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시편 22편 하나님 말씀] 메시아의 고난(시 22:1-31)

체데크 2022. 2. 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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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2편은 메시아의 수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통받고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고난(시 22:1-31)

 

1-21, 메시아의 고난

[1-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 . . .

다윗은 말한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여라고 반복해 부를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자이었고 또 그는 낮에도, 밤에도 부르짖을 정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이었다. 그는 경건한 자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난 중에 내버려두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멀리하여 돕지 않으셨다. 또 그는 다윗의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셨다. 또 그는 다윗이 밤낮 부르짖어도 응답지 않으셨다.

다윗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예표이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 그의 십자가 고난은 택한 백성의 죄의 형벌을 담당하신 대속의 고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깊은 뜻 가운데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버려두셨고 구원치 않으셨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다윗은 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말한다. 원문은 그러나 주는이라는 말(웨앗타)로 시작된다. 다윗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인정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곤고하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바라보았다. 그것이 믿음이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자이심을 고백하였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시편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 도리어 그에게 욕을 돌리고 있다. 바울의 증거대로, 죄인들은 만물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져서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짐승과 벌레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1:21-23).

다윗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고 말한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그는 세상과 구별되어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할 창조자이시다. 그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의지가 되시며 성도를 환난과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4-5]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은 열조의 신앙과 체험을 기억하고 증거한다. 신앙의 열조들은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뢰하였다.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라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뢰하였음을 말한다. 믿음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과 그의 지혜와 능력과 선한 목자 되심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로 나타난다. 신앙의 열조들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기도는 믿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는 기도할 수 없으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기도할 것이다.

또 하나님을 의뢰하고 간구한 그들은 그의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환난에서 건지셨고 그들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도우심과 구원하심을 체험할 것이다. 살아계신 주권자 하나님, 지혜로우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고 그에게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도우실 것이다.

성경은 신앙 열조들의 많은 체험들을 기록한다. 유다 왕 아사는 구스 군사 백만의 침략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도우심을 간구하였고 그의 도우심으로 구스 군대를 패배시켰다(대하 14:11). 유다 왕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셨다(대하 32:20-21).

[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그의 당하고 있는 고난이 얼마나 컸던지 다윗은 자신을 벌레라고 표현한다. 욥도 사람을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라고 표현하였고(25:6), 이사야서에도 지렁이[벌레] 같은 너 야곱아라는 표현이 나온다(41:14). 야곱은 고난 충만한 생을 살았었다. 죽은 몸에 벌레가 생기는 것을 보면, 사람과 벌레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윗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하고 멸시를 받는다고 고백한다. ‘조롱거리라는 원어는 멸시를 받는다는 뜻이다. 의인도 멸시와 조롱을 당한다. 이것은 높은 차원의 고난이다. 다윗이 당한 고난은 메시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하실 고난을 예표한다.

원수들은 다윗을 보며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였다. ‘입술을 비쭉인다’는 원어(카프티루)는 ‘조롱하기 위해 입술을 벌린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실 거라고 놀린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기의 사랑하는 종을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가운데 버려두신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지나가는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했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며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고 말하였다(27:39-43).

[9-11]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 . . .

다윗은 말한다. “오직[그러나]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벌레같이 천해진 상황에서도 다윗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였음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출생케 하셨고 모친의 젖을 먹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어른들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어린아이들의 하나님도 되신다. 그는 자기의 택한 영혼들을 갓난아이 때부터 돌보신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은 커서 신앙고백을 할 때부터가 아니고, “모태로부터,” “어머니의 배로부터이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기 전까지는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생각과 다르다. 언약의 원리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 생명을 그 출생 때부터 하나님과 연관시킨다. 그들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하나님께 맡긴 바 되었다. 이것이 구약시대에 남자아이에게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베푼 이유요, 신약시대에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근거이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그의 어릴 때부터의 하나님이시며 그가 어릴 때부터 그를 의지했음을 말하는 이유는, 그의 약하고 보잘것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도 그를 돌보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열조를 도우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며, 어릴 때 우리를 도우셨던 하나님은 늙도록 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말한다. 지금 다윗은 환난 중에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는 어렵고 절박한 상황에 있지만, 그를 도우실 자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안다.

