부분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절제를 하지 못함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음 가운데 강하게 억제하여 자신이 육적으로 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벧후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하나님께서는 지식에도 절제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을 절제하고 마음에 억누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절제’라는 단어가 εγκρατεια(엥크라테이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재물이 있으면 재물도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39:1-2 그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은지라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고침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때에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에게 사절단을 보내 글과 예물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사절단들로 말미암아 기분이 좋아져 그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물들을 보여주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궁중의 소유된 것과 국내의 소유물들을 모두 적군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싫어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에게 자랑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많은 복을 받아 재물이 모아졌어도 자랑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두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절제의 은사를 받아 자랑하고 싶은 것을 억눌러야 합니다. 자식 자랑할 것도 없고, 집과 차량과, 지식과, 직업과, 남편과 아내를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랑하지 않아도 주님이 알아주시고 사람들이 알아주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פרש(파라쉬 6567) 구분하다, 나누다, 규정하다, 명확히 보여주다, 라는 뜻입니다. 절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정확하게 구분하여 이것이 내가 행동할 일인지 아니면 신앙의 양심에 꺼리는 일인지를 규정하여 나누는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내 행동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반드시 빈틈을 타고 들어와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잠23:32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술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 술을 정확하게 끊지 않으면 마침내 뱀 같이 물고 독사 같이 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가지고 명확하게 나의 행동을 표명하여 먹지 않겠다고 하면 세상의 사람들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확실하게 규정하지도 않고 술에 술탄 듯이 물에 물탄 듯이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뱀 같이 물고 독사 같이 쏠 것입니다. 여기에서 ‘쏠 것이며’라는 단어가 פרש(파라쉬)입니다. 술을 절제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의 인생에 들어와 독사 같이 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망가지게 하고 결국은 패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파라쉬’의 히브리적 의미는 나의 입술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여 하늘로부터 거듭난 것을 인정하고 거룩한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여 말씀을 항상 되새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현대 시대에는 많은 절제가 필요할 때입니다. 육적으로는 먹는 것을 많이 절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만에 걸리게 됩니다. 비만에 걸리면 건강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윤리적으로는 행동의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영적으로는 더러운 비 진리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스턴트와 같은 세상적인 설교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결국 혼적인 것만 즐겁게 하여 영적인 것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들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세상의 것들을 절제하고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성령의 열매에 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저절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가지는 열매를 맺지 않으려고 해도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을 살아야 하며 구원의 확신을 얻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은 자들은 자연스럽게 주님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화 구원의 결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여 성화의 결과인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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