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갈라디아서 5장 주일설교 중에서 성령의 열매는 이것이니라는 하나님 말씀 중에서 두 번째 설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이것이니라”(갈 5:22-23)
♣명제: 성령의 열매는 구원받은 자들이 행동할 성화의 결과이다.
♣목적: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힘입어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화평’ ειρηνη(에이레네 1515) 평화, 휴식, 번영, 안정, 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화평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으로 안정과 휴식을 얻는 것입니다. 먼저는 내가 안정을 얻을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해줄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고뇌에 차있으면 육적인 일도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고요하여 안정이 될 때에 가정이 잘 되고 사업이 잘 되고 교회가 번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 있는 가정마다 잘 되지 않고 문제 있는 교회마다 부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화평은 진정 무엇입니까?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평화’ 라는 단어가 ειρηνη(에이레네)입니다. 그럼 성령의 열매인 화평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한 것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 자체가 평화이며 화평입니다. 이것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שלום(샬롬 7965)입니다. ‘샬롬’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의로운 자로 운명이 전환이 되어 말씀으로 통제를 받아 치리함을 받고 가르치고 배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분쇄하여 씹어 나의 것으로 소화한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적 개념의 평안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같이 읽고 배우고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말씀을 묵상하고 매일같이 배우는 것입니다.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며 이런 자들에게는 인생 가운데 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평안’이라는 단어가 שלום(샬롬)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자들의 앞에 장애물을 놓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장애물을 놓으면 맹인들이 지나가다가 넘어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달으면 눈이 열린 자가 되어 인생 가운데 장애물을 보고 피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평안이 내 안에 임하면 인생의 장애물을 하나님께서 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당할 쯤에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 μακροθυμια(마크로뒤미아 3115) 인내, 오래 참음, 참을성 많음, 이라는 뜻입니다. 오래 참는 것도 성령의 열매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인내하여 오래 참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나를 위해 오래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을성이 없었던 존재인데 주님 안에서 참을성이 많아진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나도 참을성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벧후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는 아직도 구원받을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모두 돌아오기 전까지는 주님은 심판을 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여기에서 ‘오래 참으심’이라는 단어가 μακροθυμια(마크로뒤미아)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을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변화되지 않은 형제, 자매들도 기다려줄 때에 주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ארך רוח(오레크 753 루아흐 7307)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길게 참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심판할 존재들을 기다리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자신의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자신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영원히’라는 단어가 바로 ארך(오레크)입니다. ‘오레크’의 히브리적 의미는 힘의 전능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인생의 우두머리가 되시고 첫째가 되어주셔서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탄생되게 하시고 영혼과 육신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파괴될 인생에서 살아나게 해 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먹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천국에 거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도 교회 안에서 인내하면서 참아야 합니다. 분노를 참고 성격이 급함을 참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심판하셨다면 벌써 했을 것입니다. 나의 모습과 행동과 말을 보면 벌써 진노를 받아야 될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래 참음이 있으니 이제부터 힘들고 지쳐도 참아내면 마침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비’ χρηστοτης(크레스토테스 5544) 선함, 친절함, 우정, 인자함, 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자비는 정직하고 친절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우정을 나타내 주고 인자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용서하여 선으로 대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엡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친구가 되어주셔서 우정을 과시하여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자비하심’의 단어가 χρηστοτης(크레스토테스)입니다. 주님이 나를 친구 삼아 주셨고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요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희는 내가 명령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명령을 지키면 주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히브리어는 חסד(헤쎄드 2617)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고 인자하심을 보여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해 주셨습니다. ‘헤쎄드’의 히브리적 의미는 원죄의 울타리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사방이 막힌 인생을 살아갈 때에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주님을 의지하고 인생이 주님의 구원의 문을 통과하여 영원히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받게 됩니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천 대까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사방이 막혀 고통당하던 인생이 뻥 뚫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비도 내가 열매로 맺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내 안에 들어오니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주님 안에만 있으면 이런 자비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양선’ αγαθωσυνη(아가도쉬네 19) 선함, 선행, 곧음, 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양선은 성령의 은혜로 주님의 뜻대로 곧장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선행 행실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선한 행위를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직진하셨습니다. 옆으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님은 주저하지 않으시고 골고다에서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럼 우리가 양선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부인하고 주님이 메어주신 나의 십자가를 메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에서 육적으로 열심히 선한 행실을 하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다면 이것은 양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양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선입니다. 주님을 부인하면서 열심히 하나님의 선을 행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내 안에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십니까? 그리고 나의 율법의 요구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메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양선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윤리적으로 선을 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안에 양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선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며 구원자로 믿는 것입니다.
엡5:8-9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가 전에는 원죄에 빠져있던 어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 안에서 빛이 되었고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여기에서 ‘착함’이라는 단어가 αγαθωσυνη(아가도쉬네)입니다. 빛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움입니다. 선한 행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에서 선한 행실을 한다고 하는 자들은 죄인들입니다. 이것은 양선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의 열매를 맺는 자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있으니 내 안에 양선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양선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נדיב(나디브 5081) 자진하여, 자발적인, 고결한, 고귀한, 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거나 섬기는 것을 말씀하는 단어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고귀한 분으로 섬기는 자들이 선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분은 아무 죄가 없으신 고결하신 분으로서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기뻐하며 내 모든 것을 주님께 자진하여 드리는 것을 말씀합니다.
출35:5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이스라엘 백성 중에 누구든지 자신의 소유 중에서 여호와께 드릴 것을 선택하여 마음에 원하는 자들은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원하는 자는’이라는 단어가 נדיב(나디브)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바로 양선입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양선이 아닙니다.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릴 때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나디브’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온 자들은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죄악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예표하고 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자원하여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거룩한 산 제물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물질이 필요하다고 하면 나의 것을 자원하여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을 때에 양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만 채우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드리지 않는 것은 양선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자원하여 교회가 필요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양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모든 성도들이 양선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교회가 힘들고 어려운 핍박 속에서도 존속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양선의 열매를 맺어 주님께 칭찬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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