[12-18]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다윗의 대적자들은 거칠고 힘센 황소같이 또 잔인하고 위협적인 사자같이 그를 둘러쌌다.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심신으로 약해져 그의 생각, 감정, , 그리고 용기가 다 쏟아져 버린 것 같고 그의 모든 뼈가 어그러진 것 같았다. 또 다윗의 마음은 초같이 녹았고 그의 힘은 질그릇 조각같이 말랐으며 그의 혀는 이틀에 붙었다. 그는 거의 죽음 앞에 있는 자와 같았다.

다윗은 또 말한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그의 대적자들은 물고 뜯는 개들과 같이 인정이나 도덕성이 없이 다윗을 둘러싸 그의 손과 발을 찔렀다. 육신의 고통이 심하여 모든 뼈들이 다 이탈되어 그 수를 셀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대적자들은 그를 주목하며 심지어 그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고 그의 속옷까지도 제비뽑아 취하였다. 겉옷과 속옷까지 취하는 것은 사람에게 아마 가장 큰 모욕과 수치일 것이다.

실제로 다윗이 언제 이런 고난을 당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메시아의 고난의 예표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작은 인정도 자비도 없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십자가 위에서 손과 발에 찔림을 받으셨고 로마 군병들은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가졌고 그의 속옷을 제비뽑아 가졌다(19:23-24).

[19-21]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다윗은 극심한 고통의 현실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시편에서도 비슷한 고백을 했다.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시편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힘이 되신다(18:1).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40:31).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였다. “멀리하지 마옵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 . .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그는 하나님께서 고통의 현실에서 자신을 건져주시기를 요청한다. 성도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끝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다는 말씀은 기도 응답의 확신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구를 응답하셨다. 그는 그를 얼마 동안 버려두셨지만 계속 그러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성도가 인내하며 낙망치 않고 조금 더 간구하면 그는 곧 응답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택자들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악인들의 개가를 그치게 하셨고 자신의 의로우심을 증거하셨고 우리의 의와 구원이 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큰 고난 중에라도 낙심치 말고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바라보고 또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대하자.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 성도들의 믿음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며 그들을 여러 가지 고난 중에서도 구원해주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자. 하나님은 성도들의 찬송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찬송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올려야 할 일이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그의 대속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감사하자. 또 우리는 진리와 의를 위한 고난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즐거이 동참하자. 주를 위해 고난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 사실을 자녀들에게도 가르치고, 또 평생토록 하나님만 믿고 섬기자.

22-31, 하나님을 찬송하고 전함

[22-24]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 . . .

다윗은 말한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회중’(카할)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감사치 않고 찬송치 않을 것이지만, 성도들의 회에서는 찬송 소리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권한다. 찬송은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의무이다. 시편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24장로들과 천만 천사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께서 찬송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고 찬송하였다(4:10-11; 5:12).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믿고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33:1,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원문 24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고난 당하는 자들의 고난을 멸시치 않으시고 그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성도를 돌아보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다윗의 체험은 또한 모든 성도들의 체험이며 다윗이 말한 찬송의 이유는 또한 우리의 찬송의 이유이기도 하다.

[25]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 . . .

다윗은 또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라고 말한다. ‘대회’(카할 라브)라는 원어는 많은 회중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많은 회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을 찬송하지만, 특히 교회에서,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송한다. 다윗은 그가 성도들과 함께 부르는 찬송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한다. 성도의 찬송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지식과 힘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했고(고전 15:10),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했다(11:36).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찬송은 참된 찬송이다.

다윗은 또한 그의 서원을 경건한 자들 앞에서 갚겠다고 고백한다.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결심하고 약속하는 것이다. 다윗은 큰 환난 중에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간구하며 서원하였던 것 같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므로, 그는 그 서원한 바를 그대로 갚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서원은 꼭 갚아야 한다. 옛날에 입다는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을 그에게 붙여주셔서 승리케 하시면 돌아올 때 집 문에서 제일 먼저 그를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고 그것을 이행하였다(11:30-31). 한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를 하나님의 전에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서원하였고 그것을 이행하였다(삼상 1:10-11).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 . . .

다윗은 또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라고 말한다. 본절은 고난에서 건짐 받은 성도를 겸손한 자,’ ‘여호와를 찾는 자라고 표현하며 그의 복된 면모를 말한다. ‘겸손한 자’(아나윔)라는 원어는 ‘고난 당하는 자, 겸손한 자라는 뜻이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겸손한 인격이 되며 또 이제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된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에서 건짐 받은 성도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먹고 배부르게 하신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했다(23:1-2). 이사야 55:1-2,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또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다. 성도는 평소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지만, 특별히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체험하며, 그 후로는 더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된다. 구원받은 체험을 한 자마다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그는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부를 것이다.

또 하나님을 찾는 자의 마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마음은 영혼의 활동이다. 마음이 죽는다는 말은 마음이 슬픔과 절망 가운데 낙심되고 침체되는 것을 말하고, 마음이 산다는 것은 마음이 기쁨과 소망 가운데 힘을 얻고 활기를 찾는 것을 말한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구원 얻은 성도는 마음에 힘과 기쁨과 활기를 얻을 것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슬픔과 근심, 환난과 고난이 많지만, 하나님을 찾는 자의 마음은 영원히 기쁨과 힘을 잃지 않을 것이다.

[27-28]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이 말씀은 땅의 모든 끝 곧 만국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이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1:8). 우리나라는 그 땅끝에 속한다. 우리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들어온 것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단지 100년 전의 일이었다.

열방의 모든 족속, 즉 세상의 모든 족속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것이 세계복음화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다는 약속에서 이미 암시되었다(12:3; 18:18). 이것은 이사야 45:22에서도 암시되었다: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주 예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고(28:19),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다(눅 24:47).

원문 28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세계복음화의 이유는 나라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열방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노아의 후손들이다(10:32). 하나님은 온 세상의 유일한 통치자이시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 되어진다. 창조도, 타락도, 구속도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 있다. 의인의 고난도, 악인의 핍박도 그렇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도 만세 전에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이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나온다(11:36).

[29]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 . . .

다윗은 또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풍비한이라는 원어(다쉔)의 뜻은 살찐, 부유한, 힘있는’이다. 이 말은 육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존귀하고 힘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과 돈을 의지하며 살았을지도 모르나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그에게로 돌아오며 영의 양식을 먹고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지만, 부자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요한계시록 21:24, 26,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고 말했다.

또 본문에 진토(아파르) 즉 흙에 내려간다는 말은 풍비한이라는 말과 대조되며 죽음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면 진토에 내려가는 자는 가난하고 가련하고 힘이 없어 죽어가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즉 거의 죽을 지경에 떨어졌으나 스스로 자신을 건지거나 회복시킬 힘이 없는 자이다. 옛날부터 이런 자들이 많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 고린도전서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복된 새 생명을 얻는다.

이와 같이, 본문은 각양의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을 암시한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권세자도 평범한 시민도, 용사도 가련한 자도 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굴복할 것이며(2:10-11)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이 구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30-31]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 . . .

다윗은 또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구원받은 자들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어른들만 섬기거나 당대(當代)에만 섬기고 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자녀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잘 섬길 것이다. 이것이 참된 복이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가면 그것처럼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욥은 그의 자녀들이 범죄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염려하여 잔칫날 후에는 그의 식구 수대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었다(1:4-5).

구원의 복음과 바른 신앙생활은 경건한 모든 사람에게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신명기 6:6-7,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구원받은 성도는 특히 하나님의 의를 전파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5:17), ‘다 이루셨다고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셨고(19:30), 우리의 의()를 위해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10: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3:24).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른 신앙의 계대(繼代)가 주님 오실 때까지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디모데후서 2:2,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우리를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해 또 고난 중에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심을 인해 하나님을 찬송하자.

우리는 고난 중에 낙심치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들어주신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만방에 전하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도 가르치자.

[욥기 15장 하나님 말씀] 엘리바스의 말씀 악인은 일평생 고통을 당한다(욥 15:1-35)

 

[욥기 15장 하나님 말씀] 엘리바스의 말씀 악인은 일평생 고통을 당한다(욥 15:1-35)

욥기 15장은 욥의 대답에 엘리바스가 비난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의 교만과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정죄하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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